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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 상인의 백인 제자 중 항래恆來 선사를 소개합니다.

恆來法師

by 현안 XianAn 스님

항래 스님은 1976년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습니다. 항래 스님은 선화 상인의 원로 제자 중 한 분이고, 현재 워싱톤주 시애틀 지역에 상주하고 있습니다. 이 비디오는 1980년 초 아시아지역에 선화 상인과 함께 방문했던 기억과 선화 상인의 가르침에 대한 기록입니다.

Dharma Master Heng Lai left home and became a monk in 1976. He is one of Master Hsuan Hua’s senior disciples, and currently resides in Seattle, Washington. This is his account of Master Hua and his ways of teaching during a delegation to Asia in the early 1980s.


이 비디오는 Buddha Root Farm (부처님 뿌리 농장?)에서 찍었고, 이곳은 선화 상인께서 살아계실 때 정토 수행과 법문을 했던 곳입니다. 선화 상인 법문집 중 유일한 정토 법문집(영문판)이 있는데 그 제목이 바로 Buddha Root Farm입니다.


2018년 7월 26일 오레곤주 리드스포트 부다 루트 팜

유튜브 링크 (영어) https://youtu.be/h1st9cAXX28


[비디오 내용 한국어 번역]


사람들이 요청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화 상인이 가르치실 때 승가일 때와 재가자일 때 크게 다릅니다. 내가 출가했을 때 그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하. 우리의 스승님은... 절대로 육체적으로 때리거나 하시진 않았습니다. 옛날 중국에서 했던 것처럼 그렇게 때리진 않으셨죠. 예전엔 제자들이 스승님에게 자주 얻어맞곤 했습니다. 선화 상인은 다른 방법이 있었습니다. 우리, 항실과 나는 1976년에 출가했는데, 아마도 1980년인가 1981년에 스승님이 말하시길, "오케이 우리가 이제 아시아에 사절단으로 갈 건데,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에 갈 거다. 사부님이 물었어요. 너도 가고 싶니?"


사부님이 그렇게 물었어요. 그래서 나는 "네 물론이죠. 가고 싶어요" 난 휴가 같은걸 가는 줄 알았거든요. 나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이 나라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진짜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사부님 하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경치 구경, 관광도 하고 좋겠다 생각했어요. 엄청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선화 상인은 이런 여행을 가르침의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특히 승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선화 상인은 비행기에 올라타자마자 우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법을 말입니다. 그리고 대만에 먼저 갔는데, 옛날 그 당시 80년대 초에, 그들은 새로운 불교 지도자(아마 총무원장 그런 걸 뜻하는 것 같습니다)를 뽑는 중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사람들(대만 사람)이 아마도 천주교 교황이 부러웠던 거 같아요. 그래서 불교에서도 그런 동등한 뭔가를 원했던 거 같습니다. 난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미 그 일은 정해져 있던 거 같아요 (뽑힐 사람이 이미 무언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마치 그 '새로운 교황을' 뽑기 위해 선거를 하는 척했습니다. 그 새로운 불교 교황 말이에요.


사부님은 거기 응한 겁니다. 우리는 타이베이의 그랜드 호텔에 머물렀습니다. 와 우리가 그랜드 호텔에서 머물를 수 있다니.... 진짜 쿨하다. 그래서 우리가 거기 들어갔는데, 거기 수천 명이 있었습니다. 매우 붐볐습니다. 선화 상인이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즉시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이 이미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절을 하고 있었고, 거기 대부분 사람들이 다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승가도 다 사부님께 절했습니다.


선화 상인이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난 이제 방으로 갈 거다. 그리고 선화 상인이 나와 항관 (이름이 확실하지 않네요)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둘은 나가서 돌아다니면서 둘러봐라. 그리고 그는 항인과 항대(이름을 중국어로 발음해서 확실하지 않습니다)도 그 여행을 같이 갔었는데 (이 둘은 former라고 영어로 말하는 것을 보니 환속한 걸로 보입니다) 너희 둘도 역시 나가서 돌아다녀라. 눈을 잘 뜨고 다니면서 입은 다물고 있어라. 여러 가지 콘퍼런스가 있을 테니 그냥 앉아서 예의 바르게 하고, 네 의견을 내놓지 말거라. 그리고 난 다 듣고 싶다. 돌아와서 보고해. 난 방을 나가고 싶지 않다. 다른 법사들이 날 질투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내 방안에 있겠다." 그래서 사부님은 방 안에 계셨고, 우리를 심사팀으로 내보냈습니다.


