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코프: 개의 심장(Собачье сердце)
오래전, 제목과 책의 표지가 눈에 띄어 구입해서 읽은 책이 있었다. 얼떨결에 ‘문지’ 판과 ‘열린 책들’ 판 두 개를 구입했었던 <거장과 마르가리따>란 작품이다. 하지만 출판사마다 경쟁적으로 세계 문학 전집을 내는 것이 요즘의 유행인지라 민음사, 동서 문화사 그리고 문예 출판사까지도 이 책을 번역, 소개하고 있었다. 여기서 소개할 소설이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미하일 불가코프’란 작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사람의 다른 작품을 찾다 운 좋게 건지게 된 <개의 심장>이란 중편 소설이 있었다. <개의 심장>은 ‘신아사’에서 출간된 『불가코프 중편선(정연호 옮김)』에 <악마의 서사시>, <비운의 달걀>과 함께 세 개의 중편으로 함께 엮여 있다. 불가코프는 볼셰비즘이 낳은 비운의 작가로서 10월 혁명 이후에 발표한 그의 작품은 모두 멘셰비키적이란 비판과 함께 엄청난 탄압을 당하게 된다. <악마의 서사시>를 발표한 후 볼셰비키 비평가들의 신랄한 비판에 직면했으며 역시 소설 <비운의 달걀>과 <개의 심장>은 처절한 비판과 함께 원고 필사본을 압수당했고, 몇십 년 후에야 복간되었다고 한다. 또한, 대표작 <거장과 마르가리따> 역시 그의 사후 몇십 년이 흐른 뒤 출간되었다고 한다. 불가코프의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환상성과 사실성이 잘 조화된 작품으로, 특히 그의 그로테스크한 풍자성은 작품 곳곳에서 볼셰비즘을 비꼬는 형태로 많이 숨어 있으며 <개의 심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개의 심장>은 우선 재미있고 코믹하며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소설 곳곳에 볼셰비즘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지만 이 부분은 애써 외면하고 우선 소설을 먼저 소개하기로 한다.
이 소설의 시점은 일인칭으로 출발한다. 일인칭 화자의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샤릭’이라고 불리게 된 떠돌이 개다. 샤릭은 인민 경제 중앙회 표준 식사 보급 식당 주변의 쓰레기 통을 뒤지다 요리사에게 뜨거운 물벼락을 맞고 옆구리에 화상을 입은 채 눈보라가 불어 닥치는 개구멍에서 신세 한탄을 늘어놓고 있다. 가는 곳마다 돌팔매질에 이번엔 화상까지…… 추운 개구멍에서 굶주림에 눈물을 흘리며 늘어놓는 그 한탄은 신성시하는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과 네프(N.E.F)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 깔려 있다. 그렇게 홀로 주절주절 신세 한탄을 하는 동안, 인텔리겐쨔로 보이는 어느 신사가 식당에서 소시지를 사 가지고 나온다. 굶주림에 지친 샤릭은 그 소시지의 냄새에 힘을 얻어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그 신사가 소시지를 자신에게 적선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신사는 샤릭의 바람대로 소시지를 토막 내서 샤릭에게 던져 주었다. 그리고는, 샤릭에게 따라 오너라라는 의미를 행간에 간직한 휘익 하는 소리를 냈고 소시지 조각에 감격한 샤릭은 자신을 유인하는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샤릭이 따라간 곳은 따스한 온기가 흐르는 아파트, 필립 필립뽀비치 교수의 병원이다. 소름 끼치는 병원 냄새를 맡고 그곳을 동물 병원으로 오인한 샤릭은 도망치기 위해 아파트 여기저기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난동을 부린다. 결국, 간호사 지나와 조수 보르멘딸리에 의해 마취를 당하고선 자신은 이제 하늘로 가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게 된다.
