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ravaka disciples, Both men and women, Contemplate and practice the Four Noble Truths, Concealing the real and displaying the expedient.
성문계에는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의 성문 즉 “쉬라바카”가 있습니다. 이 법계를 더 작은 단위로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re are Hearers (Shravakas) of the first fruition, the second fruition, the third fruition, and the fourth fruition. This Dharma Realm is further divided into:
a. 예류향(豫流向): 예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those approaching the first fruition, who have not yet realized the fruition;
b. 예류과(豫流果): 예류에 도달한 상태 those who have realized first fruition;
c. 일래향(一來向): 일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those approaching the second fruition;
d. 일래과(一來果): 일래에 도달한 상태 those who have realized the second fruition;
e. 불환향(不還向): 불환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those approaching the third fruition; f. 불환과(不還果): 불환에 도달한 상태 those who have realized the third fruition;
g. 아라한향(阿羅漢向): 아라한과를 향해 수행해 가는 단계 those approaching the fourth fruition; and
h. 아라한과(阿羅漢果): 아라한에 도달한 상태
those who have realized the fourth fruition.
성문은 또한 아라한(영어에 성문과라는 단어가 없으므로, 수다원부터 아라한까지 모두 그냥 아라한이라고 부르고, 수다원은 1단계 아라한, ... 아라한은 4단계 아라한)이라고 불립니다. 아라한은 날아다닐 수 있고, 스스로 변신할 수 있으며, 신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 “난 아라한이다”라고 말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과위를 증득했다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허락되지 않는 일입니다. 성문에 도달한 성자는 걸을 때 발이 바닥에 닿지 않습니다. 그냥 보기에는 땅 위에 걷는 것으로 보여도, 사실은 공기 중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발이 바닥이나 흙에 닿지 않습니다. 진흙을 걸어가도, 발이 깨끗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 화엄종의 첫 조사였던 두순杜順 법사가 바로 진흙 위를 걸어도 신발에 흙이 묻지 않았던 사람 중 한 분입니다. 이것은 성문을 얻은 성자의 표시입니다. 아무나 성문을 얻었다고 막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Hearers are also called Arhats. Arhats can fly and transform themselves, and they possess supernatural powers. One should not casually claim that he has attained the fruition, saying, "I'm an Arhat." That is not allowed. When a sage who has attained the fruition walks, his feet do not touch the ground. Although he appears to be walking on the road, he is actually traveling in the air. His feet do not touch the ground or the dirt. Even if he walks across mud, his shoes remain clean. Dharma Master Du Shun [the first patriarch of the Huayan School], for example, was one whose shoes weren't soiled when he walked over mud. This is the sign of a sage who has attained the fruition. One cannot casually claim to have attained the fruition.
예류과 (또는 수다원)는 견혹을 이미 제거했습니다. 일래과 (또는 사다함)은 사혹을 제거했습니다. 불환과 (또는 아나함)은 망상을 마치 먼지와 모래처럼 모두 제거했습니다. 아라한은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무명을 제거했습니다. 무명을 완전히 파괴한 자만이 성불합니다. 등각等覺의 경계에 있는 보살도 아직 아주 조금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무명이 있는데, 이로 인해 아직 성도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라한은 어떤 법을 수행하는가요? 모든 이들은 아라한이 수행하는 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전에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집멸도 苦集滅道입니다.
Hearers of the first fruition have eliminated view delusions. Those of the second fruition eliminate thought delusions. At the level of the third fruition, they eliminate delusions in number like dust and sand. The Hearer of the fourth fruition has partially, though not completely, eliminated ignorance. Only one who has completely destroyed ignorance realizes Buddhahood, for even a Bodhisattva at the stage of equal enlightenment still has a small amount of the ignorance of arising phenomena which keeps him from realizing Buddhahood. What Dharmas do sages of the fourth fruition cultivate? Everyone knows the Dharmas they cultivate; we've all heard them before. They are: suffering, the cause of suffering, the cessation of suffering, and the Way to the cessation of suffering.
석가모니 부처님은 먼저 첫 다섯 명의 비구 스님이 될 사람들을 가르치러 녹야원으로 가셨습니다. 여기에 비구 아야교진여, 비구 아쉬바짓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다섯 명은 부처님의 친인척이었습니다. 이들은 수행하기 위해 부처님을 따라왔지만, 그 중 몇 명은 고행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히말라야에서 수행하고 계실 때, 하루에 참깨 한 알과 밀 한 톨만 드셔서 나뭇가지처럼 삐쩍 말라버렸습니다. 부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 세명은 이를 참지 못하고, 배가 고파서 도망갔고, 2명만 남았습니다.