물론 우리는 장삼, 가사 등을 입고 있었습니다. 대만과 중국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입지 않아요. 그냥 아래 받혀 입는 것만 입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아픈 손가락처럼 튀었습니다. 모두들 이 사람들은 뭐 하는 거지?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어요. 거기 대만인, 한국인, 일본인, 티베트인, 스리랑카인, 태국인 등 모두 다 있었어요. 여러 종류의 승가가 다 거기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루 세 번을 먹고, 호텔이 제공해 준 굉장히 호화스럽고 양 많은 식사를 했습니다. 거기 고기, 양파, 마늘이 다 있었습니다. 모두들 그런 걸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에 고기, 양파, 마늘이 들어있지 않은 음식을 찾아봤는데, 거기서 (우리가 하는 수행을) 행한다는 게 매우 어려웠습니다. 나한테는 그게 참 신기했습니다. 이게 불교 관련 행사이고 불교 모임인데,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죠. 꽤 쇼킹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우리는 버스를 탔습니다. (행사용) 버스가 20대 아니면 30대 정도 되었습니다. 우리는 불광사를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건 대만섬의 남쪽 지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섬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가야 했습니다. 버스가 운전해서 얼마나 걸렸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반 정도 갔는데,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 버스가 멈췄습니다. 엄청 큰 공원에 이미 점심 식사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거기에 이미 텐트도 쳐놓고 다 준비해놓았습니다.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그리고 큰 식탁도 있었는데, 식탁 위엔 회전식판(lazy susan)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서 사부님과 같이 앉았습니다.


평소처럼 우리 사절단은 꽤 컸습니다. 해외라서 좀 줄여서 20~30명 정도 되었습니다. 승가는 6 또는 7명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사부님과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물론 이들은 우리를 왕자처럼 대접해줬습니다. 마치 우리가 왕족인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여러 엄청난 요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모두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회전 식판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 스프링롤이 엄청 쌓여있는 접시가 있었어요. 그래서 속으로 '와 저거 맛있겠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나한테 오고 있을 때 내가 말했어요, "나도 두 개 먹을게요" 그리고 "음... 두 개 더 주세요". "음 한 개만 더?" 그와 동시에 사부님은 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사부님이 말했어요. "저길 한번 봐요 봐. 우리가 먹을 스프링롤을 다 가져가고 있네. 우리가 먹을 건 하나도 없겠네". 얼마나 창피합니까. 난 곧바로 얼굴이 빨개졌어요. 참기 힘들어서 식탁에서 일어나서 도망갔어요. 사부님이 깔깔 웃었습니다. 내가 어디로 도망을 갈 수 있겠습니까. 외국에 있는데, 어딜 가겠습니까. 내가 갈 수 있는 곳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곧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난 다시 의자에 앉아서 야단 맡을 준비를 했습니다. 사부님이 내 접시에 스프링롤을 쌓아놓았습니다. 선화 상인은 "내가 너 주려고 스프링롤을 이렇게 많이 남겨놨어. 다 먹어도 된다." 사부님은 우리를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너무 탐욕스럽지 않은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런 게 선화 상인의 방법이었습니다. 선화 상인은 학생이 망치기를 기다렸다가, 쌓아주셨어요. 그건 나에게만 그런 게 아닙니다. 불쌍한 항(?)은 당시 사미였는데, 막 출가했었죠. 선화 상인은 끊임없이 작은 일에 대해서도 그를 꾸짖었습니다. 내 가방은 어디 있니, 네가 내 가방을 훔쳤구나. 가서 내 가방을 가져와. 너 왜 이리 느리니. 서둘러라. 쉬지 않고 꾸짖었습니다. 그 사람이 뭘 잘못했지. 무슨 일이지?


