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이 업무의 일부가 된 날
사무실의 공기는 숨 막히는 느낌이 든다.
조용한 공간에서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고, 가끔 오가는 대화는 딱딱하기만 하다. 물론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많은 프로젝트는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
정해진 기간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 했기 때문에 쓸데없는 잡담을 할 시간은 없다. 우리는 회사에 정을 쌓으러 온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러 온 것이니 그 돈만큼 일을 해야 한다.
나처럼 여러 프로젝트를 다니면 옆자리에 앉는 사람도 계속 바뀌게 된다. 마치 새 학기가 되면 짝꿍이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학기 내내 즐거울 수도,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좋은 친구를 못 만난 것 같다. 단순히 사람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옆에 앉아 있을 뿐인데 유난히 '거슬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 옆에 있으니 내가 이렇게 예민한 사람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하는 일이 잘 안 되거나 답답한 일이 있으면 한숨을 쉬곤 한다. 혹은 누군가를 질책할 때 '에휴'같은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혹은 안도의 의미로 한숨을 쉬기도 한다. 한숨을 많이 쉬면 행복이 달아난다는 말이 있지만, 의외로 한숨을 쉬는 것은 신체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크게 숨을 내쉬면 스트레스 진정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내 옆자리에 있는 대리는 스트레스가 많이 심한가 보다. 한숨 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오전 시간 내내, 아마 10분에 한 번씩은 내쉰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론상으로는, 그는 지금 아주 건강해지고 있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한숨의 늪에 빠지게 한 것일까?
그는 이제 4년 차 대리라고 했다.
그래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일에 대한 열정이 가장 불타오르는 시기가 저 정도 연차가 아닐까 한다. 나도 오래전에 일을 가장 많이 배우고 재미있던 때가 딱 저 연차였던 듯했다. 실수도 많았지만 열심히 했던 거 같고, 윗사람들의 이쁨도 받던 시절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내 옛날 생각도 나서 잘해주고 싶었다. 말수가 별로 없고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질문을 하면 똑똑히 하고, 맡은 일에는 열심히 했다. 성실하고 괜찮은 친구 같았다. 시간이 지나 일이 조금씩 많아지고 서로 대화할 틈도 없이 바쁜 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자리에서 깊고 큰 한숨소리가 들렸다.
바쁘게 일할 때면 흔히 듣는 소리다. 나도 일이 쌓이거나 안 풀리면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기도 한다. 전부 다 바쁜 상황이니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한숨 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또다시 큰 한숨소리가 들렸다. 내 생각에 그는 무언가 잘 안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뒤로도 서너 번 한숨을 쉬길래 내가 물었다.
"일이 좀 많죠? 뭐 잘 안 되는 거 있어요?"
".....아닙니다"
큰 한숨에 비해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아.. 어려운 거 있으면 얘기해요. 도와줄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잘하고 있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다고 하니 일단 물러섰다. 하지만 난 괜찮지 않았다.
"후..우.... 허어.........."
10분에 한 번씩은 들리는 것 같다.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리는 깊은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몇 번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늘 별일 아니라고만 한다. 조금 더 지켜보니, 그는 일을 시작하면 습관적으로 한숨을 쉬는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일을 하는 내내 잘 풀리든 말든 키보드에 손을 얹는 순간부터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그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하루 종일 맥 빠지는 소리를 듣다 보니 내 기운도 같이 빠지는 것 같았다. 일을 하러 온 건지 한숨소리를 들으러 온 건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별안간 책상을 '쿵'하고 내리치고 혼잣말로 무언갈 중얼거리기도 한다.
'잘 안 되는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그를 보고 나는 속으로만 외쳤다. 이젠 옆자리의 스트레스가 나에게로 옮겨와 버린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한숨을 쉬는 이유가 나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한숨 쉬는 행동을 늘 지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동안 참다가 다시 한번 말을 붙였다.
"그게 좀 잘 안되죠? 어려운 거 같아요. 그렇죠?"
"예.. 뭐, 그래도 할만합니다."
"아, 그래요? 나는 계속 한숨 쉬길래 어려운 건가 해서 도와줄라고 그랬지"
이런 식으로 약간 돌려서 말을 해줬다.
그가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길 바랐지만 영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역시나 일이 힘든 것 보다는 그냥 버릇인 것 같았다. 어쩌겠나 싶어 포기하고 일에 집중하려 애썼지만, 하루종일 들리는 소리에 집중력도 떨어졌다.
'한숨 좀 그만쉬라고 말해볼까?'
'괜히 더 어색해지니 참아야하나?'
이런저런 생각만 머리에서 맴돌았다. 같은 회사의 후배도 아니고 이번 프로젝트만 잘 끝내면 헤어질 사이이긴 했다. 괜히 싫은 소리를 해서 문제를 만들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까지 땅이 꺼질듯한 그의 한숨은 계속되었다.
'그래,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한 걸지도 몰라'
스스로를 달래면서 평소에 쓰지도 않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어폰에서도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사람들의 사소한 습관에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걸 보면, 나도 참 많이 피곤해진 사람이다. 연봉은 그대로인데, 감정처리 업무만 늘어나 버렸다.
오늘도 사회생활 대처 매뉴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