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후견인이 됐다

성년후견인

by 채널김

아빠의 계약서를 보고 마냥 무서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야 했다. 주변의 소개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사무실에 앉아 설명을 듣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머릿속은 이미 복잡했고, 나는 법이라는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변호사는 우선 우리가 아빠의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정확히는 ‘성년후견인’이라고 했다. 질병이나 장애, 노령 등으로 인해 사무 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부족한 성인을 대신해 법원이 선임하는 사람. 재산 관리와 신상 보호를 법적으로 대리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앞으로 아빠의 모든 재산과 행정 업무를 동생과 내가 대신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법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닿았다. 법원은 냉정했다. 절차는 복잡했고, 준비해야 할 서류는 끝이 없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다시 제출해야 했다. 왜 사람들이 법이 어렵다고 하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평생 법과 상관없이 살 줄 알았는데, 정작 가장 힘들 때 법의 문턱을 넘어야 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이 사기 계약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지 매달렸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없었다. 소송과 협의가 이어졌지만 이미 넘어간 것들을 모두 되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많은 것을 잃었다. 그 시기 나는 급격히 살이 빠질 정도로 힘들었다. 지나고 보니 남은 것은 상처와 피로뿐인 시간처럼 느껴졌다. 열심히 버텼지만,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기분이었다.




몇 달의 절차 끝에 동생과 나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 아빠의 성년후견인이 되었다. 한 번 후견이 개시되면, 아빠의 판단 능력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그 책임은 계속된다. 사실상 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는 보호자이자 법적 대리인이다.


아빠가 주민센터에서 등본 하나를 떼려 해도 우리의 동의가 필요했다. 은행 업무도, 각종 계약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그 모든 과정이 번거롭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귀찮은 일은 이제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후견인이 되고 나서야 우리는 아빠의 재정 상태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무너졌다. 생각보다 훨씬 큰 빚이 있었다. 오래전 사업을 한다며 돈을 빌렸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게 아직도 이렇게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은행 대출뿐만 아니라 지인들에게 빌린 사채까지 얽혀 있었다.


아빠는 그 빚을 정리하려고 땅을 팔려다가,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사기 계약을 체결한 것이었다. 빚을 갚으려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진 셈이었다.


그 금액은 우리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매달 나가는 이자가 내 월급과 비슷했다. 숫자를 보고 있으면 숨이 막혔다.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빠의 상태도 눈에 띄게 나빠지는 듯했다. 늘 큰소리치며 권위적으로 굴던 사람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후견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도장을 대신 찍는 일이 아니었다. 아빠가 그동안 혼자 짊어지고 있던 모든 짐을 함께 지는 일이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채무 관계와 우리가 몰랐던 과거의 선택들까지 하나하나 마주해야 했다. 여태까지 큰 폭탄을 아빠 혼자 안고 버텨온 것 같았다.


처음엔 화가 났다.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왜 그렇게 무모했는지 원망했다. 하지만 서류를 정리하며, 통장 내역을 들여다보며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어쩌면 아빠도 두려웠을지 모른다. 가장으로서 실패를 인정하기 싫었고,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혼자 해결해 보려 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들자 분노는 서서히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결국 아빠에게 남은 것은 우리뿐이었다. 이미 재산은 거의 남지 않았고, 앞으로 들어갈 병원비와 생활비는 우리가 보태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정말 끝까지 자식들 고생만 시키는 사람이구나.’

괜히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한탄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우리는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동안 아빠는 계속 시골집에서 혼자 지냈고, 우리는 거의 매주 내려갔다. 왕복 몇 시간을 오가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다. 무엇보다, 이제는 혼자 두는 것이 불안했다. 또 다른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는 않을지, 길을 잃지는 않을지, 갑자기 쓰러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끝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결정을 내렸다. 아빠는 혼자 살 수 없었다. 결혼한 나는 쉽사리 나서지 못했는데 고맙게도 동생이 먼저 말해주었다. 그렇게 아빠는 동생과 함께 살게 하기로 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일상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고, 감당해야 할 책임도 더 커질 것이 분명했다. 동생에게 미안했지만 앞으로 내가 더 힘을 내서 같이 지내보기로 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