그래서 내 짧고 즐거운 휴가는 금세 악몽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말하길 "난 누구지?". 내가 이런 일을 겪을 줄이야. 나는 내가 겪을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사부님 손바닥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진짜로 가르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는 우리가 도망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보았자 어딜 가겠습니까? 선화 상인은 진짜로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진짜로 우리의 모든 번뇌에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진짜로 빨리요. 그렇게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그는 참으로 흥미로운 방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아시아에 방문하는 동안으로 여겨집니다) 사부님은 매일 저녁 법문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법문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전체가 사절단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저녁 법문 했습니다. 근데 그는 늘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비구, 비구니가 먼저 말을 하고, 그런 후 사부님이 말하셨습니다. 우리는 여행하는 내내 매일 저녁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건 매우 흔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마스터(사부님)만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부님은 우리 모두가 설하는 방법을 배우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홍콩에 도착했습니다. 나한테 홍콩은 처음이었는데, 우리는 Buddha's lecture hall (불교 강당)에 갔습니다. 거긴 작아서 여기의 반 정도 사이즈였어요. 거기 비구니 스님들은, 당시 거기에 있던 비구니 스님이 모두 나와서 사부님께 절을 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꾸짖기만 했습니다. 내가 거기 있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들을 꾸짖기만 했습니다. 내가 속으로 '우와, 사부가 금산사에서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여기에서는 완전히 다르구나'. 그가 마치 완전히 변한 거 같았습니다. '그는 여기서는 완전히 다른 스승님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모든 이를 조건에 따라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학생)의 조건(연)에 따라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 여행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레이시아에 갔습니다. 나에게 거기가 처음이었습니다. 거기에선 우리의 도량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거기 어떤 수도원이나 사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화 상인이 법문을 할 수 있도록 강당을 빌려놨습니다. 사부님은 법문을 하시고, 우리가 이제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건데, 사람들이 빨간 봉투를 들고 앞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어쩌면 1 페니 또는 2 페니(10원, 20원) 정도가 들어있을 거예요. 말레이시아의 페니(동전)입니다. 봉투 안엔 구리로 된 페니가 들어있어요. 법문이 끝날 때 사부님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당신들 짠돌이들... 당신들 모두 이렇게 기부금을 주는데, 1 페니, 2 페니예요. 그게 어떤 종류의 기부금인가요? 그걸 내고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복을 짓는다고 생각하나요? 그는 그런 기부금을 주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고는, 봉투를 하나 가져와서는 말했습니다. 여기 이 봉투에는 1 다임(1 페니보다 10배 액수가 큼)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걸 기부한 그 사람은 매우 가난해요. 이 사람은 진정한 공과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밤 법문을 했는데, 젊은, 아주 어린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12살즘일거예요. 그 아이는 벙어리였어요. 그녀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뭔가 잘못되어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사부님이 그 여자 아이를 위해 염송을 했습니다. 법회 중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 아이가 "아 아아아"하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타고, 들것에 타고 왔습니다. 사부님이 말하길, "나는 이제 아무도 힐링하지 않을 거예요. 나가요. 더 이상 안 해요"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젊었을 때 나룻배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줬습니다. 그가 아주 젊은 승려였을 때, 그는 그 예전에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찾아와서 지팡이로 두들겼습니다. 절뚝거리고 찾아오면, 사부님이 그들을 톡 치면 절름발이가 없어졌습니다. 선화 상인은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치유했죠. 그때 나룻배가 매서운 폭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의 가라앉을 뻔했습니다. 선화 상인이 말씀하시길, 사람들을 치유하면서 하늘과 땅의 음양을 틀어졌고, 그래서 용과 천신과 천인들 모두가 매우 화가 났다고 합니다.


선화 상인은 관음보살님께 용서해달라며 미래에는 그렇게 교만하지 않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 일로 한 수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냥 막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치유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인과 연에 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법문 하는 동안 이 법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설명했습니다.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여행 중 많은 걸 배웠습니다.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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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실 법사(Rev. Heng Sure)와 항래 법사 (Ven. Heng Lai, 恆來法師)


[항래 스님에 대한 글(영어) 링크]

http://www.drbachinese.org/vbs/1_100/vbs72/72_9.html

https://www.dharmasite.net/Nirvana_Day_Talk_of_Dharma_Master_Heng_Lai.htm

https://smm.drba.org/about-us/smm-history/

https://www.dharmaforest.community/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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