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이 좋은 아빠

by 채널김

아빠가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잘 다니는 것 같아 마음이 좀 놓였다. 보호센터에서는 종종 아빠 사진도 보내준다.

사진 속 아빠는 다른 어르신들과 함께 둥그렇게 앉아 있다. 다 같이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모습이 정말 유치원이 따로 없다. 색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나,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어딘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게 한다.


처음에는 그런 사진을 받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가 저렇게 지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저렇게라도 웃고 있는 모습이 고마웠다.


그중에서도 아빠는 노래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원래도 노래를 좋아하고 곧잘 하셨다. 가족 모임이 있거나 술자리가 생기면 꼭 한 곡씩 부르시던 분이었다. 노래를 부르며 흥을 내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마이크를 쉽게 내려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센터에서도 노래를 하면 인기가 좋은 모양이다. 선생님의 말이 진짜인지는 몰라도 센터에서 아주 인기만점이란다.


어르신들이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시간에 아빠가 먼저 목소리를 내면 분위기가 좋아진다고 했다. 어떤 날은 마이크를 잡고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괜히 웃음이 났다. 아빠가 여전히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조금 반가웠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빨리 적응하실 줄 몰랐다.


처음 센터에 보내던 날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낯선 곳에서 잘 지내실 수 있을까, 혹시 화를 내거나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지는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빠는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었다. 아빠도 즐거워 보이고 우리도 기분이 좋았다.

제발 더 나빠지지 않고 이대로만 계셨으면 싶었다.

하지만 얼마 뒤 우리의 바람이 우습다는 듯한 소식을 들었다.




아빠가 혼자 집에 가셨다는 것이다.

그곳은 어르신들을 보호하는 곳이 맞다.

밖에 나가더라도 보호자 한 명이 같이 나가야 한다. 마음대로 드나드는 곳은 아니다.


적응하는 며칠 동안은 즐거웠겠지만 그곳에 계신 다른 어르신과 약간의 다툼이 있었나 보다. 게다가 하루 종일 실내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셨던 모양이다. 다들 정신없는 틈을 타 혼자 집으로 오신 것이다.


화가 나서 씩씩대고 왔겠지만 집에 와서는 금방 잊으셨다.

없어진 아빠 때문에 선생님들도 황당하고 놀랐다. 보호자 없이 나가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혹시 길을 잃거나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생각보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아빠에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아직까지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두 다리는 여전히 튼튼하다. 천천히 걸어도 집까지 오는 데 큰 문제는 없다.


그곳을 벗어나는 건 걱정이 되긴 한다. 선생님들도 안전 문제 때문에 아빠가 나가는 것을 반대했다. 그래도 잘 설득해서 아빠가 원하면 그냥 나가실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빠는 자꾸 나가길 원하셨고, 보호센터 쪽에서도 아직까지 인지가 있으신 분은 종종 나가게 하시는 것 같았다. 자유를 얻게 된 아빠는 본인이 내키는 날엔 혼자 집에 걸어오시곤 했다. 걱정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돌아다니실 수 있을 때 이렇게 오가시는 게 낫지 싶었다. 어차피 집과의 거리도 멀지 않으니 말이다.



밖이 즐거운 이유, 소비


아빠는 점심시간을 이용해서도 산책 겸 나오시는 것 같다.

보호센터 근처에는 작은 마트와 편의점이 몇 군데 있다.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 모양이다.

주변에 마트나 편의점이 보이면 간식도 사신다.


그 돈은 내가 드렸다. 정확하게는 체크카드를 쥐어드렸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소비를 하는 것도 기분이 좋아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혹시라도 밖에 나와서 무슨 일이 생기면 쓰라고 드린 것이었다.


그 무슨 일은 아빠의 심심한 입을 달래줄 간식이었나 보다. 아빠는 그렇게 큰돈을 쓰지 않았다. 그래봤자 간식일 뿐이었다. 이미 계산하는 방법은 잊으셨지만 카드만 들이밀면 간식을 얻을 수 있었다.


초콜릿이나 빵 같은 것을 사 드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우리들 먹으라고 간식을 더 사 오기도 하신다. 편의점 봉투를 들고 집에 들어오실 때면 꼭 무언가 자랑하듯 꺼내 보이신다.

"이거 맛있다. 너희 먹어라" 이 한마디를 하시면서 말이다.


오래전 술 한잔 먹고 집에 올 때 우리들 먹으라고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오셨던 기억도 났다. 그 안에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이 있기도 했고, 치킨이 들어있기도 했다. 나처럼 그 까만 비닐봉지가 궁금해서 아빠를 기다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그만 사 오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보호센터에 있는 어르신이나 선생님과도 나눠 먹을 간식을 사 가기도 하신다. 무엇을 샀는지 카드 사용 문자는 나에게 오기 때문에 그걸 보면 괜히 웃음이 난다.

'편의점 3,200원'
'마트 5,800원'

이런 문자들이 하나둘 쌓여간다. 귀엽기도 하다.


본인이 먹고 싶은 과일을 사 들고 와 동생에게 손질을 요구하기도 했다. 동생은 귀찮았겠지만 그래도 묵묵히 과일을 깎아 준다. 아빠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사람이 무언가를 원한다는 건 아직 살아 있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카드 사용 문자가 오면 나는 괜히 마음이 놓인다. 그만큼 내가 더 벌면 되지 뭐, 하는 다짐도 생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