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쓰레기통을 원했나 보다
우리는 뒷담화 좋아한다.
뒷담화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비밀을 공유했다는 생각에 하나로 묶인 느낌이 난다. 괜히 짜릿하기도 하고 말이다. 서로서로 속 시원히 풀어놓는 그 자리는 점점 중독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도 뒷담화를 한 번도 안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니, 솔직히 꽤 좋아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만큼 통쾌한 일도 없다.
이런 자리를 피하고 싶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상황이다. 아무리 착하고 선한 사람이어도 남을 한 번도 욕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상대방을 평가하다 보면 분명 흉볼거리가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나도 누군가를 평가했고 욕도 많이 해봤으며, 반대로 나 또한 누군가에 의해 뒷담화의 주인공이었을지도 모른다. 유튜브나 책에서는 "뒷담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멘털" 같은 주제를 늘어놓기도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본능인 것이다. 물론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남에 대해 흉을 보기도 하지만 반대로 좋은 이야기 또한 나눌 수 있으니까.
흔히 맛있고 몸에 나쁜 음식은 중독되기 쉽다. 반대로 맛은 좀 덜해도 건강한 음식은 '중독'이란 단어와 거리가 있다. 다른 사람의 나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보다 훨씬 중독되기 쉽고,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면서 같이 일하게 될 팀장과 잠깐의 미팅이 있었다. 키가 작고 마른 체형에 커트머리를 한 그녀는 꽤나 고집스러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눠 보니 살짝 나를 무시하는 듯한 말투도 느껴졌다. 별로 호감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을 첫인상만 보고 너무 쉽게 판단할까 싶어 일을 하면서 좋은 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함께 일을 하게 될 팀원은 나를 포함해 총 6명. 양 옆에 세 명씩 서로를 등지고 앉아있었다. 첫 출근부터 분위기가 아주 고요하다. 익숙한 정적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내 자리에 짐을 풀었다. 빠르게 오전이 지나가고 점심시간이 왔다. 다 같이 밥을 먹는 자리의 분위기도 숨 막히듯 고요했다. 정적을 깨고 팀장은 나에게 궁금한 것을 필수 항목 체크하듯이 물어봤다.
"결혼했어요?"
"집 샀어요?"
"애는 있어요?"
당황스럽다. 초면에 저런 무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고? 보통 어느 친해지면서 조심스럽게 하게 될 이야기를 팀장은 아무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나에게 궁금한 것보다 내 신상을 캐고 있었다. 첫날부터 벌써 질려버렸다.
이후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도 사람들은 어색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가장 활발해 보이는 강차장으로 불리는 한 명만 말하고 있었다.
"출근은 할만해요?"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요."
"오늘 점심은 좀 별론 거 같아"
쾌활한 말투에서 약간의 자신감도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목소리도 무척 커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았다. 강차장을 중심으로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살짝 풀렸다.
사람들은 서로 괜찮게 어울리는 듯 보였지만 팀장만은 묘하게 배제시키는 느낌이었다. 경력이 쌓이면서 생긴 촉이 말해 주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팀장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래도 계약기간이 많이 남았으니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과의 소통은 최소한만 하기로 했다. 일에 필요한 이야기만 할 뿐 나는 그녀에게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고,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았다. 더 최악인 건, 팀장은 너무나 당당한 사람이었다. 혼자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고 그리 잘하지도 못했다. 잘하지 못하니 망치는 일도 많았다. 일은 서툴면서도 자신이 서툰 줄 모르는 듯 늘 자신 있는 태도였다.
2주 정도 지났을까? 팀장을 보고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식히러 건물 1층 로비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러다 강차장을 마주쳤다. 강차장은 나를 보자 반가운 듯 다가왔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요?"
"아, 그냥 갑갑해서 잠시 쉬는 중입니다"
"그래요? 나도 쉬러 왔는데"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날씨 얘기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슬슬 팀장 이야기가 나왔다.
"근데 팀장님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일을 뭐 저렇게 해?"
"어떤 게요?"
"아니~ 일 너무 못하잖아. 엉망인 거 내가 한두 번 본 게 아냐"
"일을 너무 혼자만 하시는 거 같은데.. 그렇죠?"
나는 일부러 잘 모르는 척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녀는 참아왔던 속마음을 한꺼번에 내비치기 시작했다. 팀장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썩 내키지 않는 사람이었고, 독단적이고 고집적인 성격을 꼬집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나도 동의했다.
나 역시도 팀장의 태도가 별로라고 생각했기에 한참을 앉아서 험담을 시작했다. 나보다 더 오래 팀장과 일했던 강차장은 과거의 이야기까지 모조리 끌어들여서 그녀가 얼마나 엉망인 사람인지를 나에게 각인시키려 노력했다. 나 또한 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냈고 우리는 한참이나 팀장의 민낯을 탈탈 털었다.
그 이후로 매일매일 업데이트 되는 뒷담화타임(?)을 갖게 됐다. 그런데 점점 강차장의 뒷담화 수위가 높아져갔다. 처음엔 음식이나 취향 같은 서로의 관심사도 같이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순간 팀장 욕만 하고 있었다.
내가 편하다고 느껴진 걸까? 팀장이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새로운 뒷담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중간중간 욕설까지 내뱉었다. 이젠 내가 강차장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거 같았다. 그제야 나는 아차 싶었다.
강차장은 단순히 한 사람을 꼬집어 내는 뒷담화를 넘어서 증오를 하고 있었다. 조금 심한 거 같아 분위기 전환을 유도했지만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팀장이 자리에 없을 때마다 틈틈이 내 자리까지 와서 욕을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나, 정수기에 물을 뜨러 갈 때도 날 따라오곤 했다. 집착이 너무 심하다 보니 이 사람은 팀장이 너무 미워서 미쳐버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팀장의 머리카락까지도 싫다며 나를 따라다니며 욕을 했다. 나 또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같이 흉을 보던 팀장이 아니라 강차장에게 지쳐가고 있었다. 아니, 이제 강차장이 싫어졌다. 정말 어질어질했다. 모든 대화가 부정적으로 이어지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난 점점 강차장과 거리를 두었다. 같이 커피 마시자는 물음에도 바쁘다는 핑계를 댔고, 강차장이 지나가는 동선에 최대한 겹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팀장에게 맘에 안 드는 구석을 볼 때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쯤 되니 저 사람은 뒷담화가 하고 싶은 게 아니고 그냥 나를 괴롭히려고 저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만 마주치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두려웠다. 처음부터 같이 맞장구를 치며 뒷담화를 했던 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조심스레 강차장에게 말했다.
"차장님, 이제 그만하시면 좋겠어요"
"뭐가?"
"팀장님 욕이요. 너무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어? 나만 욕한 거도 아니잖아? 우리 같이 욕하지 않았나?"
"네, 저도 팀장님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제 좀 지칩니다. 자제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 나만 나쁜 사람이었어?"
무자비한 욕설을 즐기던 사람에게 솔직한 마음은 통하지 않았다. 강차장 생각엔 같이 나쁜 짓 하던 놈이 혼자 착한 척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돌아보면 나도 뒷담화에 가담한 건 맞으니까. 내가 저렇게 이야기를 한 후 강차장은 더 이상 나에게 오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 사람의 표적이 되었고, 날 욕할 새로운 사람을 찾아낸 것 같았다.
그 프로젝트를 끝나고 한동안 강차장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세상에는 뒷담화가 없는 직장이 드물고, 나도 그 안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그 자리에 너무 깊숙이 앉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