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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Feb 12. 2024

추운 날씨에는 대개 하늘이 맑다

2024년 1월의 월기(月記)

1월 1일(월)

슈톨렌은 가루가 많다. 슈톨렌의 가루를 흘리지 않고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자랑처럼 말하고 싶다.


1월 2일(화)

소소한 올해의 목표로 일기 쓰기를 하고 있다. 오늘은 편두통이 두 번이나 있었다. 휴가 때는 잠을 많이 자다가 휴가가 끝나고 난 뒤 잠이 줄어서 그런 것 같다.


1월 3일(수)

약한 눈 예보가 있었다. 눈은 맞아도 괜찮다는 생각에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그러나 따뜻한 날씨 탓에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눈이 아니라 비였다. 두툼하게 입은 패딩점퍼 위로 아주 작은 물방울 자국이 생겼다가, 넓게 퍼져나갔다. 


이른바 '일을 하는 마음의 중간'은 어렵다. 일을 너무 쉽게 보면 실수가 많아지고 일을 너무 어렵게 보면 몸이 굳고 서툴러진다. 일을 할 때에는 마음의 중간 지점을 잘 찾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유지해야 한다.


1월 4일(목)

아침에 일어나기가 버겁고 힘들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잠을 적게 자는 것은 아니다. 밤 12시 전에 잠들고 아침 7시 반쯤에 일어나니까 하루에 7시간을 넘게 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 어렵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시로 머리를 스치는 단상들을 붙잡아서 일기에 매어둔다. 매어둔 글은 훗날 글감의 씨앗이 되거나, 나 자신을 위로하게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1월 5일(금)

편두통이 너무 자주 온다. 언젠가부터 편두통이 온 날을 기록하지 않았는데, 이제 다시 기록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무렵에 눈앞이 이지러지더니 이내 편두통이 왔다. 편두통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편두통이 오는 순간 아무것도 하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편두통이 싫다. 편두통은 모든 걸 싫게 만든다.


1월 6일(토)

아침마다 한강이와 루나가 찡찡 운다. 일어나라는 말인지, 놀아달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사랑스러운 울음이다.


1월 7일(일)

가족과 함께 한다는 것은 기쁨이자 부담이기도 하다. 먹고, 자고, 운전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1월 8일(월)

아침에 출근해서 두유를 먹었는데 유통기한이 이미 한 달이나 지난 것이었다. 냉장고를 보니 똑같은 두유가 하나 더 있어서 휴지통에 버렸다. 배가 아픈 것 같기도, 안 아픈 것 같기도 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걸 몰랐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다.


얼굴이 살금살금 늙어간다. 거울을 보면 그러한(늙어가는) 내가 있다. 거울을 보는 짧은 시간 동안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거울을 보는 그 간격 간에 분명 나는 늙는다. 그 간격이 짧든 길든 나는 착실하게 차근차근, 그리고 살금살금 늙어가고 있다.


쓴웃음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1월 9일(화)

꿈을 많이 꾼다. 선잠을 자며 계속 꿈을 꾼다. 여러 가지 꿈이 뒤죽박죽 얽혀서, 무엇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때가 많다. 꿈의 기억은 아침 햇살과 함께 곧 잊힌다. 


1월 10일(수)

피곤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이 피곤함


1월 11일(목)

무엇이든 끝이 있다. 끝이 아름답거나 혹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해서 끝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한강이 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봐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는 것 같지는 않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마음,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1월 12일(금)

언젠가 한 번 다녀왔던 기억이 있는 장소, 그러나 또렷하지는 않은 기억


1월 13일(토)

태어난 날이 특별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냥 지나가는 날 중 하나처럼 그렇게 지나가면 좋겠다.


1월 14일(일)

새삼 한강이와 루나가 없이 사는 삶을 생각하기 어렵다.


1월 15일(월)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시하는 과업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것일까, 누가 시키기 전에 스스로 나서서 만들어내는 것일까?


1월 16일(화)

내가 직접 하는 일보다 사람을 통해서 하는 일이 훨씬 많다. 중요한 것은 나 혼자 잘하는 것이 아니다.


1월 17일(수)

어떤 비 오는 날은 우산이 없어도 괜찮아.


1월 18일(목)

하루하루 일하는 게 조금 버겁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림을 그렸다.


1월 19일(금)

시행착오를 위한 시행착오


1월 20일(토)

새로운 길을 걷고 새로운 풍경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 현재에 서서 현재를 보아도 과거와 미래가 함께 비친다.


1월 21일(일)

몫을 한다는 것


1월 22일(월)

추운 날씨에는 대개 하늘이 맑다. 더 꽝꽝 추워서 온 세상이 투명해질 정도로 맑아졌으면 좋겠다.


1월 23일(화)

사무실의 내 자리는 먼 곳을 보기에 좋다. 저 멀리 보이는 산자락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있다.


1월 24일(수)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모른다. 요즘 표정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내 표정은 대체 어떤 걸까? 거울을 보고 입꼬리를 올려본다. 우스꽝스러운 내가 있다.


1월 25일(목)

며칠째 날씨가 춥지만 추운 날씨가 싫지 않다. 겨울은 추워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부담의 무게는 가변적이다. 깃털 같았다가도 쇠공처럼 무겁게 몸을 짓누른다.


1월 26일(금)

버스를 오래 타서 힘들다.


1월 27일(토)

산책이라기엔 조금 빠르고, 러닝이라 말하기엔 천천히


1월 28일(일)

청소는 시작하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막상 시작하고 끝내면 기분이 좋다.


1월 29일(월)

문서를 만드는 것은 일이 아니고 일의 시작이다. 일의 시작만 쌓이고 쌓여 결국 일 자체는 진행되지 않으면 그건 쇠퇴하고 있다는 증거다.


1월 30일(화)

집중이 되지 않음. 재미없음.


1월 31일(수)

애써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에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image: https://unsplash.com/photos/cohyle-C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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