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삼류 소설[14일 후]

14일 후

by 채널김

어느 날, 영익의 눈앞에 악마가 나타나서 이야기했다.


"돈을 한 번 넣어두면 14일 동안 원금의 두 배씩 늘어나는 통장을 주겠다. 100원을 넣어두면 다음 날 200원이 되고, 또 그다음 날은 400원… 이렇게 계속 쌓여가는 통장이야. 뭔지 알지?

이 통장은 온전히 너의 것이고 14일 뒤엔 네가 꿈꿔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있을 거야."


악마가 이어서 말했다.


"단, 조건은 14일 뒤에 쓸 수 있어. 한 달 뒤에 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도 있다고."

"왜 나한테 이런 걸 주는 거야?"

"내 면죄부를 위해서지. 난 너무 오래 악마로 살았어. 이제 그만할 방법이 생겼는데 그게 바로 이거지. 특별한 누군가에게 큰 행운을 주는 것."

"하필 왜 나야?"

"말했듯이 넌 특별하니까."


영익은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악마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평범한 자신이 왜 특별하다는 건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영익은 저 악마가 분명 함정을 파놓았을 거라 생각했다.


"저 돈을 쓰면 나에게 엄청난 불행이 오는 거 아냐?"
"저 돈의 세금이 100%다, 뭐 이런 건 아니지?"
"믿을 수 없어. 분명 무언가 있을 텐데?"


영익은 나름 머리를 굴려 이것저것 질문해 댔지만 악마는 그가 귀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후로도 영익은 함정이 될 만한 질문을 쏟아부었다.


"이봐, 자꾸 그렇게 의심하면 다른 사람한테 줄 거야."


그 말 한마디가 영익의 머리에 꽂혔다.

조급함.

그 마음이 들자마자 냉정함은 사라지고 통장을 갖고 말겠다는 마음만 남았다. 절망적인 현실이 스쳐 지나갔지만 말이다.


영익은 얼마 전 퇴사하고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금방 새 일자리를 구할 줄 알았지만 회사 문턱을 못 넘은 지 몇 개월째였다. 적금까지 깨면서 생활했지만 남은 건 며칠 뒤 내야 할 월세와 생활비 조금이 다였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악마가 등장한 건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급하게 머리를 굴린 영익은 대출을 받거나 돈을 빌려서 통장에 넣겠다고 했다. 하지만 악마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가진 돈만 넣을 수 있어. 그리고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통장은 사라진다."


영익의 머릿속 계산기가 미친 듯 돌아갔다.


'월세만 넣어놔도 어마어마한 금액이잖아? 딱 보름 정도만 버티면 돼.'


집주인에게는 사정을 설명하면 될 것이다.

14일 뒤에는 수십억, 아니 수백억이 될지도 모른다.


영익은 결국 남아 있던 돈을 모두 통장에 넣었다. 월세로 남겨둔 돈까지.

악마는 미소를 지으며 통장을 건넸다.


"14일 뒤에 다시 보자."


그 말과 함께 악마는 사라졌다.

그날 이후 영익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통장은 분명 늘어나고 있었다.

다음 날, 두 배. 또 다음 날, 또 두 배.

영익은 숫자를 보며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이게.. 진짜라니.."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다른 감정이 생겼다.

욕심.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더 넣는 건데..."


그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영익은 그 사실이 점점 미치도록 답답해졌다. 매일 밤 통장을 확인했다.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 금액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숫자가 되어 있었다. 영익은 밤마다 상상했다. 서울의 빌딩을 사는 모습. 뉴스에 나오는 세계 최고 부자.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 앞에 서 있는 모습.


"이제 며칠만 참으면 돼"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통장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몇 번이나 잔고를 들여다봤다.

혹시 악마가 속인 건 아닐까 계속 의심이 들었다. 날짜가 다가오자 영익은 사람이 맞나 생각이 들 정도로 초췌해져 갔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손은 계속 떨렸다. 그래도 그는 웃고 있었다.


"내일이... 드디어 내일이야!"


마침내 14일째 되는 날.

영익은 아침이 되자마자 은행으로 달려갔다.

심장이 미친 듯 뛰고 있었다. 그 돈이 진짜인지 만져봐야 했다. ATM 앞에 서서 카드를 넣었다.

출금.


금액을 확인한 순간 영익의 눈이 커졌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숫자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출금 버튼을 누르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갑자기 가슴이 쥐어짜듯 아파왔다.

"어...?"

숨이 막혔다.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사람들이 놀라서 몰려들었다.


"사람 쓰러졌어요!"
"119 불러요!"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영익의 눈동자는 초점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ATM 화면에 떠 있는 거대한 숫자였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익숙한 존재가 보였다. 악마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웃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넌 특별하다고."


영익의 몸에서 희미한 검은 연기가 빠져나왔다. 악마는 그것을 손으로 잡았다. 영익의 영혼이었다.


"아주 잘 익었군."


악마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절망 속의 욕망... 정말 훌륭한 맛이거든. 면죄부?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역시 멍청한 인간이야. 내가 특별한 놈을 제대로 봤어."


그는 영혼을 천천히 삼켰다. 악마는 웃으며 사라졌다.


ATM 화면에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도 있었던 숫자가 깜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