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마라톤(동아마라톤) 자원봉사

물품보관소 자원봉사

by 채널김


마라톤 현장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거나, 자원봉사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라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서울마라톤 광탈 3년, 결국 자원봉사로 티켓을 얻었다

서울마라톤을 3년 연속 신청 했지만 늘 광탈하며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클릭을 하길래 그렇게 빠를까? 어떻게든 빠르게 신청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며 모니터만 노려봤다. 그리고 늘 실망했다.


나처럼 좌절했던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바로 자원봉사다. 자원봉사를 하면 다음 해 대회에 우선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받는다. 이렇게 좋은 소식을 알았으면 진작했지!!


아무튼 자원봉사만이 살길이라 생각하고 오래전부터 자원봉사 신청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동마크루 홈페이지에서 공지가 올라오는데 대략 대회 한 달 전에 자원봉사 모집 공지가 올라온다.


난 자주 들여다보다가 잠시 바쁜 틈에 깜빡하고 말았다. 어느 날 아차 싶은 마음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그것은 "물품보관소" 자원봉사였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급수대나 메달 지급이었는데, 인기가 많은 자리인지 이미 접수가 마감되어 있었다.



지난 마라톤 급수대 자원봉사 후기

2025 서울레이스 자원봉사
https://brunch.co.kr/@channel-kim/53



그래도 무사히 신청했고, 대회 5일 전쯤 단체 채팅방이 만들어졌다. 명단을 보니 대략 200명. 인원이 많아서 내가 낄 자리가 있었구나 싶었다. 채팅방에서 중요 사항을 전달받고 대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 며칠 사이에 이탈 인원도 꽤 생긴다.


이렇게 중간에 못 오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사람을 좀 더 많이 뽑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모자란 인원은 당일에 다른 알바(?)분들이 있어서 인원이 모자랄 걱정 없다고 했다.


며칠 동안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금방 대회날이 온다.

풀코스는 광화문 출발 - 종합경기장 도착이고 10k는 종합경기장에서 출발과 도착을 한다. 둘 다 7시 30분 출발이라 새벽부터 일찍 오는 사람들이 많다. 버스 타고 오면서 광화문을 지나왔는데 그곳 분위기는 이른 새벽부터 활기찼다.



대회 당일 아침 6시 30분까지 잠실 종합경기장으로 갔다. 내가 대회에 나가는 건 아니지만 괜히 긴장됐다. 긴장을 안고 얼떨결에 1등으로 도착했다. 크루 리더님한테 출석체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멀뚱멀뚱 기다리면 된다.


곧 사람들이 다 모이면서 크루 리더님이 주의사항과 진행 계획을 전달해 준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가장 뒷번호 차량이라 짐이 가장 적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아무래도 늦게 출발하는 조 사람들의 짐이기도 하고 뒤늦게 맡기는 나머지 짐들이라 다른 조보다는 수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81호차부터 91호차까지 가장 마지막 호차들의 짐이 오늘 우리 조가 관리할 대상이다. 저 중에서도 나는 81. 82호차 당첨. 사진처럼 (81.82)(83.84.85) 이런 식으로 묶어서 조를 짠다. 대략 2~3명이 한 조가 되어 일한다. 거기에 아르바이트하시는 분들 3명 정도가 추가되어서 앞서 말한 대로 인원이 부족하진 않는다.



비 소식이 있어 판초우의도 나눠 받았다. 나중에 결국 비가 왔는데 짱짱하니 꽤 쓸만했다. 그리고 앞으로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미리 밥을 먹어야 했다. 도시락과 간식은 챙겨준다.



아직은 날이 추워 음식이 별로였지만 에너지 비축용으로 다 먹었다. 앉을 곳이 없어서 짐을 넣는 렉에 서서 각자 먹었다.



2만 명의 짐이 도착하다


밥까지 다 먹고 좀 쉬다 보니 차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1호차부터 순서대로 들어온다. 이렇게 많은 택배 차량이 줄줄이 긴 행렬로 들어오는 건 처음 본다. 무려 2만 명의 짐이 옮겨져 오는 것이다.



앞 호차부터 들어와서 우리 호차는 맨 마지막에 들어온다. 그래서 앞쪽 먼저 도와주면서 뒤로 오기로 했다. 트럭에서 짐을 내리면 사람들이 그에 맞는 번호 앞에 내려놓으면 된다. 짐이 가벼운 것들도 많지만 아직 두꺼운 옷들이 많아 꽤 무겁다.


