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가장 무서운 순간에 나를 찾아왔다
모든 게 이상하리만큼 순조로웠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캐나다 소도시에 정착하자마자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는 은행계좌를 열고, 핸드폰을 개통하고, 중고차를 사고, 조용한 동네에 타운하우스까지 순조롭게 계약했다. 20년 간 영어를 공부해왔던 게 그래도 꽤 쓸모 있었다.
햇살이 투명하게 내리쬐는 거리, 푸른 잔디 위로 흩어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평화로움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생각했다.
“이게 정말 내 인생이 맞을까?”
이웃들은 지나가다 먼저 인사했다.
“Welcome to Canada!”
웃으며 말을 걸어주던 그들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세상에, 여긴 정말 다른 나라였다.
집 근처 마트에 가는 길도 즐거웠다.
마트 진열대마다 처음 보는 브랜드들이 반짝였고,
색이 유난히 진한 망고, 풍미 넘치는 우유, 엄청난 종류의 시리얼들.
장바구니를 끌며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한국에선 한 번도 그렇게 재미있게 장을 본 적이 없었다.
작은 부엌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이민은 옳은 선택이었다.
이제 직장만잘 출근하면 됐다.
큰 돈을 들여 이주공사를 통해 캐나다에서 확보한 Concrete Finisher 자리는,
나의 ‘이민 성공’의 마지막 퍼즐이었다. Concrete Finisher, 말 그대로 ‘콘크리트를 다루는 사람’.
주택 앞마당이나 도로, 화단에 콘크리트를 붓고 매끄럽게 다지는 일이다.
캐나다 첫 출근 전날 밤, 집 안은 왁자지껄했다.
아내는 도시락통에 밥을 곱게 눌러 담으며 웃었다.
“내일은 진짜 완전 다른 새로운 시작이겠네.”
모두의 얼굴에는 설렘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그 소란스러운 웃음 속에서
유독 웃지 못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나였다.
왜냐고?
그때의 나는, 사실 경력을 속이고 있었다.
콘크리트를 다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캐나다 취업비자를 받으려면,
한국에서의 ‘관련 경력 증명서’가 필요했다.
당시 이주공사 대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다들 그렇게 해요. 그렇게 해서 걸린 사람은 아직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 말은 위험했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위험한 제안이었지만 그 제안을 수락한 건 나였다.
솔직히 당장의 작은 거짓말보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커보였다.
그동안 아무도 안걸렸는데, 그 바보같이 걸리는 사람이 내가 될 확률.. 얼마나 있겠나?
그러나 동시에 마음 한쪽은 불편했다.
그래서 일을 그만뒀을 때,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Concrete Finisher’ 온라인 강의를 찾아
모든 용어를 노트에 적었다.
Screed, Float, Trowel, Leveling
단어 하나하나가 생소했지만, 외웠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직접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했다.
그래서 캐나다 출국을 앞두고는 직접 공사현장에 나갔다.
조선족 인력업체에 전화를 걸어
“저도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국인이.. 왜 이런 일 하려 해?”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가진 콘크리트 경험은 인터넷 강의 몇 편과
중국인 인력업체에서 며칠 몸으로 배운 기억뿐이었다.
그 기억을 되짚으며 긴장한 채 전날 밤을 보내고 있었다.
“제발, 들키지 않게 해주세요. 설사 들키더라도 내 부지런함으로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그게 내 마지막 기도였다.
모두가 내일을 기다리며 행복해했지만,
나에게 내일은 시험대이자 심판대였다.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기가 유난히 차가웠다.
이상했다. 전날 밤엔 그렇게 따뜻했는데,
삼촌과 나는 이른 새벽, 콘크리트 업체 사장의 집으로 향했다.
사장의 집은 소도시 외곽에 있는 시골에 있었는데 지나가는 더욱 풍경은 낯설고 평화로웠다.
사장은 집에서 나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Welcome! You’re early!”
생각보다 젊고 에너지 넘치는 남자였다. 내심 꽤 우리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기분이 좋았는지 그는 자기 집을 구석구석 구경시켜주며 소개해주었다.
드디어 콘크리트 장비를 보관하는 창고 문이 열렸다.
