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유치원에 가요

노인주야간보호센터

by 채널김

드디어 동생과 아빠가 함께 살게 됐다.
솔직히 아빠보다 더 걱정된 건 아빠를 돌봐야 할 동생이었다.

집에 와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아빠를 케어할 동생이 너무 안쓰러워 나는 최대한 동생이 하기 힘든 것들을 도와주기로 했다. 주말마다 아빠와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금전적인 부분도 많이 지원하기로 했다.


동생은 아빠와 살게 되면서 가장 먼저 주야간보호센터를 알아봤다.

동생이 낮에 일을 하러 가면 아빠는 혼자 집에 있어야 했다. 낯선 집에서 그 긴 시간을 혼자 보내게 할 수는 없었다.


주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려면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아야 한다.
먼저 필요한 것은 의사의 소견서다.

병명이 치매가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소견서만 제출한다고 끝나는 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직접 방문해 상태를 확인한다.


여러 절차를 거쳐 기준에 부합하면 등급이 매겨지고, 그 등급을 토대로 아빠에게 맞는 센터를 찾게 된다. 장기요양등급은 1~5등급과 인지지원등급으로 나뉘는데, 아빠는 4등급이 나왔다. 일상생활에서 일정 부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숫자가 낮을수록 상태가 더 좋지 않다.


등급을 받자마자 집에서 최대한 가까운 센터를 찾아봤다.
지도 앱을 켜보니 생각보다 주변에 센터가 많았다. 혼자 생활하기 힘든 노인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다.


나라의 제도를 통해 도움을 받는 건 다행이지만, 노인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현실을 가까이서 체감하니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요즘은 유치원보다 어르신 보호센터가 더 많다는 말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곳을 ‘노인유치원’, 줄여서 ‘노치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생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센터를 찾았다.
시설도 꽤 크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식사를 센터에서 직접 만든다는 점이었다. 다른 곳들은 외부 업체에서 음식을 받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또 근처에 작은 농장도 운영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농작물을 심기도 하고 날이 좋을 땐 소풍처럼 나들이도 간다고 했다. 시골에서 작은 농사를 지으며 지내셨던 아빠에게 잘 맞을 것 같았다.


시설을 둘러보다 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어르신들 가운데 남자 어르신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치매 환자는 여성 비율이 더 높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성비가 차이 날 줄은 몰랐다. 센터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 어르신은 아빠를 포함해 단 두 분뿐이라고 했다.


또래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남자 선생님도 계셨고 앞으로 이용자가 늘 것 같아 그곳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라 지원이 있어 본인 부담금은 약 20만 원 정도였다.

이제 남은 일은 아빠를 잘 설득하는 것이었다.

집에 가서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이제 내일부터 친구들 많은 데 갈 거야.”
“어디?”
“학교 같은 데야. 선생님도 있고, 사람들이랑 놀다 오면 돼.”
“응응. 그래, 알았어.”


이렇게 쉽게 수긍한다고?

이해를 하신 건지, 그냥 대답만 하신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긍정적인 반응이라 안심이 됐다. 아빠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으니 곧 적응하실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동생이 먼저 출근하고 집 앞으로 아빠를 데리러 오는 차가 도착했다.


아빠는 무사히 센터에 갔다.

문제는 저녁에 돌아온 뒤였다.

아빠는 동생에게 이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처음 보는 환경, 낯선 사람들, 게다가 대부분 몸이 아파 보이는 어르신들 사이에 있으니 싫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아빠는 아직 환갑을 조금 넘긴 나이다. 센터에는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이 많아 또래가 없다는 것도 힘든 부분이었다.


가지 않겠다는 아빠를 붙잡고 우리는 딱 일주일만 다녀보자고 설득했다.

센터 선생님이 말하길, 다른 사람들도 처음에는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금방 적응한다고.

우리도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얼마나 낯설었는지 떠올려 보면,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주말에 아빠를 다시 봤을 때 아빠는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랫동안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큰 산 하나를 넘은 것 같았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