In the beginning, Shakyamuni Buddha went to the Deer Park to teach those people who were to become the first five Bhikshus. This included the Venerable Ajnatakaundinya and the Venerable Ashvajit. These five people were, in fact, relatives of the Buddha. They had followed the Buddha to practice, but some of them couldn't endure the hardship. When Shakyamuni Buddha was cultivating in the Himalayas, he became as thin as a stick, because he ate only one sesame seed and one grain of wheat each day. Three of his followers found this unbearable and fled in hunger, and only two remained.
음력으로 12일 중 8번 째 날 천상의 아가씨가 부처님께 우유를 공양으로 올렸는데, 부처님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때, 남아 있던 두 명의 수행자도 떠나버렸습니다. 이들은 고행을 참지 못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수행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금욕 수행을 해야 하는데, 우유를 마시는 것을 보니, 그(석가모니 부처님)는 고행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남은 2명도 떠나버렸습니다. 이들 다섯 명 모두 녹야원으로 갔습니다.
Later, on the eighth day of the twelfth lunar month, a heavenly maiden offered some milk to Shakyamuni Buddha, and he accepted it. At that point, the other two followers left as well, not because they couldn't stand the hardship, but because they felt that the Buddha didn't know how to practice. They said, "You're supposed to be cultivating ascetic practices, and yet you drank milk. That shows you aren't able to cultivate and endure hardship." Therefore, they left as well. All five of them went to the Deer Park.
석가모니가 부처님이 되신 후 가장 먼저 화엄경을 설하셨는데, 오직 몇 명만 이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사실을 감추고, 방편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아함경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이제 내가 누구를 가르쳐야 할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부처님이 기억이 났습니다. “이전에 내 수행을 돕는 다섯 명의 수행자가 있었으니, 그들부터 가르쳐야겠다. 왜냐하면 과거에 내 스스로 깨달은 자 (붓다)가 되면 먼저 나를 자르고, 죽이고, 나쁘게 대한 이들부터 가르친다고 서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최악으로 대한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금강경을 읽었다면, 여러분도 칼리왕을 기억할 겁니다. 인(원인)을 심기 위해, 과거 석가모니 부처님은 참을성이 많은 불멸의 존재로 수행하고 있었는데, 칼리 왕이 그의 팔다리를 모두 잘라버렸습니다. 왜일까요?
After Shakyamuni became a Buddha, he first spoke the Avatamsaka Sutra, which very few beings were able to understand. He then concealed the true and offered the expedient teaching," and he spoke the Agama Sutras. "Whom should I teach?" the Buddha wondered. Then he recalled, "Previously I had five fellow cultivators who supported my practice. I should teach them first, because in the past I vowed that when I became a Buddha, I would first teach those who have slandered me, killed me, or treated me badly." Who had treated the Buddha the worst? If you've read the Vajra Sutra, you'll know about King Kali. At the level of planting causes, when Shakyamuni Buddha was cultivating as a patient immortal, King Kali had chopped off the limbs of his body. Why?
전생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뛰어난 수행자였습니다. 그의 몸은 두꺼운 먼지와 때로 덮여 있었고, 산 아래로 한번도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산 속에서 금욕 수행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칼리왕이 사슴 사냥하는데 후궁들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후궁들은 왕과 함께 산을 갔지만, 왕과 함께 사냥하는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들끼리 놀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산 속에서 여기저기 거닐고 있는데, 이상한 자를 발견했습니다. 후궁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이상한 생명체의 눈썹과 머리카락은 길고, 얼굴은 한번도 씻지 않아서, 때가 극도로 두껍게 붙어있었습니다. 옷 위에 있는 먼지와 때가 적어도 1인치 이상 두꺼웠습니다. 후궁들은 이것을 보고, 무엇인지 몰라서 “괴물이다! 여기서 피하자”라고 말했습니다.
