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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Sep 04. 2022

이 XX야 나 뒤지게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나는 소리 질렀다

이직한 지 어느새 4개월, 시간은 참 빠르다.

나는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과 친해져서 격의 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도 나는 친하게 지내는 A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회사에서 처음 보는 얼굴인 B가 내 자리 쪽으로 왔다.


나는 A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터라 B에게 앉은 채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그러자 B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무엇인가 잘못됨을 느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다시 한번 '반갑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B는 몸을 뒤로 주춤, 하고 뒤로 피했다. 여전히 못마땅한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미안함을 담은 미소를 띠며 B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예의에 어긋나게 앉아서 인사를 했네요. 혹시 그 외에 제가 불편하게 해드 리거나 잘못된 행동을 보여서 마음이 언짢으셨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말하는 내내 나는 미안함을 담은 미소를 유지했다. 속이 약간 뒤틀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잘못한 것은 맞으니까. 그러나 나와 시선을 맞추던 B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잘 웃어서 성공했나?

나는 1초 정도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귀에 들린 말이 분명했다. 나는 순간 참지 못하고 욱하는 감정이 치솟음을 느꼈다. 참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은 금세 끝났다.


"A님도 방금 들었어요?"


나는 A에게 물었다. 모종의 어떤 행위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질문임을 A는 알아챈 듯하다. A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했다. 나는 폭발했다.


야 이 XX야 나 뒤지게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절반은 분노, 절반은 억울함이 담긴 고성을 질렀다. 일단 나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바보 같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겨우겨우 이직에 이직을 거쳐 마침내 정착할 회사에 어렵게 자리 잡았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에게나 잘 웃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성공했다는 객관적인 사실 증거가 있더라도 그것은 내가 잘 웃었기 때문이 아니다. 죽을 만큼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구구절절한 나의 생각을 알리 없는 B의 눈빛도 나의 고성을 듣고 금세 매섭게 바뀌었다.


"종로 바닥에서 감히 나한테 소리를 질러?" 


A는 종로가 모두 제 땅인 것인 양 여기는 '어딜 감히' 말투로 나를 윽박질렀다.


"여기가 종로 바닥이든 여의도 바닥이든 네가 얼마나 잘났든 회사에서 나가면 그냥 아저씨야 인마!" 


나는 이른바 '회사 나가면 다 아저씨' 이론으로 대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을 알아챈 주변 동료들이 뛰어와서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절반 정도로 갈라져 한 그룹은 나를, 한 그룹은 B를 달랬다. 나는 B를 달래는 그룹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으드득 두고 보자.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마음을 진정시키자 나는 마음은 감정적인 분노에서 논리적인 분노로 옮아갔다. 대체 B는 본인이 뭐길래 경력으로 이직한 나에게 저런 경우 없는 말을 내뱉지? 내가 앉아서 인사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그렇다고 내가 건네는 악수와 인사를 저런 식으로 거부하고 '잘 웃어서 성공했나?'라는 예의 없는 말을 면전에 대고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다른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 좋지 않은 일도 재미있었던 일처럼 이야기하는 나의 특성이자 장점을 잘 살려서 동료들에게 전해주니 그들은 B의 행동에 기가 막혀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내 예상대로 그들은 "웃어서 성공했나?"에서 큰 웃음을 터뜨렸고, 그 뒤에 이어진 내 욕설에 속 시원하다면서 박수를 치며 공감했다. 특히 하이라이트는 '회사에서 나가면 그냥 아저씨야 인마.' 였다고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나는 나에게 공감해주는 동료들에게 고마워하며 꿈에서 깼다.

정말 생생한 꿈이었다.(꿈에서 깬 새벽 3시에 이 꿈을 옮겨 적어놨었다.)


글을 다 쓰고 나니 의도치 않게 글 낚시를 한 것 같아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난 원래 꿈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이다.(맨 앞에 꿈 일기라고 안썼을 뿐) 그리고 이직을 한 사람의 스트레스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무의식에서는 이런 식으로 잠재되어있다는 것을 알리기에 좋은 내용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sb26HOlo0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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