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언론을 보면 범죄 피의자가 심신장애를 주장했다 등의 내용을 접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행 당시 술에 많이 취해 있어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었다 등의 내용인데요.
우리나라 형법에 의하면 심신장애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편, 형사미성년자라고 해서 14세가 되지 않는 사람도 우리나라 형법은 책임을 묻지 않는데요.
그렇다면 14세가 넘으면서 심신장애 상태가 아닌 사람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너무 당연한 내용 아닌가요? 사람이 자기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지 누가 대신 져줄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이러한 당연한 내용도 그 배경에는 이론적 근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Clarke와 Cornish의 '합리적 선택 이론(Rational choice theory)'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이론은 사람을 이성을 지닌 합리적인 존재로 전제를 하면서 사람이 범행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길 때는
여러 가지 사항들을 합리적으로 고려한 후 결정한다고 봅니다.
즉,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게 많을까 해가 되는 게 많을까
고민을 한 후 이득이 되는 게 많다고 생각이 될 때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인데요.
현재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이 절도를 한다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범죄를 통해
금전적인 이득을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테고요.
조직폭력배들이 다른 조직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러한 폭력행위를 통해 특정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좀 더 확보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모든 범죄가 다 이 이론으로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종종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범죄자들의 고백을 심심치 않게 들어볼 수 있는데요.
범죄행위를 넘어 우리 인간의 일상행위를 한 번 살펴보면요.
우리가 과연 모든 행동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나요?
볶음밥이 먹고 싶어 중국집에 갔다고 짬뽕을 먹기도 하고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반대로 말하고 행동하기도 하지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때 어떤 행위들은 나름대로 고민하고 결정하지만
대부분의 행위들은 즉흥적으로(혹은 나도 모르게) 결정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범죄행위 또한 인간의 일반행위의 한 종류이니 일반행위들이 이러하다면
범죄행위 또한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럼에도 이 이론이 지니는 가치가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앞서 서두에 사람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질문을 했는데요.
이 이론이 그것을 제시해 줍니다.
일반행위이든 범죄행위이든 사람은 무엇인가를 합리적으로 생각한 후 행위를 하는 존재라면
반대로 합리적으로 생각한 후 그 행동을 안 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요.
즉, 두 가지 경우의 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선택에 책임을 져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합리적 선택의 배경에는 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하면서
그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선택에 책임을 져라는 것이 뒤따라 나오는 것이지요.
심신장애 상태의 사람이나 미성년자는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행동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고요.
그렇고 보면 이 이론은 모든 형사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이성적이지 않고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생각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으니까요.
최근 인간에 대한 인지과학적 연구가 증가하면서 인간이 과연 이성적인지, 합리적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테니 이 이론은 앞으로도
굳건히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