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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Aug 23. 2022

잠들 힘도 없는 날엔

2022년 8월 22일(월) 일기

오늘도 마지막 퇴근자는 나였다. 집에 와서 씻고 나면 어느새 12시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선선해진 날씨 덕에 에어컨을 켤 필요는 없었다. 가을이 오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30분쯤 지났을까. 잠이 올 듯 가물 가리던 차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헛구역질이 났다. 급하게 일어나 넘어지듯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변기 커버를 올렸다.


….

그렇게 다섯 번 물을 내리고 다섯 번 가글을 했다. 대여섯 시간 전에 먹었던 저녁이 거의 소화되지 않았었음을 알게 되었다. 몸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내게 시위했다. 신물이 계속 올라왔다.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만병의 근원답게 방심한 틈을 잘 노린다.


구토 때문에 기분 나쁜 열감과 통증이 코 뒤로 목젖까지 길게 이어졌다. 위가 쓰라린다. 그나마 남아있던 체력도 소진해 버리니 잠들 힘도 없었다. 거실에 앉아 초점 없는 눈동자로 서재를 멍하니 바라봤다. 서재를 바라보는 일은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된다. 책들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사둔 책, 읽은 책, 사두고 읽지 못한 책, 그런 책들. 책을 쌓아놓으면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다 갑자기 오늘 해야 할 일 중에 몇 가지 마무리 못했던 일과 내일 꼭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난 또 왜 갑자기 일을 떠올리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머릿속에 체크리스트 같은 것이 있는데 중요한 일을 잊지 않는 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용하고 싶지 않을 때 기능을 잠시 재우거나 어플 지우듯 지울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렇게 자꾸 일로서 내 가치를 증명하려는 패턴을 버려야 하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특히 이직을 한지 아직 반년도 안되었다는 사실이 내게 조금 더 무거운 부담을 준다. 다행히 집에 일을 가져오는 행위는 5년 전쯤에 없앴다. 집에 가져와서 몇 시간 더 해봤자 큰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한 두 시간 더 자고 회사에서 집중하는 게 낫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회사 안에 놓고 온다. 그러나 축난 몸은 질질 끌고 집에 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요즘은 그걸 간과했다. 체력을 챙겨야지 챙겨야지 하면서도 체력을 챙길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힘들다고 주절주절 징징대는  성격상  맞으면서도  어느  하루쯤은 이렇게 투덜대고 싶은 날도 있는 것이다.  그렇듯이 나는 글을 쓰며 에너지를 얻고 글을 쓰며 회복을 한다. 이렇게   단락 분량의 회복 에너지를 얻었다. 키보드 타이핑을 치는 손가락은 칼로리를 소모했지만  마음은 소모한 칼로리보다  많은 위안을 얻었다. 굿나잇.




image source: https://unsplash.com/photos/rmKkZqnVt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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