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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Sep 15. 2022

지옥도

주의 : 수산시장에 가기 싫어지거나 회가 먹기 싫어질 수 있음

이 글은 특정 국가나 지역의 식생활과 문화, 가치관과 식재료 손질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한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그린 사소한 에세이임을 밝힙니다. 다소 불편해하는 분이 계실 수 있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알고 있는가? 수산시장은 지옥도다.

뒷짐을 지고 술렁술렁 걷다가 커다란 물감옥에 눈길이 간다.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놈, 저놈’ 하고 맘에 드는 놈을 고른다. 죽을 놈을 고르면 판관(判官)이 뜰채로 잡아 죄의 무게를 단다.


죄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비싼 값이 매겨진다.

퍼덕이는 놈을 한 아름 너비의 나무 기둥을 잘라 만든 도마에 올린다. 도마는 이미 핏빛으로 물들었고 군데군데 칼자국이 어지럽다. 판관은 거대한 칼을 높게 들었다가 순식간에 내리친다.


탕! 하고 피가 튀며 머리를 날린다.

비명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원래 비명을 내지 못한다. 뻐끔뻐끔, 사후 경련으로 입만 달싹거릴 뿐이다. 판관은 능숙하게 내장을 손가락으로 훑어내고 깨끗한 물에 살을 씻는다.


판관이 널따란 칼로 목과 꼬리 없는 시체를 조심스레 발라내어 보기 좋게 전시한다.

대가리와 꼬리도 버리지 않는다. 국물을 내서 먹으라며 채소와 함께 묶어 선심 쓰듯 건넨다. 어떤가. 그야말로 지옥도가 아닌가?


수조 안에서 비실 비실 구는 놈들은 선택을 당하기 어렵다.

맞다. 오히려 수조에서 숨이 끊어지는  나을는지 모른다. 아니다. 일부러 비실 비실하는지 누가 아는가? 산채로 나무 도마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인간에게나 아무렇지 않은 법이다.


지옥도 수산시장에선 건강한 놈일수록  비싼 값에 팔린다.

좁디좁은 어망에서 사육당한 놈들보다 자유롭게 물속을 노닐던 놈들이  비싸게 팔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나 아무렇지 않은 법이다.


 지옥도에서 판관은  푼이라도  받으려 저울을 속이고 놈들의 죽음으로 배를 채우려는 자는 현금을 들이밀며 만원이라도  깎아 보려고 한다.

 ! 하는 소리와 함께 하나의 대가리가 날아간다. 그들의 귀에는 비명이 들리지 않는 걸까.


그래, 말 그대로 그들은 ‘물'고기다. 물에 사는 고기다. 그러니 수산시장에는 죄책감이 머물 곳이 없다. 오히려 ‘생생한 아침 수산시장의 활기'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말로 포장된다.


나는 간절히 바란다.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무나, 너무나 잔인한 일이므로.




image source: <감로탱> (부분), 조선, 18세기, 삼베에 채색, 200.7 ×193cm. 자수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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