사람들은 많지만 이 사람 저 사람 뒤엉켜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뭔가 더 체계적인 방법이 있을 것 같지만 거의 주먹구구식으로 나르고 정리했다. 아무래도 짐이 순서대로 실리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그렇게 윗 번호부터 차례로 내려주고 정리하고 하다 보니 우리 호차까지 내려오는데 1시간 반정도 걸린 듯하다.


의식하지 않고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호차까지 왔다. 체감상 30분 한 거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 거였나. 시간이 안 가는 사람은 자원봉사 한 번 해보길 바란다.



텅 빈 렉이 짐들로 가득 찼다. 마지막으로 번호가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면 짐 정리는 끝이다.



그거 조금 했다고 땀나고 힘들어서 급하게 빵이랑 바나나 수혈. 간식은 아껴 먹으려 했는데 다 털어 먹었다. 조금 힘들긴 해도 못할 정도는 아니다. 작업 중에 종종 설렁설렁하는 사람들도 봤다. 사람이 많으니 누군가는 열심히 하고 누군가는 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짐을 찾지 못한 사람들

이제 선수들이 들어오길 기다리면 된다.

10시가 넘어가면서 선두그룹 선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가 있는 곳은 무대 뒤편이라 멀리서 희미한 소리만 들렸다. 선두 그룹은 앞쪽에서 짐을 찾아가기에 뒤쪽에서 있는 우리한테 사람들이 오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했다.



슬슬 나중에 출발한 (F, G조) 사람들이 하나 둘 온다. 내가 앞에서 사람들의 번호를 확인하고 뒷사람에게 번호를 알려주면 찾아서 가져다준다. 짐 번호를 다시 확인해 보고 배번호에 체크만 해주면 된다.


우리는 뒤쪽이라 짐이 많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짐 번호를 잃어버린 사람이 많았다. 배번호에 짐 번호를 스티커로 붙여주는데 뛰다가 많이 잃어버린 모양이다. 게다가 찍어놓은 사진도 없고 당사자는 기억도 못 한다. 짐을 하나씩 다 열어볼 수 없어 어느 정도 짐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우리 조에서만 10명 넘게 번호 스티커를 분실한 사람들이 발생했다. 핸드폰이 짐과 함께 있는 경우는 전화라도 해서 찾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없는 분들은 이 추위에서 짐이 빠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결국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못 찾다가 겨우 찾으신 분이 계셨는데 내가 다 눈물이 날 뻔했다. 옷도 없 추운 시간을 한참이나 기다리신 분이었다. 무사히 집에 돌아가시고 감기 안 걸리셨길.




그렇게 그분을 마지막으로 보내고 봉사활동은 마무리 됐다. 아침 6시 반부터 시작해 거의 2시 다 되어 끝났다.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갔다.

내 목적은 다음 해에 열리는 대회 티켓을 얻기 위함이었지만 또 하나 값진 경험이었다.


달리기만 할 줄 알았지 이렇게 뒤에서 힘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몰랐다. 그중에서도 체력적으로는 짐보관소 자원봉사가 가장 힘든 것 같다. 기회가 되면 다른 포지션의 자원봉사도 지원해 볼 생각이다.



아쉬운 점


대회 안내 숙지

우리가 있는 자리는 경기장 입구와 가까워서 들어오는 사람마다 길을 물었다. 국제 대회다 보니 외국인들도 많이 물어봐서 길안내를 해줘야 했다. 처음엔 제대로 몰라서 엉뚱한 길로 안내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이런 것에 대한 교육을 조금 더 받았으면 좋지 않았나 싶었다. 물론 자원봉사 하기 전에 대회 안내에 관해 개인이 충분히 숙지하고 와도 좋을 것 같다.


짐 번호 스티커

정말 많은 분들이 스티커를 잃어버려서 당황하고 우리도 덩달아 환장했다. 바로 도와드리고 싶어도 빠르게 대처하기 힘들었다. 몇몇 분의 번호를 받아놓고 짐이 빠지면 나중에 전화해서 다시 확인하게 했다.


다른 대회에서도 짐 분실이나 번호 분실 같은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택배를 받을 때부터 고유의 번호를 받아서 짐을 맡기는 시스템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걸까?


덧 붙여서 혹시라도 대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꼭꼭 자신의 짐 번호를 사진으로 남겨두던지 기억을 하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짐에 이름과 번호까지 남겨놨다.

짐 가방 입구는 야무지게 묶어야 옮기는 중에 열리지 않는다. 가끔 찢어진 짐 가방도 봤는데 내 마음도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