대리님, 더러워요...
"아.. 안녕하세요!"
문을 열며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나를 포함해 6명밖에 안 되는 작은 사무실은 나의 작은 목소리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작은 사무실은 지금 나에게 너무 소중한 공간이다.
대학 졸업 후 전공도 못 살리는 일을 억지로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때려치우고 나왔다. 그 후로 방황하다 겨우 잡은 일이라 회사의 규모도, 적은 연봉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어쨌든 열심히 해 보자는 마음에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다.
사무실이 작다 보니 개인의 공간이 없는 게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파티션이 없어서 옆 사람들과 오픈되어 있었고 책상도 작았다. 신입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배워야 할 게 많다 보니 파티션이나 작은 책상 같은 것에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회사의 분위기는 자유로웠고 직급으로 부르긴 하지만 다들 허울 없는 사이로 보였다. 그 속에서 천천히 적응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내 옆자리에는 나보다 10살이 많은 대리님이 있었다. 살이 쪘다기보다는 몸이 꽤 거대했고 어쩐지 화난듯한 인상의 그였지만 몸에 맞지 않게 움직임과 말투는 소심했다.
옆자리다 보니 가장 먼저 친해져야 했지만 꽤 큰 나이 터울 때문인지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나와는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도 딱히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대화를 하더라도 흐름을 읽지 못해 겉도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사람들 또한 말을 이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보였다. 그래도 가까이 붙어 있으니 가장 많이 물어보게 되고 업무의 도움을 받는 건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럭저럭 적응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뿌오옹]!?
"앗! 아이고 죄송해요. 하하"
옆자리의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하하"
나도 같이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사람이라면 이런 생리현상은 당연하고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한 사무실에서 내 귀에 정확하게 들리는 그 소리가 또 났다. 크진 않지만 옆사람에게는 정확하게 들리는 괄약근이 풀리면서 들리는 그 소리. 그런데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아이쿠"
딱 이 세 마디만 뱉어내고 아무 일 없는 듯이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못 들었을 거라 생각한 걸까? 그래 뭐 장이 안 좋을 수도 있지. 조금 거슬렸지만 난 또다시 개의치 않은 척 일에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 화면만 보다가 잠깐 목이 아파 고개를 풀고 옆으로 돌렸을 때 목격하고 말았다. 그의 검지 손가락이 콧구멍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내가 뭘 본거야?'
잠깐 코를 만지는 수준이 아니라 콧속 깊은 곳까지 야무지게 휘젓고 있는 중이었다. 잘못 본 건 아닐까 했는데 다시 한번 곁눈질로 봐도 역시나 같은 모습이었다.
'사무실에서 이렇게 대놓고 코를 파?'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도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원초적인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그에게 적잖이 충격을 먹었다. 어쩐지 콧구멍이 큰 거 같더라니...
그것보다 코를 판 손으로 다시 키보드며, 마우스며 만지고 있잖아!? 혹시라도 그 손으로 만진 물건을 내가 만지게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스치니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에 코를 파고 코딱지를 보여주면서 주변 여자아이들을 기겁하게 만들어 쫓아내던 녀석이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싫어서 쫓아내려고 저러는 건가 ?
누가 보면 유난이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몸단장(?)은 끝나지 않았다.
"윽..윽.."
또 무슨 소리가 옆에서 들린다. 살짝 눈을 흘겨 바라본 그는 이번엔 귀를 파고 있었다. 귀를 파면서 시원한 모양인지 약간의 신음도 곁들여서 말이다.
'혹시 내가 안 보이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개의치 않고 행동을 이어나갔다. 애초에 회사에 귀이개를 구비해 놓고 주기적으로 귀청소를 해 댔다.
이후 그는 방귀, 코 파기, 귀 파기 삼단콤보를 이어나갔고 가끔 트림 소리까지 들려주었다. 내가 편해진 건지 어느 순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기가 사무실인지 본인 안방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신경을 끄자 싶다가도 잠깐 고개를 돌리면 마주치던 행동들에 흠칫 놀라기를 여러 날이 지났다. 옆자리에 앉는 게 점점 싫어지고 함께 밥 먹는 자리에서는 입맛도 사라졌다. 아! 이래서 처음에 사람들이 피하던 눈치가 이거였나 하고 깨닫게 됐다.
어느 날 점심은 너무 입맛이 없어서 밥을 꽤 많이 남기게 됐다. 그걸 본 대리님은 자기가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어차피 안 먹을 밥이라 넘겨줬고, 그 대리님은 신나고 배부르게 점심을 마쳤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점심도 밥을 조금 깨작이고 있었다.
"어차피 남기실 거 같은데 미리 저 주세요"
밥 달란 소리였다. 나 이제 한 숟가락도 제대로 안 먹은 거 같은데. 어제 남겼으니 오늘도 남길 것 같아 보였나 보다.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에게 조용히 밥그릇을 밀어줬다. 그래 나는 지금 입맛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옆에서 비위상하는 행동을 했던 사람이 앞에 있으니 자꾸 생각나서 입맛이 떨어졌다. 그 이후로도 그는 밥뚜껑을 열기도 전에 자기한테 밥을 내놓으라 한다.
'그래.. 많이 드세요..'
부글부글 속이 끓는 내 마음과 다르게 그는 쩝쩝이는 소리와 함께 점심을 해치웠다.
어떤 날은 속이 안 좋다, 또 다른 날은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밥을 잘 안 먹다 보니 한 달 만에 원치 않게 5kg나 빠졌다. 대리님에게 점점 더 부정적인 감정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나가 싫으니 그 사람의 평범한 모습까지도 꼴보기 싫은 지경까지 와버렸다. 힘들게 얻은 일자리지만 몸과 마음이 고생이니 뒤따라 오는 생각은 퇴사뿐이었다. 그와 좀 친해지기라도 했다면 이런 문제점에 얘기라도 해봤을 텐데 난 끝까지 그가 어려웠다. 그렇게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짧은 직장 생활을 마쳤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혼자 스트레스만 받았던 나였다. 아무래도 나이차이의 벽 때문에 어려워했던 거 같은데, 그 당시 대표님한테 말해서 자리라도 이동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 있는 장소에서 서스럼 없었던 그의 행동은 나의 사회생활 초반에 강렬한 한 방을 먹이기엔 충분했다.
아직까지는 그와 같은 사람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만나고 싶지는 않다. 혹시라도 지금 내 옆에서 그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대리님.. 너무 더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