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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May 25. 2021

어린이 참선, 아라한, 결가부좌

영화 선사의 참선 법문

2019년 10월 19일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sO1MEA9nJ5I


나는 아이들이 실수하도록 그냥 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실수도 하기 전에 가르치려고 하면 아이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는 절에 오는 어린 아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아왔습니다. 절에 오는 아이들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니 매우 신기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챤 메디테이션(참선)을 가르칩니다. 

 나는 몇달전부터 릴리씨가 딸을 절에 데려오는 것을 봤습니다. 릴리씨가 딸을 절에 데려오기로 한건 딸이 절에 오면 집에서보다 더 즐거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딸을 데리고 왔습니다. 내가 그 딸을 보니 더 행복한 이유가 초선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선의 훈련과정도 받지 않고서 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스펀지처럼 흡수합니다. 바른 환경에 데려다 놓으면 그걸 잘 관찰합니다. 우리의 환경은 선(禪)의 환경입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상선(無相禪, No Mark Chan Meditation)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우릴 보면 우리가 선을 수행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내 학생들을 보십시오. 다들 일하고 있습니다. 내 비구와 비구니 제자(영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는 뼈 빠지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기 뒤에 있는 한국 비구니 스님 조차도 그래요. 저 비구니 스님도 요즘 참선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최근엔 여기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다른 절에 가는 시간이 더 많은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도 모두들 진전해왔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게 내 즐거움입니다. 이게 나한테 TV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여기서 기어다니는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도 삼매에 들어있습니다. 벌써 삼매에 들어가며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태어날 때 이미 삼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게 우리에게는 참선을 가르치는 즐거움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명상 훈련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겠지만 사실 우린 무상선(無相禪)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하고 있지만 여러분은 우리가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건 내 스승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앙종 무상선이며, 내 스승인 선화 상인께서 이 나라(미국)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여러분이 하고 있는, 우리가 여러분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유상선(有相禪, Chan with marks)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아직 상(모양)이 없는 선을 가르쳐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무상선을 할 수 있을만큼 복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먼저 상(모양)이 있는 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건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다리를 꼬아 앉으라 하고, 제일 먼저 몸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유상선(有相禪) 즉 상(相, 모양)이 있는 선입니다. 알았나요? 가장 먼저 바른 자세로 앉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사실 여러분의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짧은 비디오가 있습니다. 테리비 좀 켜주세요. 그건 나의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하죠. 저번 주에 중국 상하이로부터 방문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뭘 했는지 아세요? 그녀에게 유상선을 소개해줬습니다. 멀리서부터 왔으니 우리가 뭘 하는지 한번 보여주자고 했죠. 유상선을 소개해줬습니다. 이 여자분이 잠을 자고 있는게 아닙니다. 뭘 하고 있을거라 생각하시나요? 비디오를 재생해서 그 여자분이 뭘 했는지 한번 봅시다. 이 비디오는 12초짜리 비디오입니다. 그러니 집중해보세요. 여러분이 눈을 깜빡하면 비디오를 놓칠 수 있어요. 이 비디오에 나온 두 사람이 사실은 친인척 관계입니다 (사실 방문객은 상하이에서 온 현회 스님의 엄마입니다). 