In that previous life, Shakyamuni Buddha was a skilled cultivator. His body was covered with a thick layer of dust and dirt, and he never went down the mountain. He remained there cultivating ascetic practices. One day King Kali took his concubines his wives—along on a deer hunt. The women accompanied him into the mountains, but had no interest in hunting with the King. They wanted to have fun on their own. While strolling around in the mountains, they came upon a strange creature…they weren't quite sure what it was. Its eyebrows were three inches long and its hair was two feet long. Its face seemed to have never been washed, for the dirt caked on it was extremely thick. The dirt on its clothing was at least an inch thick. When these women saw it, they couldn't figure out what it was. They said, "It's a monster! Let's get out of here!"
그 때, 이 수행자가 말하기를 “가지 마시오. 나는 괴물이 아니오”라고 했습니다.
Then the cultivator said, "You don't have to leave; I'm not a monster."
여자들이 “와 이게 말을 한다!” 그리고 후궁 중 가장 용감한 여자가 물었습니다.
"It can speak!" they gasped. One of the braver ones asked him,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What are you doing here?"
그가 대답하기를 “수행하고 있지요”
He replied, "I'm cultivating."
여자가 묻기를 “수행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요?”
She asked, "What do you mean by ‘cultivating'?"
그가 말하길 “나는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고 있어요” 그때 그는 후궁들에게 법을 가르쳤습니다.
He said, "I'm cultivating in order to become a Buddha." Then he taught them the Dharma.
후궁들은 더욱 친해져서 걱정을 표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견뎌야 하는데, 뭘 먹지요?”
The women grew friendlier and expressed their concern, "You endure so much difficulty here. What do you eat?"
수행자가 대답하길 “나무 뿌리, 잎사귀 등 있는 것이 무엇이든 먹지요. 사람들한테 먹을 것을 구걸하러 나가지 않지요” 그때 이미 여자들의 두려움은 없어졌습니다. 그 중 한 여자가 그의 눈썹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습니다. 어떤 여자는 손을 만지고, 또 하나는 얼굴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후궁들은 마치 수행자가 매우 귀한 것인 것처럼 보고, 가까이 하고 싶어했습니다.
He answered, "I eat whatever there is—roots and leaves. I don't go out asking for food from people." By that time the women's fears vanished. One of them reached out to touch his eyebrows; another touched his hands, and yet a third patted his face. They viewed the cultivator as something precious and tried to get closer to him.
그러는 동안, 칼리킹은 사냥을 마치고 후궁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후궁들이 모두 모여서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고 천천히 그들을 향해서 걸어갔습니다. 왕이 가까이 가서 보니, 매우 이상한 남자에게 후궁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하나는 그 남자의 손을 만지고 있고, 또 하나는 발을 만지고 있었습니다. 후궁들이 너무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왕은 갑자기 질투심이 일었습니다. 그 수행자는 후궁들에게 수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Meanwhile, King Kali had finished hunting and was looking for his concubines. He found them all gathered around something and tried to see what they were up to. He walked his way slowly toward them, not making a sound, and when he was close enough he saw them talking with a very strange man. What is more, one was touching his hands and another was patting his feet! Seeing them acting so friendly, the King immediately grew jealous. The cultivator was talking to his women about cultivation.
왕은 노하여, “너는 내 여자들과 놀아날 자격이 없다. 네가 하는 수행이 뭐냐?”
In a rage, the King bellowed, "You have no business cheating my women! What are you cultivating?"
수행자가 말하기를 “나는 인내심을 수행하고 있지요”
The cultivator replied, "I'm cultivating patience."
“네가 말하는 인내라는 것이 무엇이냐?”
"And what do you mean by ‘patience'?"
“나를 나무라거나 때리는 자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요”
"I will not become angry at anyone who scolds or beats me."
칼리킹이 말하기를 “네가 내 여자들이 널 믿게 속였지만 나는 절대 너를 믿지 않는다. 네가 정말 참을 수 있다고? 그게 사실인가?”
King Kali said, "You may have cheated my women into believing you, but I'll never believe you. You say you can be patient? Is that true?"
늙은 수행자가 “물론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The old cultivator said, "Of course."
“좋아 그럼 내가 너를 시험할 것이다!” 왕은 칼을 꺼내 이 늙은 수행자의 손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가 방금 네 손을 잘랐다. 날 미워하는가?”
"Fine, I'm going to give you a test!" The King then drew his sword and chopped off the old cultivator's hand. He said, "I've just chopped off your hand. Do you hate me?"
수행자가 말하기를 “아니오”
The cultivator said, "No."
