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에 대한 고찰
40년 가까이 한국에 살았는데 겨우 2년간 해외에 다녀왔다고 한국 생활 적응이 어려우려나 했는데, 호...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행 전 보다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지내려 하는데 참 쉽지가 않다.
최근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몇 명이 한국에 살면서 인상 깊었던 것에 대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주제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였다. 모든 것이 빠른 한국, 그들도 이미 그 빨리빨리에 적응되어서 고국에 돌아가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하였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정말 좋은 점이 많다. 웬만한 생필품은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다음날 집에서 바로 받아볼 수 있는 로켓배송.. 아 정말 신세계다. 전 세계에 이런 서비스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 돌아온 뒤 쿠팡의 이런 서비스에 마치 산타 할아버지에게 매일같이 선물 받는 기분을 누려보기도 하였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하면 이런 서비스까지 만들 수 있을까?? 참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회사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는 정말 빠르게 성장한 나라이다. 그 과정에서 절차보다는 결과를 더 중요시 여기다 보니 더 빠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고, 그렇기에 늘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하고 적용하려는 습관이 생겼던 건 아닐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효율적이고 빠른 것이 '좋은 것'이라 인식되어 온 것 같다.
반면에 그사이 비효율, 느림은 생각 없음, 게으름과 같은 부정적인 가치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한 번은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로 차들이 일렬로 서있는데, 그 사이로 골목에서 차가 끼어들려는 상황을 보게 되었다. 신호를 받고 직진하려는 모든 차들은 하나같이 골목에서 나오는 차들을 향해 비난하듯 경적을 울려댔다. 마치 우리의 효율적인 흐름을 방해하지 말라는 듯 말이다.
결국 내 차례가 돼서야 나는 멈춰 서고 그 차를 보내주었지만 덕분에 나뿐 아니라 내 뒤차들은 신호에 걸려 한 번의 신호를 더 기다려야 했다. 세계여행 중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양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데, 서울에서는 유독 양보는커녕, 되려 끼어들 수 없게 새 차 게 달린다.
그런 이런 곳에서 양보를 한 나는 왠지 뒤통수가 쎄~ 한 것을 느꼈다. 마치 나 때문에 멈춰 서게 된 뒤차량에게 잘못이나 한 것 마냥 미안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불편한 감정은 나로 인해 생긴 비효율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인가? 이게 내가 느껴야 할 제대로 된 감정인가? 오히려 양보하고 배려한 스스로에게 뿌듯해야 하는 건 아닐까?
배려라는 것은 어쩌면 내가 손해를 보면서 남들에게 이득을 나눠주는 것이기에 비효율 그 자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세상이 더욱 빨라지고 효율적이 될수록 그것을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강요하며 우리 삶은 예전보다 더욱 배려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딱 맞아떨어진 삶은 얼마나 각박하고 재미없을까. 조금은 느리고 비효율적이어도 괜찮다는, 한번 기다리고 조금 늦게 가도 괜찮다는 마음을 갖고 산다면 조금은 더 배려심이 넘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19년 10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