 (비디오에서) 엄마가 엄청난 통증을 겪고 있는데 웃고 있는건 바로 그 딸입니다. 엄마는 울부짖는데... 이게 중국인이 그런지, 상하이 사람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디오가 재생됩니다) 현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설명해볼래? (비디오에서 중국어로 현회 스님이 엄마에게 말하는 내용) 말싸움 중인가요? (현회 스님: 어머니가 풀고 싶다고 말하고, 제가 풀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예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너무 아파하고 울부짖는데, 딸이 풀지 말아라고 하고 있는거죠. 감히 풀면 안된다고 하는거죠. 하하하. 제가 여러분을 위해 해설해줄게요. 다리를 풀면 내가 엄마를 버리겠어라고 말하는겁니다. 하하하. 아무튼 엄마가 상하이에서 여기 캘리포니아 로즈미드시까지 왔는데, 별로였어요. 로즈미드시는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건물도 다 못생기고, 낡았어요. 엘레베이터도 없죠. 사찰에 엘레베이터도 없어요. 그래서 딸은 엄마에게 왜 우리가 여기 로즈미드시에 숨어있는지 설명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분(엄마)가 결가부좌로 앉을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엄청 많은 복이 필요한 일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여러분이 결가부좌로 앉으려면 엄청나게 많은 복이 필요합니다. 이 여자분처럼 단지 결가부좌로 앉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물론 이 여자분의 한쪽다리가 벌써 풀리기 시작하지만, 왼쪽다리가 벌써 바닥까지 떨어지려고 하네요. 하지만 이 여자분이 그냥 그렇게 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복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여러분에게 결가부좌 자세로 앉을 수 있게 권장하고 훈련시키는걸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사실 그게 여러분에게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이게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특히 아이들, 여기에 있는 얘들은, 나중엔 결국 결가부좌로 앉을 수 있게 될것입니다. 몇 달이면 됩니다. 우리가 얘들을 훈련시키면 몇달이면 됩니다. 그건 몇 달이면 아이들의 복의 수준이 증가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냥 말만 하는게 아닙니다. 선(禪)은 말만 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선(禪)을 가르치는 이유는 삼매(三昧)에 들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삼매에 들지 못하면 수년동안 또는 수십년동안 참선(명상)을 해도, 삼매가 증가되지 못한다면, 그건 여러분이 시간을 잘 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스승으로부터 배운 선에서는 여러분이 향상해야한다고 권합니다. 선정의 힘을 키우라고 합니다. 아까 그 여자분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하면... 얼마나 견뎠죠? (현회 스님: 55분이요) 55분의 통증. 이게 아프죠. 여러분도 알고, 나도 압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거치게 하는건 새로운게 없습니다. 나도 이 모든걸 다 겪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겪어온 것보다 난 훨씬 더 많이 겪었어요.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많이 견뎠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분이 이걸 견뎠는데, 현회가 어떻게 이걸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엄마를 결가부좌의 통증에서 55분동안 앉게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녀가 도약을 했습니다. 55분의 통증 그리고 삼매의 힘이 한 단계 커졌습니다. 그게 나타납니다. 그녀는 기분이 더 좋아지고 더 긴장이 풀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여러분이 향상했다는걸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마음이 전만큼 스트레스 받아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하이 사람들은 죄다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모두 다 스트레스 받아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물질적인건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스트레스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은 모릅니다. 거기(상하이)에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분이 거기서 와서 좀 향상되었습니다. 우리한테는 그게 좀 얘들 수준입니다. 우리이 얘들은 벌써 그것보다 더 높은 단계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어린이들은 매우 무서워요. 

 또 다른 예시를 들어줄게요. 다른 아이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있는 그 얘는 두고, 우리는 그 아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걘 이미 그렇게 왔습니다. 그 아이는 왔을때 이미 삼매의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삼매란 여러분이 이것저것을 보아도 그냥 편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 꼬맹이 알롱이가 왔는데, 엄마가 C섹션을 했었죠. 맞나요? 아 C섹션은 아니였는데, 진통제 없이 출산했다고 했던가요?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어요. 하하하. 난 독일인에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요. 하루는 내가 그 아이를 보았는데, “우와, 어떻게 네가 벌써 삼선(三禪)이냐”. 그 아이 가족에 아이를 데리고 절에 왔는데, 내가 그날 할일이 없어서 아이를 보았더니, “우와 벌써 삼선이네” 그리고 혼자 웃었어요. 아들이 엄마보다도 단계가 높았기 때문이예요. 엄마는 이선(二禪)인데, 아들이 벌써 삼선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혼자 낄낄 웃었어요. 내가 이 이야기를 해줬던가? 아닌가요? 내가 누구에게 말해준적 있어요?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오늘 여러분이 알았네요. 몇달이 지나서 그 아이를 다시 보니까 이제 그 엄마가 삼선이었어요. 아들은 근데 하나도 진전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들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나 했습니다. 근데 난 이 모자를 무시했어요. 이 아이를 매일 보는걸로 충분하니까요. 

 근데 오늘 아침 그 아이를 보니까, 여러분은 이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삼선의 문제점은 삼선에서 사선으로 가는게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비구나 비구니 스님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점입니다. 비구나 비구니 스님들이 삼선에 가서는 세세생생 거기 정체합니다. 이게 무서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삼선에 도달하면 거기서 나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이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은 깨닫지 못하는 점입니다. 나는 세상의 수많은 비구와 비구니 스님을 봤는데 모두들 수년간, 수십년간 거기 정체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거기 정체합니다. 그런 이유로 내가 혼자 웃으면 이 사람들이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올지 보자고 생각했어요. 이들(엄마와 아들)은 오늘날 어디에 있을까요? 나도 몰라요. 