“네가 날 미워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넌 진짜로 좀 수행의 힘이 있구나. 그러나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네가 방금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네 마음 속에서는 그를 것이다.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다. 네가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칼리왕은 계속 말했다 “좋아, 만약 네가 참을 수 있다고 주장하니, 나를 미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남은 한 손도 자를 것이다.”
You don't hate me? Then you really have some skill. But you must be lying. You just say you don't hate me, even though in your mind you do. You're lying! I'm a very smart person. You think you can fool me?" King Kali continued, "All right, since you claim you are patient and don't hate me, I'm going to chop off your other hand."
수행자의 다른 한 손도 잘라버린 후, 왕은 물었습니다 “이제 너는 날 미워하는가?”
After chopping off the cultivator's other hand, the King asked, Now do you hate me?"
늙은 수행자는 “아니요”라고 말했습니다.
The old cultivator said, "No."
왕은 수행자의 발도 잘라버렸습니다. 수행자의 사지를 잘라버리고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제 나를 미워하는가?”
The King then chopped off the cultivator's feet. Having hacked off the cultivator's four limbs, he asked, "Do you hate me?"
“아니오” 수행자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대를 미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보리를 깨달으면 그대부터 내가 구할 것이오. 어떻게 하면 그대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시켜줄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그대를 미워해도, 내 사지가 다시 복구되지 않을 것이요. 그대가 내 몸에서 사지를 완전히 잘랐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대를 미워하지 않는다 해도, 내 손과 발이 다시 복구 되지 않을 것이요. 만약 내 사지가 다 복구되었다 해도, 내가 아무런 미움을 느끼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오? 만약 내가 미움을 느껴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그 늙은 수행자 몸이 다시 완전해 졌습니다.
"No," said the cultivator, "not only do I not hate you, but when I accomplish Buddhahood, I will save you first. How can I convince you that I don't hate you? If I hate you, my four limbs will not be restored, and if I don't hate you, my hands and feet will be restored, even though you have completely severed them from my body. If they are restored, that will prove that I don't feel any hatred. If I feel any hatred, that will not occur." Whereupon the old cultivator became whole again.
이를 목격한 칼리왕은 수행자의 손과 발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잘라버렸습니다. 이때 호법신들이 나타나 신통력을 써서, 왕에게 우박를 쏟아 공격했습니다. 수행자의 큰 신통력을 본 후, 스스로의 죄가 심각함을 알아차리고, 칼리왕은 수행자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Having witnessed King Kali hack off the cultivator's hands and feet in such a cruel manner, the Dharma-protecting spirits manifested their great supernatural power and pelted the King with a shower of hailstones. Realizing the severity of his offense and seeing the cultivator's great spiritual powers, King Kali knelt before the cultivator seeking forgiveness.
수행자가 말하길 “만약 내가 보리를 얻지 못한다면,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오. 하지만 내가 만약 깨달으면, 내 먼저 그대부터 구할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제일 먼저 전생에 칼리왕이었던 아야교진여를 가르치기 위해 녹야원으로 갔습니다. 전생의 서원대로, 부처님은 본인을 최악으로 대했던 자부터 먼저 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The cultivator said, "If I don't realize Buddhahood, there is nothing to be said. But if one day I do, I will save you first." That is why the Buddha first went to the Deer Park to teach Ajnatakaundinya, who had been King Kali in a former life. Because of his past vow, the Buddha first wanted to save the person who had treated him the worst.
이 이야기를 들은 후,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된 이후, 우리를 최악으로 대했던 자부터 먼저 구할 것이라는 서원을 세워야 해야합니다. “너는 나에게 못되게 했으니, 내가 부처가 되면 너를 지옥으로 보낼 것이다”라는 서원을 세우면 안됩니다.
After hearing this story, we should all vow that after becoming Buddhas, we will first save those who treated us the worst. We shouldn't think, "You've been so mean to me. I'm going to send you to the hells after I become a Buddha." Don't make that kind of vow.
부처님이 녹야원에 갔을 때, 부처님은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사성제의 법륜이 세번 돌아가는 것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When the Buddha went to the Deer Park, he spoke the three turnings of the Dharma Wheel of the Four Noble Truths for the five Bhikshus. First he said:
이것은 고이다. 이는 억압적이다. This is suffering; it is oppressive.
이것은 집, 고의 원인이다. 이것이 부른다. This is the cause of suffering; it beckons.
이는 도이다. 이는 수행될 수 있다. This is the Way; it can be cultivated.
이는 고의 멸이다. 이는 깨달을 수 있다.
