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단스크, 폴란드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독일, 벨기에, 스웨덴, 스위스, 스페인,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체코, 포르투갈, 프랑스.
유럽 곳곳을 참 부지런히도 쏘아다녔다. 순수한 여행도 있었지만, 음악 덕분에 가본 도시들이 훨씬 더 많았다.
공연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동유럽을 제외하면,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연주 여행의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폴란드와는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았다.
독일에서 오래 일하던 합창단이 크라쿠프에서 종종 공연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극장과 학교 일정에 막혀 번번이 함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굳이 여행으로 찾기에는, 다른 유럽의 명소들에 비해 마음이 크게 끌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번에야 그 땅을 밟게 되었다. 최종 목적지는 북쪽의 항구 도시, 그단스크. 공연이 아니었다면 여행지로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긴 여정이었다.
오전 열 시부터 파리에서 시작된 리허설은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여덟 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곧장 샤를 드골 공항으로 향했다. 저녁은 샐러드로 간단히 때웠다.
그단스크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58분.
짐을 찾아 그곳을 나왔을 때는 이미 날짜가 바뀌어 있었다. 다행히 공연 주최 측에서 택시를 마련해 주어 호텔까지는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차 안에서 본 도시의 첫 소감은 ‘아이고, 온몸이 쑤신다’였다. 된 수제비 반죽처럼 뭉친 피로가 어깨를 짓눌렀다.
그다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안개. 뿌옇고 짙은 안개였다. 차도 옆으로 선 가로등 불빛이 먹빛 융단 속에 콕 박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층이 두터웠다.
평소 같으면 머릿속에서 ‘안개 낀 밤의 데이트’ OST를 틀어 놓고 멜랑콜리에 잠겼을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심신이 지나치게 고단해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할 여력이 없었다.
호텔방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침대 위로 고꾸라져 버렸다.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났다.
닫아둔 커튼 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그단스크의 날씨는 맑음이었다.
이불을 차고 일어났다. 창문 가까이에 서서 북해의 햇살에 얼굴을 댔다. 빛과 먼지가 뒤섞여 솜털 위로 소복이 내려앉았다. 같은 해인데 확실히 지중해의 그것과는 다르다.
지중해의 해는 팜므파탈이다. 거부할 수 없다. 그 어떤 그늘도 선크림도 그녀를 피할 순 없다. 그녀는 타고난 킬러다. 내가 어디에 있든 표피를 순식간에 파고들어 주근깨 같은 흔적을 남기고야 만다.
그에 비해 북해의 햇살은 사춘기를 막 지나고 있는 내성적인 소녀라고나 할까. 소녀는 좀처럼 웃지 않는다. 질문을 해도 눈만 깜빡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 — 가끔씩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지어 보이는 미소는 온 우주를 녹일 만큼 따사롭다.
오늘 이곳에는 소녀의 미소가 찾아온 듯하다. 감사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리허설 장으로 행했다.
도시는 한낮의 빛을 받아 숨김없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어둠과 해무 때문에 놓쳤던 풍경이었다. 나는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야 그단스크에 도착한 것 같았다.
조금 놀랐다. 아니, 많이 놀랐다.
그단스크는 내가 생각하던 폴란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마치 색색의 장식품처럼 서 있었다. 붉은 벽돌과 파스텔 톤의 외벽, 위로 길게 뻗은 지붕들. 동화 속 항구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발트해를 향해 열려 있는 이 도시에는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배와 사람, 언어와 물건들이 드나들었다.
한자동맹의 상인들, 프로이센의 관리들, 전쟁과 혁명의 기억까지 — 도시의 골목과 건물들에는 여러 시대의 시간이 겹겹이 스며 있다. 그래서인지 거리는 새것처럼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오래된 이야기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골목을 느릿느릿 걸었다. 건물 사이로 난 길마다 북해의 바람이 지났다. 그들은 모두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케케묵은 편견 위에 폴란드를 그려 왔던 것이 분명하다 — 회색의 공장 도시, 낡은 사회주의 건물, 그 사이를 무미건조하게 걷는 무표정한 사람들 같은 것들 말이다.
직접 만난 그단스크는 밝고 단정했다. 무엇보다 자신감에 차 있는 도시처럼 보였다. 바다와 맞닿은 항구 도시들이 대체로 그렇듯, 이곳에도 어딘가 열린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연주를 마치고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 나는 다시 한 번 해무를 보았다. 첫날보다 더 자욱했다.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흔한 일이라고 한다. 차가운 바다 위로 따뜻한 바람이 지나가서 그렇다고 했다.
운전할 때 어렵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아저씨는 “잇츠 오케이”라고 짧게 답했다. 안개 덕분에 도시가 로맨틱해 보인다고 했을 때도 그의 대답은 같았다.
“잇츠 오케이. 잇츠 뷰티풀 시티.“
폴란드 억양이 짙게 밴 그의 두 마디에서 무뚝뚝함보다는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더 느껴졌다.
“와이 고 호텔. 노 크럽? 노 파티?”
연주가 끝났는데 왜 클럽에 가지 않고 호텔로 돌아가냐는 농담이었다. 하하. 어디 좋은 곳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레이 클럽이 괜찮단다.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섰다. 화장기 없는 내 얼굴이 김 서린 뽀얀 표면 위로 떠올랐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노곤해졌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찬 공기가 따뜻한 수증기와 뒤섞여 피부에 닿았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나는.
그동안 지나간 연주 여행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머물렀던 도시와 그곳에서 지낸 동료들, 함께 만든 음악, 맛있게 먹은 음식. 우리가 나눈 모든 순간이 즐거운 추억이었다.
그 사이 나는 조금씩 성숙해졌다. 자아의 층탑을 하나씩 쌓아 올렸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층탑은 너무 거창하다. 수수한 나에게 그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몇 겹 정도가 아닐까. 마치 층이 두터운 패스트리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끊임 없이 접어 올리는 것처럼, 내 영혼도 겹을 쌓고 있다. 유난스럽지는 않지만 꾸준히 마음의 부피를 키워 가는 중이다. 이 과정에 바흐의 음악이 함께 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피곤하다. 오늘은 정말 푹 자고 싶다. 내일도 긴 하루가 예정되어 있다.
아침 9시, 다시 비행길에 오른다. 이번엔 영국 옥스퍼드로 간다. 야니를 만나러.
P.S. 연주는 잘 끝났다. 별로 긴장하지도 않았다. 아쉬운 점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정도면 만족이다. 지휘자와 동료들의 반응으로 보아 당분간 잘리지는 않을 것 같다. 살았다. 휴.
폴란드 음식도 하나 남긴다.
‘피에로기(Pierogi)’라는, 폴란드식 만두다. 밀가루 반죽 안에 다양한 속을 넣고 반달모양으로 접어 만들었다. 우리나라 만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속재료를 곱게 갈아 찌기 때문에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식감을 가졌다는 것. 두껍게 밀어 만든 쫄깃쫄깃한 만두피도 인상적이다.
속재료도 다양하다. 치즈와 감자, 채소, 고기를 넣은 것이 흔하고 체리가 들어간 달콤한 버전도 있다고 한다. 내가 먹은 것은 치즈와 감자, 고기가 들어간 피에로기였다. 단순한 재료였지만 정말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