 질문. 검정 마이크. (스님이 저번 주에 만트라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이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군요! (우리가 토요일마다 염송하는 능엄신주 중에 마지막 구절에 대해서요) 다른 질문은 없나요? (아니요 없어요. 스님이 저한테 오늘 물어보라고 했어요) 토요일이라고 했지 아침이라고는 안했어요. 아침이 될수도 있고, 그게 오후가 될수도 있어요. 난 재미있는데 네가 내 재미를 망치고 있구나. 하하하. 아무튼 오늘 그 남자 아이를 쳐다보니까 어제 그 아이가 모찌와 젤라토를 먹었어요. 아이가 아주 행복했습니다. 빡 뛰어다니면서 웃었어요. 더러운 손가락을 내 가사자락에 닦았어요. 그 아이가 어디있죠? 내가 잊어먹었어요. 다시 봅시다. 사람들이 뭘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시 말하지만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예요. 알았나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이제 몇살이죠? 거의 3살이요 (미국은 만 나이로 합니다). 내가 보장합니다. 지난 3년간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냥 관찰하는 것만 원했어요. 이들(엄마와 남자 아이)이 서로 뭘하는지 봤어요. 내 재미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지 간섭하는게 아닙니다. 스타트랙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아요. 그래서 지난 3년간 나는 이들을 관찰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모자가 오늘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무서운 일입니다. 이 사람들이 무서워요. 지침이 없었어요. 나는 이들이 알아서 헤엄치도록 뒀습니다. 무섭지 않나요? 상상해보세요. 만약 내가 지침을 줬다면 지금쯤 깨달았을 겁니다. 엄청나지 않나요? 환경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내가 기억이 납니다. 최고의 경영대학(MBA)에 갔을 때 교수들보다도 주변 친구들에게 훨씬 더 많이 배웠습니다. 나는 교수님들보다도 주변 학생들에게 더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들이 뭘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이 모자를 데리고 나가서 점심을 대접하면서 아들한테 뭘 했는지 한번 물어보세요. 그리고 엄마는 어디에 있나요? 나는 수년전 그 엄마에 대해선 포기했습니다. 내가 뭘 말해주든 그녀는 듣지 않는다는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기만의 것이 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그것이 내 요점입니다. (도량) 환경이 흥미롭습니다. 질문이 있나요? 인터넷에 질문이 있습니다. (질문: 다른 이의 괴로움에서 즐거움을 찾는게 잘못된 건가요?) 글쎄 비디로을 보세요. 그 딸이 많이 즐기잖아요. 딸은 웃고, 엄마는 소리를 지르는데 괜찮아보이는데요? (질문: 어떤 이가 아라한과에 도달하면 결가부좌로 앉는 것이 어떤 소용이 있나요?) 네. 결가부좌로 앉으면 그러면 여러분이 깨닫는게 훨씬 더 쉬워집니다. 훨씬 더 쉽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이 모르는게 당연합니다. 선종에서는 우리가 이런걸 죄다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분이 첫 날부터 바른 기반을 세우도록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처음 가르치는 것, 바른 기반의 일부가 바로 결가부좌입니다. 

 여러분이 아라한과에 도달한 후, 아라한과에 도달하는데 결가부좌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게 전혀 필요불가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증명은 소승불교의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은 대부분 결가부좌로 앉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몰라서 결가부좌로 앉지 않습니다. 이들이 결가부좌로 앉는다면, 결가부좌 앉는 훈련을 한다면 아라한과에 훨씬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습니다. 훨씬 더 빨리됩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여러분이 결가부좌로 앉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결가부좌로 앉으시면 삼매에 들기가 더 쉽고, 선화 상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삼매가 훨씬 더 깊습니다. 여러분의 선정의 단계가 더 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러분의 삼매를 깨는게 즉 삼매에서 나오도록 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삼매의 단계가 더 깊으면 다른 이가 여러분이 삼매에서 나오도록 하기 위해 간섭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그 삼매의 단계를 훨씬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라한과를 득하는 것과 깨달음의 차이점은 깨달은 자는 아라한보다 훨씬 더 발란스가 있다는 것입니다. 깨달은 자의 마음이 아라한의 마음보다 훨씬 더 발란스가 있습니다. 아라한은 약점이 있습니다. 엄첨난 약점이 있습니다. 결가부좌로 앉는게 그 약점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결가부좌로 앉지 않은채 아라한과에 도달한 후에 결가부좌 자세로 앉게 되면, 배우기가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결가부좌로 앉지 않고서도 여기까지 왔는데 뭐가 필요있겠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라한이 되기 전에 결가부좌로 시작하지 않으면 훨씬 더 변하기가, 개선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가부좌로 앉지 않는 아라한은 모두 다 그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만난 아라한은 다 그랬습니다. 다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다들 “이런거 필요없어”라고 말합니다. 이제 “아니 당신은 필요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결가부좌로 시작하는게 훨씬 더 좋습니다. 결가부좌로 앉는걸 배우는게 훨씬 더 좋습니다. 