다시 깨어난 샤릭은 옆구리의 화상이 치료되었으며 한결 몸이 좋아진 것을 알게 되었고 진정 필립 필립뽀비치에게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개에 대해 잔소리를 해대는 지나와는 무관하게 그를 옹호해주는 필립뽀비치의 진찰실 바닥에 엎드려 졸기도 하면서 언제나 맛난 음식이 제공되는 그곳의 안락함을 즐기게 된다. 어느 날 주택 관리소 위원 쉬본제르가 찾아와서 교수가 사용하는 아파트의 방이 7개이니 그중 2개를 내어 줄 것을 요구한다. 혁명 후 전개된 주택 공영화라는 취지의 정책 하에 자발적 반납을 필립뽀비치에게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노(大怒)한 필립뽀비치는 병원 운영에 필수적인 각 방의 용도를 역설하며 쉬본제르와 각을 세우게 된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자 고위층에 전화를 걸어 당장 병원을 그만둘 것이며 다음 주에 잡힌 그 고위층의 수술 집도도 하지 못하겠다고 협박하여 쉬본제르의 의지를 꺾고야 만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샤릭은 박사를 정말 전능한 신과 같이 느끼며 그 병원 이상의 천국은 없다고 확신한 후, 다시는 춥고 더러운 개구멍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한다. 그러고는 뒷발을 딛고 일어서서 박사 앞에서 마치 회교도의 정시 기도와 같은 자세를 취하며 절을 한다. 그 후, 비폭력을 선호하는 박사의 비호 아래 조수 보르멘딸리, 간호사 지나, 요리사 아만다의 불평불만에도 아랑곳없이 샤릭은 병원을 휘젓고 다니며 이런저런 사고를 친다. 하지만 부엉이 박제를 박살 내버린 어느 날, 샤릭은 그날따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박사가 조수 보르멘딸리에게 지시해둔,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시신이 운반되고, 그리고 샤릭은 다시 마취 상태로 들어간다. 박사의 집도 아래 보르멘딸리와 박사는 사람의 뇌하수체를 개에게 이식시키는 대수술을 실시한다. 수술 과정에 대한 상세하고 전문적인, 하지만 그로테스크한 긴 묘사와 더불어 수술은 끝나고 마침내 개 샤릭은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소설은 완전히 3인칭 시점으로 전환된다.
수술에서 깨어난 개 샤릭은 며칠이 지나자 점차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러시아어의 일부를 발음하기 시작하면서 놀랍게도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체도 점점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박사는 뇌하수체의 이식을 통해 노화를 막고 다시 젊어지는 실험을 개에게 시도하였으나 뜻밖에 개가 사람이 되는 개-인간, 개의 심장을 지닌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초반에 발음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간판들의 명칭을 되뇄던 샤릭은 점차 욕을 입에 담기 시작한다. 비속어와 욕설, 그리고 <맥주 두 병 더>, <마부>, <자리 없어> 등등의 명확해지는 말투와 더불어 신체도 점점 더 사람에 가까워져 간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서 와전되고 확대되어 화성인에 관한 소문으로까지 번져갔다. 그리고 완전한 인간(단지, 뇌 수술 자욱이 선명하게 이마에 남은 채로)이 된 샤릭은 박사의 수술이 의도하지 않은, 하지만 획기적이며 전례 없는 새로운 인간을 하나 만들어낸 것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파우스트의 온갖 증류기 없이도 말이다. 그리고 박사는 이전에 샤릭이라고 불렸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신의 피조물에 샤리코프란 이름을 붙이게 된다.
하지만 완전히 인간이 된 샤리코프는 막무가내로 행동하며 박사와 조수를 괴롭힌다. 선반 위에서 잠을 잔다든지, 고양이를 잡는다고 온 집안을 헤집어 버리고, 심지어는 다른 아파트의 고양이를 잡아 죽이며, 지나와 아만다에게 함부로 대하며, 말을 함부로 내뱉고 불손한 태도로 박사에게 대항한다. 박사와 조수는 미성숙한 인간화로 규정짓고 여러 가지 금지 사항을 계속 강조하지만 샤리코프는 “아빠, 왜 아빠는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하지 마라 밖에 없는 거죠?” 이렇게 대꾸를 한다. 박사는 아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며 정중하게 부칭과 호칭을 함께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데…… 하지만 샤리코프의 행동은 더더욱 대책이 없어진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책임을 지라는 논리로 샤리코프는 멋대로 행동을 한다. 