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만 좋자고 하는 임신이야?
우리의 ' 첫아기'를 떠나보낸 뒤, 한동안 마음 추스르기에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추스르는 시간에는 덩달아 조급함도 같이 따라오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가진 주변 사람들이 늘어나고,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서 그 조급함은 더해갔다.
부모들끼리도 친하니 이왕이면 같은 해에 낳아 아이들도 친구를 만들어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기대와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간절함이 컸기 때문에 내게는 기나긴 겨울과도 같았다.
늦여름 다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불 때 즈음,
나는 동네에서 난임으로 소문난 여성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병원을 찾는 수많은 부부들이 그러하듯
난임검사를 하고 남편과 나는 각자의 방법대로 아이를 갖기 위한 노력을 보태었다.
나는 나대로 건강을 챙기고 남편 역시 권투를 배우며 체력을 길러나갔다.
내가 난임병원을 가게 된 이유는 좀 더 큰 확률로 좀 더 빨리 임신을 하기 위해서였다.
배란유도는 필수였고 내 배에는 주사자국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그리고 바로 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배란유도 기간에는 매달 배란기간에 맞춰 거사를 치러야 했는데,
어느 날은 남편이 불만 섞인 토로를 하는 것이었다.
"꼭 내가 애 낳는 기계가 된 기분이야."
라는 남편의 말에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그리고는 나도 이렇게 맞받아치고 말았다.
"나 혼자 좋자고 하는 임신이야?"
사실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남편보다 내가 더 안달이 났다는 것을.
남편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둘 만의 시간을 보내며 아이를 갖길 원했지만,
나는 당장이라도 아이를 가질 수만 있다면 무슨 수라도 쓸 것처럼 그렇게 종종걸음이었던 것이다.
시간은 흘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고작 3번의 배란유도에 지친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하기로 했고
해를 넘기고 1월이 되자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바로 인공수정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배란유도 주사를 맞고 난포가 최대로 자라길 기다렸다가 가장 최적의 타이밍에 수정이 되도록 하는 그 작업이 어쩌면 우리를 부모의 길에 들어서게 해 줄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지금에서야 든 생각이지만,
이 모든 순간들이 우리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찰나의 집합들이었다고 생각하니
무엇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결과의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