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란 Sep 19. 2022

찍지 말라옹

츄르 없으면 그냥 가라옹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아파트 앞에는 얼마 전부터 터줏대감이 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까만 고양이가 있다. 아주 작고 어릴 때에는 사람 발소리만 들어도 놀라서 펄쩍 뛰며 도망가더니, 이제 몸집이 좀 커졌다고 꽤 당당해졌다. 늘 앉아있는 '자기 자리'도 생기고 사람이 와도 무서워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나는 내 맘대로 요 녀석을 '당당이'라고 부른다.


당당이는 당당하게 깨끗한 물과 사료를 얻어먹으며 아파트 현관을 지키는 나름 정규직(?)냥이다. 나는 거의 2,3일에 한번 꼴로 보는 당당이를 마주치는데 매번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낮에는 제 영역을 순찰하는 모양인지 잘 보이지 않다가 어둑 어둑 해진 밤이 오면 자기 돌아와 자리를 잡기 때문에 내 귀가 시간과 잘 맞는다.


얼마 전에도 귀가하던 중 당당하게 뒤돌아서서 앉아있는 모양새가 너무 귀여워 찰칵,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랬더니 휙 돌아보며 '찍지 말고 얼른 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그 모습도 너무 귀엽다.)


당당이는 그 이름처럼 사람이 다니는 방향으로 얼굴을 두고 경계를 하는 여느 고양이와는 다르다. 행인들이여 '내 귀여운 뒤태와 엉덩이나 보아라.'하고 말하는 듯 뒤돌아 앉아있는 당당이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당당이를 귀여워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이 아파트 맞은편에는 중고교가 있는데 나보다 훨씬 호들갑 떨면서 사진을 찍고 우쭈쭈 손짓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고양이의 귀여움은 남녀노소에게 다 통하는 게 맞다. 존재 만으로도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참 신기하고 부럽다. 다음 번에는 당당이게 츄르를 가져다 바쳐봐야겠다. 당당이랑 친해져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롱고롱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


내 뒷모습과 엉덩이나 보아라
'찌릿' 찍지 말고 츄르 없으면 그냥 가라




image source: 작가 직접 촬영

매거진의 이전글 지옥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