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에세이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서 지난 2년간의 나의 몸 일부를 잘라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흔히들 말하는 안정적이고 정해진 길만 달려온 나에게 지난 2년간의 모습은 큰 일탈이었다. 유독 우리 사회는 이 모습에 대해 인색하다. 특히 보수적인 대기업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며, 늘 외부사람을 만나야 하는 영업사원의 입장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 모습이라면 일반적인 직장인은 아닐 것이라는 선입견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의 내 모습은 나를 찾아가기 위한 과정 중 한 모습이었다.
화이트칼라에서 블루칼라로 전업을 하면서 그것은 내 몸에서 함께 하게 되었다. 화이트칼라 시절 느꼈던 염증은 그것이 내 몸에서 자라는 만큼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기타를 칠 때는 무언가 더 느낌 있는 곡이 나오는 것 같았고 사고방식도 더 유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 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 선생님 말 잘 들으면 나는 무언가 될 줄 알았다. 그것이 삶의 정답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지옥 같은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았을 때, 그리고 더 어렵다는 취업 전쟁에서 나름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 때는 실제로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내 삶은 탄탄히 포장된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와 같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행복이라고 믿었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30대 후반이 되고 나서야 그 포장되지 않은 갓길로 나와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2년 전 나는 13년간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안정적인 직장일 수 있었지만 나에게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데워지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죽어가고 있는 듯했다.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하기 싫어도 버티면서 사는 거라고 했지만 평생을 이렇게만 사는 게 맞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경험이 부족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 그것을 찾아가는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살아온 방식과 다른 그곳에 나를 던져 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2년째가 된 요즘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인지 힘이 부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런 경험들을 해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부모님도 그 당시에는 그게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서 지난 2년간의 나의 수염을 잘라냈다.
지난 모습이 익숙해졌는지 수염 없는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다.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또 금방 적응되겠지. 여자들이 애지중지하던 긴 머리를 자르는 게 이런 느낌일까. 잘 관리해 온 수염을 하루아침에 정리하는 것은 나에게 또 다른 나를 찾는 결심일 것이다. 인생은 긴 여정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여정이 늘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 것 또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찾아갈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