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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나남편 Oct 27. 2019

탈린의 푸름을 즐기다  

정말 아름다웠던 탈린의 정원

#카드리오그공원

#러시아의흔적

#재패니즈가든을아시나요

#딱걸렸어KGB


탈린 올드타운 다음으로 가볼 곳은 카드리오그(Kadriorg) 공원! 우리가 이곳에 흥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러시아 제국의 표도르 황제(Peter the Great)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예카테리나(Catherine) 1세를 위해 만든 궁전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표도르 황제가 만든 것이니 분명 아름다운 궁전과 정원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탈린 신시가지의 모습

올드타운에서 공원까지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탈린을 느껴볼 겸 공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올드타운을 벗어나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를 둘러보았다. 이곳 어딘가에 핀란드 헬싱키로 향하는 페리 터미널이 있다고 한다. 항구를 지나 이번엔 시내를 거닐어 본다. 가지런히 정돈된 거리와 말끔히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트램의 모습, 그리고 어딘가 바쁘게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올드타운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세상 같았다.


공원 지도

그렇게 30분 정도 걷다 보니 카드리오그 공원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원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공원이 많이 넓으니 입구 옆에 있는 안내소에서 지도를 확인하자. 


넓은 만큼 볼거리도 다양한데, 우리는 그중에서 카드리오그 궁전, 대통령 집무실, 효도르 황제의 집, 그리고 일본식 정원을 구경하기로 했다. 일본식 정원은 계획에 없었는데, 이런 곳에 재패니즈 가든이 있다는 게 신기해서 들려보기로 했다. 참고로 공원 안내소는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0-17 시간만 영업을 한다. 


Swan Pond

안내소를 지나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백조의 연못(Swan Pond)을 만날 수 있다. 원래는 낮은 연못(Lower Pond)이라 불렸던 곳으로 궁전과 함께 만들어졌다고 한다. 호수 가운데 고급스러운 파빌리온이 있는 작은 섬이 있어서 멋진 풍경을 만든다. 겨울이면 호숫물이 얼어 스케이트장으로 쓰인다고 하는데, 겨울에 이곳에 온다면 또 다른 멋과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Kadriorg Palace

연못을 지나 곧게 뻗은 길을 따라가면 카드리오그 궁전(Kadriog Palace)을 만날 수 있다. 에스토니아 말로 Catherine's Valley라는 뜻을 가진 카드리오그 궁전은 1718년에 시작해 7년의 시간이 걸려 완공되었다고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좋은 인상의 색을 가진 궁전은 현재 에스토니아 예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1인당 6.5유로. 오늘은 공원에서 힐링하는 게 목적이니 미술품 구경은 나중으로 밀어 두기로 했다.


Kadriorg Garden

궁전 뒤쪽에는 궁전 최고의 묘미인 반듯한 정원을 만날 수 있다. 가운데 원형 분수를 둘러싼 알록달록한 화단과 궁전 건물이 정말 잘 어울린다. 궁전이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은 이유가 정원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위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사는 기분은 어떨까? 신나부인은 종종 이런 정원이 있는 궁전에서 살게 해달라고 때를 쓰곤 한다. 부인의 괜한 투정에 매번 혀를 내두르지만 사실 나도 속으로 '부인 나도 정말 이런 곳에 살고 싶어요.'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런 곳에 살 수 있을까, 우리? 


망상에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니 정원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있는 커플이 보인다. 요즘 한국은 자연스러운 웨딩 스냅이 유행이지만 90년대만 해도 경복궁, 덕수궁 같은 궁전에서 웨딩 촬영하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었는데, 갑자기 그 시절이 생각났다.

숲을 탐험 중인 댕댕이들

궁전을 지나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철저히 제단 된 궁전 정원과는 다른 편안한 숲길이다. 이렇게 나무가 우거진 숲을 걸을 때 더 편안한 마음이 든다. 유모차를 끄는 여인과 호기심 넘치는 강아지들과 함께 온 아저씨와 눈인사를 나누며 우리도 평화로운 산책을 즐겼다. 그리고 숲길이 끝나갈 때쯤 멋진 풍경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재패니즈 가든


자연스러운 모습의 재패니즈 가든. 인위적인 유럽식 정원과는 확실히 다른 조금은 우리에게 더 친숙한 정원의 모습이었다. 작은 섬들이 있는 연못 주변 돌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본식 정원답게 섬을 잇는 아치형 돌다리, 무심한 듯 자리 잡은 나무와 바위들, 연못에는 평화롭게 먹이를 찾고 있는 잉어 무리들까지 만날 수 있다. 