 이들은 (결가부좌 자세가) 마음을 균형잡아주기 때문에 꼭 그렇게 앉아야 한다는걸 알지 못합니다. (결가부좌 자세가) 여러분의 마음을 균형잡아 줍니다. 그냥 결가부좌 자세로 앉는다는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균형잡아 줍니다. 이 자세는 자연스럽게 여러분의 마음에 균형을 잡아줍니다. 자연스럽게요. 

 (청중; 아라한의 약점이 무엇인가요?) 아라한의 약점... 내가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해줘야하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아라한은 아주 거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삶에서 너무 탈착이 되어서 삶에 다시 연관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여러분과 달리 이들(아라한)은 이 세상에 집착이 아주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음식에 대한 집착이 있죠? 맞죠? 그래서 여러분은 아직 아라한이 아닙니다. 돈에 집착이 있죠? 아라한은 삶으로부터 너무 탈착되어서 여러분이 이들에게 더 이상 뇌물로 꾀일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돈에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은 제자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절에도 관심이 없어요. 이들을 어떻게 유혹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유혹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아라한)에게 결가부좌로 앉으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진전할 수 있다고 말해주면, 이들은 '왜 진전해야 하나요?'라고 묻습니다. 그것이 이들의 첫 반응입니다. 나는 지금 이 상태가 완벽해라고 말합니다. 알았나요? 그래서 그렇습니다. 그게 그들의 엄청나게 큰 약점입니다. 그래서 거기 도달하기 전에 미리 준비시켜놓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확신시키는게 매우 어려워집니다. 계속 개선하라고 확신시키기 어렵습니다.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훨씬 아주 많이 어렵습니다. 

 이와 반대로 내 제자 모두가 배우는게 하나있습니다. 한번 물어봅시다. 뭘 배웠나요? 한국인들에게도 물어봅시다. 뭘 배웠나요? 나이 든 제자 말해봐. 여러분 (제자들아) 뭘 배웠나요? 출가자들에게 대답하게 둡시다. 시키는대로 해라? 그만두지 말아라. 출가자들아 뭘 배웠나? 아라한과에 도달했을 때 이들이 역으로 할 수 있는 것, 잊지 않을 그런 것입니다. (이들은) 이걸 잊지 않을 것입니다. 뭘 배웠나요? 제자들 중 나를 10년 따른 제자도 있는데, 넌 뭘 배웠냐? (현신 스님: 반응하지 말아라)  다른데로 가라. (현인 스님: 우리 모두 다 우리가 멍청하다는걸 배웠습니다) 보셨나요? 방금 대답한 이 사람 말고 다들 멍청한 대답을 했습니다. 이들에게 모두 자신이 아주 멍청하다는걸 가르쳐줬습니다. 이들은 하루가 지나면 다음 날 계속 자기가 멍청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근데 아라한이 “난 이제 지혜가 있으니...”라고 말하는데, “아니! 넌 지혜가 없어! 너는 아직도 멍청해”. 

 이 사람들이 아라한과에 도달했을 때, 마스터가 나한테 아라한과에 도달했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없어. 난 아직도 너무 멍청해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모두 아직도 멍청하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매주 나는 제자들에게 증명해 줍니다. 너는 멍청해, 너 멍청해, 너 멍청해, 너 멍청해, 너 멍청해, 포기다. 어떤가요? (박수) 아니예요. 위산사에서만 이런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절에 가서 여러 비구, 비구니 스님들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은 모두 다 특별하고, 대단합니다. 우리 절에서는 이들이 다 멍청합니다. 그리고 난 이들(제자들)에게 시간이 지나고 지나도 모두 다 멍청함을 계속 증명해줍니다. 사실입니다. 가슴에서부터 말하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을 보면서, 우와 넌 참 멍청하구나라고 말합니다. 오케이! 모두들 오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점심식사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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