특히나, 주택 관리소 위원 쉬본제르와 만나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고 엥겔스의 책을 들고 와서 그것을 박사 앞에 펼쳐놓고 프롤레타리아니, 권리니 하는 단어들을 거들먹거리며 “거주 허가증”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자신은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거주 허가증”이 있어야 외출이 가능하므로 “거주 허가증”의 요구는 정당한 권리라고 항변한다. 어쩔 수 없이 거주 허가증을 만들어 주자 샤리코프는 매일 밖에 나가서는 술에 절어 들어와서 지나를 건드리려 들기도 하고 여러 사건들을 만들어내면 더욱더 박사를 당황하게 만든다. 박사와의 갈등이 심화되던 어느 날, 샤리코프는 취직을 했다면서 어떤 문서를 하나 내민다. 그 문서는 ‘엠.카.하.’ 국(局) 소속으로, 고양이를 위시한 주인 없는 부랑 동물들을 소탕하는 모스크바 시 청소과 과장에 샤리코프가 임명되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었다. 그 후로 샤리코프는 매일 아침 트럭을 타고 나가서 밤이 되어서야 온 몸에 고양이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온다. 하루는 여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을 할 예정이며 자기의 권리인 아파트의 방을 내어 줄 것을 요구한다. 박사는 그 여자에게 샤리코프의 비밀을 밝히는 동시에 그의 거짓말을 들추어내어 여자를 포기시켜 내 보낸다. 이에 극도로 흥분한 샤리코프는 술이 만취되어 들어와서 깽판을 쳤고 참고 참아왔던 조수는 샤리코프를 힘으로 제압하여 더 이상 그러지 말 것을 협박하며 갈등 상황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다음 날, 박사는 시청 관계자인 환자를 접견하게 되고 그 환자는 몰래 쉬본제르가 청원한 문서를 박사에게 보여주게 된다. 그 청원서는 박사가 주택 관리 위원장 쉬본제르 동무를 죽이고자 했으며, 반혁명적 언사를 입에 담았으며 심지어 엥겔스의 책까지 태우는 등의 멘셰비키적 행동을 일삼았음을 증명하는 샤리코프의 서명과 함께 쉬본제르의 이름으로 된 그것이었다. 그동안 참고 참아왔던 박사는 마침내 더 이상의 인간화 과정은 의미 없다고 판단하고 샤리코프에게 집에서 나갈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이에 샤리코프는 크게 반발하며 총을 꺼내 위협하게 되고, 그러던 잠깐의 순간…… 박사는 샤리코프가 소파 위에 깔려 있고 그 위에선 조수가 샤리코프의 목을 조르는 것을 보았다. 이제 박사는 그동안 미뤄왔던 결심을 실행하기로 한다. 샤리코프를 수술할 당시 샤릭에게서 떼어내어 보관하고 있었던 개의 뇌하수체를 떠올리며…… 매일 지옥같이 떠들썩하게 싸우던 그 아파트는 그날 저녁, 더 없는 평온과 함께 무시무시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10일 후, 박사의 병원에 형사범죄 담당 경찰과 예심판사가 위원장 쉬본제르와 함께 찾아온다. 프롤레타리아 샤리코프 살인 혐의로 발부받은 수색 영장을 들고서…… 하지만, 아주 천연덕스럽게 박사와 조수는 그들을 맞이하고 그 혐의에 대하여 웃으면서 샤리코프의 실종이란 것이 혹시 자신의 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지를 정중하게 되묻는다. 경찰은 사람이었을 때의 샤리코프를 의미한다고 강조하지만, 박사는 아무도 죽지 않았으며 샤리코프는 존재하지 않지만 샤릭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부언하면서 샤릭을 데리고 온다. 당황하며 이 개가 그 사람이냐라는 경찰의 질문에 “과학은 아직 짐승을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바로 제가 한 번 시도해 보았습니다만, 그러나 보시다시피 실패했을 뿐입니다. 조금 말을 했고 아주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상태로 변화하기 시작했을 뿐, 격세유전이었지요.” 그 순간 개는 갑자기 “나쁜 말을 내뱉어선 안 돼!!!”라고 외치며 안락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리고 대혼란이 발생했으며, 신경 진정제와 쓰러지는 예심판사, 욕지거리 등등……
이제 소설의 시점은 다시 샤릭의 시점으로 바뀐다. 조용한 집무실, 샤릭이 신으로 생각하는 수의학 박사가 안락의자에 앉아 있고 샤릭은 몸을 기대고 그 옆 카펫 위에 엎드려 있다. 나날이 샤릭의 머리는 점점 더 맑아지며 온화한 생각만이 흐르고 있다. 자신 스스로 최고의 행운아라고, 그리고 박사의 그 아파트를 여전히 지상 최고의 낙원으로 생각하며 사람들이 왜 자신의 이마에 그렇게 줄무늬의 흔적을 만들어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 상처가 다 아물 것이라 믿는다.
이상이 불가코프의 중편 <개의 심장>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불가코프가 어떤 의도 하에 이 소설을 집필했는가는 따지지 않기로 하자. 저자의 의도를 따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에 이와는 무관한 독자의 해석 자체도 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통해서 두 가지의 물음을 던져 보고자 한다. 물론 이런 쪽의 전문가도 아니기에 이 두 가지 물음을 그냥 두서없이 서술해 본다.
