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란 Aug 28. 2022

오늘 어른이는 삶이 너무 고단하고 치졸해서 죽고 싶다

9년 전의 일기를 꺼내보다

요즘 다시 네이버 블로그를 쓰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몇몇에게 전해 들었다.(네이버 블로그도 레트로 유행을 타는 거라나 뭐라나) 그런데 나는 써본 적이 있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뭔가 있을까 싶어 접속해본 나의 블로그에는 비공개 일기 세 개가 남겨져 있었다.


2013년에 쓴 일기이니 스물아홉 살 때다. 짧은 세 편의 일기를 읽어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참 변한 게 없구나 싶다. 좀 거친 내용이 있긴 하지만 거의 10년이나 흘렀으니 공소시효가 지났다 치고 이제 공개로 전환해도 되겠지 싶어 브런치로 옮겨와 봤다. 파란색 계열로 쓴 텍스트는 현재 시점의 내 소감이다.




2013년 5월 5일

오늘 어른이는 삶이 너무 고단하고 치졸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체 뭐가 그렇게 고단하고 치졸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걸까? 그것도 5월 5일 어린이날에 본인을 어른이라고까지 칭하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직장 생활 4년 차, 스물아홉 살의 나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참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구나. 고단한 삶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요즘은 맹렬하게 대들며(?) 치졸하지는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나마 발전이 있달까



2013년 4월 27일

XXX는 너무 아이디얼 하다.

게다가 자기 업무 미루기는 국가대표급이다.

물론 업무를 미루며 적당한 포장 역시 수준급.

XXX지역 출신에 대한 편견이 없었는데,

설마 이런 인간이 대표적인 인물은 아니겠지.

정말 X 같은 새 X


이때의 나를 지금 내가 만난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해줄까? 적당한 업무 미루기와 성과 포장하기도 직장 생활의 일부분이라는 이야기를 해줄까? 만약 그 이야기를 듣는 다면 나는 더 발끈하게 될까? 스물아홉 살의 나는 참 화나는 일이 많았구나 싶다.(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2013년 4월 16일

내 기억이 닿는 한 머릿속에 담고 있는 추억들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언젠가 죽게 되면 누군가 이곳을 쉼터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서 결국 일기 딱 세 개 남기고 더 이상 쓰지 않은 나의 보잘것없던 끈기 덕에 더 많은 흑역사가 생기지 않은 것 같아 한 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나는 왜 그때도 죽음을 생각했을까, 그리고 왜 내 블로그를 누군가 쉼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내가 남기는 글들을 보고 누군가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근데 그러고 나서 공개된 글은 단 하나도 쓰지 않았던 내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브런치를 쓰고 있으니, 사람은 결국엔 생각한 방향대로 살게 되나 보다 싶다. 


오늘 내가 남기는 이 글들은 10년 뒤의 내가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이 글을 볼 수 있든 없든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되길 바랄 뿐이다.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NPmR0RblyhQ

이전 18화 생의 의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