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삼류 소설 [빛을 잃은 여왕]

빛을 잃은 여왕

by 채널김

도희는 어릴 때부터 유복하게 살았다.

잘 나가는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 아래에서 어여쁜 외동딸로, 늘 부족한 것 없이 원하는 건 뭐든 가졌다. 부모님은 점점 이기적으로 커가는 도희가 걱정됐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에게 못 해줄 건 없었다.


도희가 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더욱더 욕심이 많아졌다. 가진 게 많았음에도 다른 누군가의 것을 뺏고 싶었다. 그것이 물건이던 인기던 말이다.

친구의 것 보다 더 이쁘고 비싼 걸 해야 직성이 풀렸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가장 많아야만 했다.


도희는 예뻤다.

새침하고 욕심이 많지만 그만큼 주변에 돈도 잘 썼다. 도희랑 친해지면 뭐라도 얻을 수 있으니 친구들은 도희 옆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예쁘고 돈 많은 여학생. 거기에 늘 당당한 그녀의 성격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인기를 가져다주었다. 이런 도희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좋아했다. 학교를 다니던 내내 여왕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도희가 소녀에서 여자로, 꽤 시간이 흐른 후 어느덧 짝을 찾을 때가 왔다. 늘 그렇듯 최고의 신랑감을 찾아냈다. 부모님이 그녀를 위해 꼼꼼하게 고른 최고의 사윗감이었다.

부유한 집안에 탄탄한 직장, 훤칠한 외모까지 누가 봐도 부러울 남편이었다. 도희도 이 정도는 돼야 자기와 어울리는 사람이지, 하고 흡족해했다.


남편은 도희와는 다르게 온화한 사람이었다.

아내에게 남편으로써의 최선을 다 했다.

도희의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성격도 맞춰주고, 그녀가 원하면 뭐든 들어주었다.

자신이 하는 일도 너무 좋아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남자였다. 정말이지 이런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도희는 남편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남편의 유효기간은 2년을 다 채우지 못했다. 언제나 안정적인 삶, 부족한 것도 힘든 것도 없었다.

이 지루하고 단조로운 삶에 변화가 필요했다.

친구들을 불러 파티도 하고 사치품도 늘려봤지만 금방 싫증이 났다.


지루한 나날을 이어가며 새로운 흥미를 찾던 도희의 눈에 집 앞에 새로 생긴 카페가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카페의 '잘 생긴' 아르바이트생이 보였다.

물론 지금의 남편도 충분히 잘생긴 사람이지만 아르바이트생은 또 다른 호기심이 생기는 외모였다.


하얀 얼굴에 여리여리해 보이지만 든든해 보이는 어깨가 눈에 띈다. 남편과는 반대의 매력이다.

혹시 아이돌이 아닐까, 도희는 생각했다.

어쩐지 그날은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지워지질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밝자마자 그 카페에 또 찾아갔다.

다시 봐도 잘 생겼다. 이상하게 끌린다.

저 남자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는 도희였다. 어떻게 하면 말을 걸 수 있을까.

저 남자의 취향은 뭘까.


도희는 계산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로 카페에 가는 횟수가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처음에는 매일 다른 음료를 시키며 단골처럼 얼굴을 익혔고, 어느 순간부터는 가볍게 말을 건넸다.


“여기 원래부터 일했어요?”
“학생이에요? 배우 지망생 같아서요.”


칭찬은 어렵지 않았다. 도희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법을 잘 알았다. 상대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도 본능처럼 알았다.


아르바이트생의 이름은 민재였다.

스물셋, 휴학 중이라고 했다.

도희보다 몇 살 어린 그는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점점 도희의 관심을 거부하지 못했다. 도희는 자연스럽게 그의 휴대폰 번호를 얻었고, 메시지가 오가기 시작했다.


도희는 오랜만에 설렜다.
남편과는 다른 결의 설렘이었다. 안정적이고 단단한 울타리 안에서 느끼는 평온이 아니라, 들킬까 두려운 불안 위에서 피어나는 자극적인 감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믿어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처음 손을 잡은 날, 도희는 웃었다.
이건 그저 지루함을 달래는 놀이일 뿐이라고. 자신의 삶은 여전히 완벽하고, 이 작은 일탈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둘은 점점 더 가까워져 갔고, 이 짜릿하고 즐거운 놀이를 즐겼다.


민재도 처음엔 부끄러워했지만 연상의 여자가 주는 안정감과 과감한 도희의 태도에 빠져들었다.

도희가 사주는 옷과 신발, 값비싼 선물들은 그를 금방 익숙하게 만들었다. 처음에 그는 부담스러워했지만 점점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희는 그런 그를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역시 사람은 돈과 관심 앞에서 달라진다고.


하지만 세상은 늘 도희 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다.
무리한 투자와 경기 악화가 겹쳤다. 도희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설마 우리 집이 무너지겠어? 늘 그렇듯 아버지는 해결해 낼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거래처가 끊기고, 빚이 드러나고, 언론에 작은 기사 하나가 실렸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집안 분위기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부모님은 초조했고, 전화벨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도희의 카드 한도가 줄어들었다.
계좌의 숫자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

그제야 도희는 불안을 느꼈다.

민재는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챘다.


“요즘 왜 이렇게 힘들어 보여요?”
“별일 아니야.”

하지만 도희는 예전처럼 쉽게 돈을 쓰지 못했다.
고급 레스토랑 대신 평범한 식당으로, 해외여행 대신 근교 드라이브로 바뀌었다.

민재의 표정도 조금씩 바뀌었다.


누나... 나 사실 복학 준비해야 해서.”
“그래서?”
“우리... 잠깐만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예상했던 일이어서 화가 나진 않았다.

점점 포기하게 되는 현실이 공포스러웠다.

모든 게 다 내 것이었는데 지금은 손가락 사이로 물이 흘러내리듯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다.


민재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카페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볼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희의 휴대폰에 남아 있던 메시지.
삭제하지 못한 사진.
그리고 카드 사용 내역.

남편은 소리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물었다.


“왜 그랬어?”

그 질문이 도희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루해서? 심심해서? 그냥 갖고 싶어서?

실망 가득한 남편의 눈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이혼하자.”

짧은 한마디였다.

그는 재산 분할과 위자료 문제를 냉정하게 정리했다. 이미 집안이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도희에게 유리한 조건은 없었다. 친정 역시 도와줄 여력이 없었다.

도희는 서명했다.
손이 떨렸다.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부모님은 지방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도희는 잠시 친구 집을 전전했지만, 예전처럼 그녀를 반기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때 도희의 주변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은, 그녀가 더 이상 ‘얻을 것 없는 사람’이 되자 하나둘 사라졌다.

남은 것은 고요뿐이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여전히 예뻤지만 예전처럼 빛나지 않았다.


비 오는 날, 도희는 혼자 강가를 걸었다.
차가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평생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갖지 못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한 번도 지켜보지 않았다.
사람도, 마음도, 관계도.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내려보았다.
전화할 사람은 없었다.


도희는 한참 동안 어두운 물결을 바라보았다.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듯했지만, 바람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도희는 허공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렇게 도희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