그 안엔 내가 인터넷 강의에서만 보던 장비들이 빼곡했다.
Float, Edger, Power Trowel…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장비 이름을 말했다.
“이건 Bull Float, 저건 Screed죠.”
사장의 눈빛이 번쩍했다. 휴.. 아직까지는 다행이었다.
우리에게 맡겨진 첫 작업은 사장의 닭장 철거와 땅 다지기였다.
닭장 철거는 일머리가 좋은 삼촌이 많이 담당했다.
나는 무언가 어설펐지만 삼촌이 드러나지 않게 많이 가려주면서 일을 해주셨다.
사장은 콤팩터를 가져와 평탄하게 다지라고 했다.
처음엔 제대로 되지 않았다. 땅이 고르지 않아, 자꾸 기계가 튕겨나갔다.
사장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집중해서 사장의 조언대로 땅을 다지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표면이 조금씩 고르게 다져졌다.
사장의 표정이 풀렸다.
‘후… 아직은 들키지 않았다.’
오전 작업이 끝나고, 우리는 다음 현장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점심시간이 됐다.
나는 와이프와 조카가 싸준 도시락을 꺼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힘내서 일하고 승승장구하자!”
깜짝편지를 읽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오후가 되자, 레미콘이 도착했다.
무거운 콘크리트 반죽이 철통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삼발이에 담긴 시멘트를 들어 올리는 순간,
엄청난 무게에 압도되었다. 하지만 당황한 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시멘트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번 , 두 번 시멘트를 갖다 두고 와서…
세 번째 시멘트를 옮기려는데 시멘트를 가득 채운 삼발이을 엎고 말았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이 무겁게 꽂혔다.
“Are you okay?”
누군가 물었다.
나는 절대 괜찮지 않았다. 정말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힘 한방울이 몸에 남아있지 않았다.
작업이 끝나갈 무렵, 사장은 내게 다가와 도구를 건넸다.
“Finish it.”
콘크리트를 마감해보라는 뜻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인터넷 강의에서 봤던 것을 최대한 회상하며 콘크리트를 매끄럽게 문질렀다.
하지만 불과 몇 번의 터치 후,
사장이 크게 소리쳤다.
“너, 일해본 경험이 없구나!!”
그는 정곡을 찔렀다. 심장이 멎었다.
나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 그의 시선을 피했다.
퇴근길, 자동차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아침보다 훨씬 늙어 있었다.
다음 날, 전화가 걸려왔다.
캐나다 일자리를 같이 연결해준 캐나다 브로커였다.
그녀의 말은 굉장히 차가웠다.
“사장이 말하는데… 너, 경력 없었지?”
그 뒤로 이어진 말도 천천히 귀에 박혔다.
"그 사장이 말하길 그는 너희들 부모가 아니라고
너희가 가족이 있다고 해도, 절대 책임질 수 없대.”
말끝이 뚝 끊겼다.
나는 심장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 이렇게 된 것 돌아가자.”
“아니야, 조금만 방법을 찾아보자.”
의견은 계속 엇갈렸다.
하루에도 정말 수십 번씩 결론이 바뀌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새롭게 다니기 시작하던 한인 교회 목사님이 집에 찾아오셨다.
우리의 이야기와 자초지종을 모두 들으시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이렇게 말했다.
“캐나다에서는 원래 모든 일이 오래 걸려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에 품은 일은 결국 되어 있더군요.”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그날 밤도,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지 못했다.
그리고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목사님 말씀처럼 여기 남아서 찾다보면 길이 있을 거야.
나도 여기에 있으면서 여러 방법을 찾아봤어..
우리 대도시로 가자.. 거기엔 나를 채용해주고 비자를 지원해주는 한인 분들이 많아"
아내는 항상 다시 한국에 돌아가자고 줄곧 주장했었는데,
진심 어린 내 의견을 들어주고 고맙게 나를 믿어주었다.
그렇게 나와 아내는 삼촌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목적지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익숙한 거리들이 점점 멀어졌다.
우리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땅, 할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번엔 도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여정이었다.
나와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이번엔 '돈을 주고 편히 정착하는 이민'이 아닌
'진짜 이민자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