아까 궁전의 잘 정돈된 화단으로 꾸며진 정원처럼 화려함은 없지만 푸른 풀과 나무가 많은 이런 정원이 더 좋다고 마음이 맞은 우리. 느긋하게 정원을 거닐며 이곳을 카드리오그 공원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장소로 선정했다. 정원 주변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이런 게 요즘 흔히 얘기하는 '숲세권'이라는 것인가? 이런 숲이라면 집값이 비싼 게 정상일 것 같았다.


재패니즈 가든에서 마음껏 힐링을 하고, 효도르 황제가 지냈다는 집으로 향했다. 향하는 숲길에서 장난기가 발동한 신나부인. 오늘따라 발차기가 높이 뻗는다. 나는 애써 그녀를 외면하며 길을 걸었다. 창피한 듯 괜히 내게 핀잔을 주는 사랑스러운 신나부인. 


황제의 집

대통령 집무실 뒤쪽에 있는 황제의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황제의 집이라 하기에 많이 작아 보였다. 정말 표지판이 없었다면 관리 사무실 정도로 생각하고 무심코 지나칠 만큼 아담했다. 이 집은 궁전이 완공되기 전 황제 부부가 공사 시찰 시 임시로 머물렀던 숙소였다고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도 겨울 궁전을 지으며 시찰 중 머물렀던 집을 보았었는데, 비슷한 규모였다. 임시거처에 크게 공들이지 않는 모습이 나름 합리적인 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의 집을 마지막으로 다시 공원 입구 안내센터로 돌아왔다. 센터 안에 있는 방명록에 우리 부부 흔적을 남긴 뒤 다시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오후 내내 구름이 자욱했던 하늘이 막상 공원을 떠나려고 하니 애석하게 이제야 푸른빛을 내어주기 시작한다.


다시 탈린 시내 거리로 나왔다. 여전히 거리는 사람들과 차들로 많이 붐빈다. 


올드타운에 거의 다 왔을 때 어제 톰이 설명해준 Sokos Hotel Viru 건물 앞을 지나게 되었다. 이 곳은 탈린의 고급 호텔로 예전부터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그런데 이 호텔은 마치 영화 007에나 나올법한 첩보 사건으로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호텔 같지만 에스토니아가 소련에 속해있던 시절 이 건물 23층에는 미국 CIA 같은 소련 정보기관 KGB의 비밀 기지가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호텔의 모든 방과 회의장에 도청장치를 설치해두고 호텔에 투숙한 정치인들을 불법적으로 도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KGB의 불법행위가 완전히 묻혀 있다 에스토니아가 독립한 지 3년이 지난 1994년에서야 밝혀졌다는 것이다. 1991년 소련의 급작스러운 붕괴로 KGB가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이 비밀 본부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고, 새로운 건물 주인이 건물 리모델링을 시작하면서 이 비밀 공간과 그들의 첩보활동이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다. 이 건물에 있는 KGB 박물관에 가면 그때의 그들이 남기고 간 첩보 흔적을 볼 수 있다. TV프로 서프라이즈에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소련이 얼마나 급작스럽게 망했는지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Viru Gate와 시청 첨탑

호텔 앞 공원을 건너면 탈린 올드타운의 멋진 메인 게이트인 Viru Gate가 나온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타운의 메인 입구에는 두 개의 첨탑이 우뚝 서있다. 두 개의 타워 사이로는 올드타운의 가장 번화한 거리가 펼쳐져있고, 그 길 끝에는 시청사의 높은 탑이 또 다른 멋진 모습을 만들어 낸다. 이 길을 따라 많은 가게들과 레스토랑이 있기 때문에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제 다시 올드타운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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