This is the cessation of suffering; it can be realized.
두 번째에서 부처님이 말하길,
The second time he said,
이는 고이다: 나는 이를 완전히 알았다. This is suffering; I have completely known it.
이는 고의 원인이다. 나는 이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This is the cause of suffering; I have completely eliminated it.
이는 도이다. 나는 이를 완전히 수행했다. This is the Way; I have completely cultivated it.
이는 고의 멸이다. 나는 이를 완전히 깨달았다.
This is the cessation of suffering; I have completely realized it.
세 번째 돌릴 때 그가 말하길,
During the third turning he said,
이는 고이다, 그대도 알아야 한다. This is suffering; you should know it.
이는 고의 인(원인)이다. 그대는 이를 없애야 한다. This is the cause of suffering; you should eliminate it.
이는 도이다. 그대가 이를 수행해야 한다. This is the Way; you should cultivate it.
이는 고의 멸이다. 그대가 이를 깨달아야 한다. This is the cessation of suffering; you should realize it.
부처님이 이 사성제의 세 번 돌리는 것을 설한 후, 그가 아야교진여에게 말하길 “그대는 객진客塵에 의해 문제가 있고, 그렇기에 해탈을 얻지 못했네”
After the Buddha spoke the three turnings of Four Noble Truths, he said to Ajnatakaundinya, "You are troubled by guest-dust [transient defilements] and have not obtained liberation."
아야교진여가 “객진”이라는 단어를 듣자 마자, 그는 바로 깨달았고, 객진을 보았다. “객은 주인이 아니고, 진(먼지)는 깨끗하지 않다. 내 자성은 주인이고, 이는 깨끗하고 순수하다.”
When Ajnatakaundinya heard the words "guest-dust," he became enlightened and realized the transience of defiling objects. "The guest is not the host, and the dust is unclean. My self-nature is the host, and it is clean and pure."
아야교진여는 “해본제 解本際”로 불립니다. 그는 기본적인 진리를 이해하여, "혜공제일 解空第一”이 되었습니다.
Ajnatakaundinya is called "one who understands the original limit." He understood the fundamental truth and became the "foremost exponent of emptiness."
사성제는 무한하고 무궁무진합니다. 쉬라바카 (성문) 제자들, 남녀를 불문하고. 즉 남자 여자 둘 다 성문계에 도달할 수 있고, 아라한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쿠마라지바 법사의 어머니는 아다함이 되었습니다.
The Four Noble Truths are infinite and inexhaustible. The Shravaka disciples, / Both men and women. Both women and men can realize the fruition and become Hearers, or Arhats. Dharma Master Kumarajiva's mother, for instance, became a third-stage Arhat.
성문들은 사성제를 관행하라. 사성제는 고, 집, 멸, 도입니다. 이는 고를 보는 것, 고의 원인을 없애는 것, 고를 멸하는 것 그리고 도를 수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사성제의 법문을 수행합니다.
Hearers contemplate and practice the Four Noble Truths. They cultivate the Four Noble Truths: suffering, the cause of suffering, the cessation of suffering, and the Way. This involves being aware of suffering, eliminating the cause of suffering, aiming for the cessation of suffering, and cultivating the Way. They cultivate the Dharma-door of the Four Noble Truths.
사실을 숨기고, 방편을 보여라. 우리에게는 성문으로 보지만, 실제로 이들이 방편적으로는 성문으로 나타나지만, 임시적인 가르침의 대보살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사실을 숨긴다”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그들의 실제의 공덕은 감춥니다. “방편을 드러낸다”는 것은 능숙한 방법들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성문들이 이 세상에 돌아온 대보살들일 수 있습니다.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그 중 몇 명은 소승으로 나타났지만, 더 큰 쪽으로 진보하라고 재촉하기 위해 나타난 대승보살들이 명확합니다. 이를 “사실을 숨기고 방편을 드러낸다”라고 말합니다.
Concealing the real and displaying the expedient. You see them as Hearers, but in reality they may be great Bodhisattvas of the provisional teaching who appear expediently as such. This is called "concealing the real." They conceal their real merit and virtue. "Displaying the expedient" means they demonstrate skillful means. Hearers may be great Bodhisattvas who have come back to the world. Not all of them are, but some of them are definitely Great Vehicle Bodhisattvas who appear among those of the Theravada to urge them to progress toward the great. This is called "concealing the real and displaying the exped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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