먼저, 샤리코프라는 인간은 과연 존재했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는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개-인간 샤리코프를 과연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될 것이다. 이 물음은 생물학적 분류상 위치하는 하나의 종으로서의 인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인간이라고 할 때 그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하는 물음이다. SF 영화에 나오는 안드로이드나 복제 인간을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영화 <닥터 모로의 DNA(The Island Of Dr. Moreau, 1996,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 발 킬머, 말론 브란도 주연)>에서 나오는 수많은 짐승-인간들은 과연 인간인가? 아니면 짐승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인간화 과정의 측면과 법리적인 관점에서의 인간 규정일 것이다. 인간화 과정의 문제는 두 번째 물음에 해당하므로 먼저 법리적인 측면을 따져 보자. 물론 성문법이든 불문법이든 인간을 규정하는 항목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이라고 시작하지 “인간이란~” 이라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볼 때 인간으로서 또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해 준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영화 <조니 5 파괴 작전(Short Circuit, 1986, 존 바담 감독, G.W. 베일리, 알리 쉬디 주연)>은 벼락을 맞아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는 로봇이 된 ‘넘버 5’를 인간으로 인정하고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 1999,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로빈 윌리엄스, 엠베스 데이비츠 주연)>에서 로봇 앤드류는 인간임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영생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한다. 그렇다면 인간 샤리코프 실종에 대한 죄과를 박사에게 물을 수 있을까? 경찰과 예심판사가 박사를 체포한다면 그들은 샤리코프를 인간으로 봤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박사의 말대로 과학적 실험 중에 발생한 하나의 오류나 예외일 뿐인 것으로 간주한 결과일 것이다. 매트릭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고 정상적인 인격체인 네오는 하나의 오류이자 예외, S/W 관점에서 보자면 프로그래머가 의도하지 않았던 버그(Bug)일 뿐이다. 역시 의도하지 않았던 산출물 샤리코프는 직업도 가졌고 시청에 청원도 하는 등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모두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법리적으로도 샤리코프는 인간으로 인정받은 것 아닌가? 샤리코프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은 인간의 죽음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한때 인간이었던 개 샤릭으로서의 존재만을 인정해야 할까?
다음으로, 인간화 과정의 실패라고 단정 짓는 근거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다. 여기서 인간화 과정이란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사는 샤리코프에 대하여 인간화의 실패로 단정 짓고 그를 다시 개로 되돌린다. 자신의 의도와 그릇되게 진행되는 인간화 과정, 그것을 실패라고 한다. 하지만 박사에게 인간화 과정의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과연 있을까? 불가코프는 이 소설을 통해서 교육을 통한 사회주의 인간 양성이라는 볼셰비즘의 교육관을 제대로 비꼬고 있다. 어찌 보면 샤리코프의 불손한 행위는, 물론 박사가 보기에는 견디기 힘들겠지만 우리 인간사의 실제 현실과 비교한다면 차라리 유머러스하고 귀엽지 아니한가? 샤리코프보다 더 끔찍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실제 인간들이 넘쳐나는 곳이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다. 엽기 살인, 범죄, 강간, 아동학대, 홀로코스트…… 샤릭보다 못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곳이 여기 현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샤리코프에 대하여 인간화 과정의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영화 <채피(Chappie, 2015, 닐 블롬캠프 감독, 샬토 코플리, 휴 잭맨 주연)>는 교육을 통한 인간화 과정을 매우 단순하게, 사실 불가코프가 그렇게 비판했던 볼셰비즘적 교육관을 그대로 도식적으로 그리고 있다. 쉽게 말해서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는 좋은 사람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눈여겨볼 것은 여주인공 디온의 '의도'다. 디온은 채피에게 착한 교육을 시키고자 하지만 강도들에게 납치당한, 아니 빼앗긴 채피는 나쁜 환경에서 강도짓을 배우게 된다. 결국 강도짓에 가담하여 디온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행동하는 채피를 인간화 과정의 실패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근거는? 그 근거는 바로 창조자의 의도이고 아버지의 의도일 것이다. 그 의도와 어긋나게 되면 창조자나 아버지는 그것을 실패로 규정할 것이다. 그리고 실패로 규정되는 순간 인간 포기 과정 – 폐기가 뒤따른다. 샤리코프는 다시 개로 돌아가야 하고 채피는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물론, 다행스럽게도 하지만 너무나 뻔하게 채피는 디온의 의도에 맞추게 된다.).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 존재를 과감히 폐기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첫 번째 물음과 그대로 연결되는 듯하다. 인간화 과정을 거쳐야만 인간으로서의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정글북에서의 늑대 소년은 인간인가? 인간화 과정을 거친 후에라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늑대 소년 그 자체로 인간일까?
2015년 6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