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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Jun 29. 2018

나의 세계를 아시나요

레니 에이브러햄슨:  룸(Room)

룸(Room,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 제이콥 트렘블레이, 브리 라슨 주연, 2015)



   네 평 남짓한 이 방은 세계다. 엄마는 비좁고 더럽다고 하지만 이 세계는 충분히 넓다. 왜냐면, 이 세계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으니까... 이제 나는 다섯 살이다.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 나는 네 면의 벽으로 둘러 쌓인 이 세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이 세계 바깥은 우주다. 어둠의 심연이고 모든 것, 심지어 공기마저 얼어버리는 영하의 공간이다. 이렇게 우주는 사각형의 이 세계를 중심으로 존재한다. 이 공간은 바로 나의 세계다. 이런 나의 세계는 모든 존재를 담고 있다. TV가 있고 식물이 있고 화분이 있고 벽이 있고 옷장이 있고 침대와 이불이 있고 싱크대가 있고 세면대와 욕조, 변기가 있고 의자 1과 의자 2가 있다. 램프가 있고 계란 껍질 뱀이 있다. 참! 세면대 위를 기어 다니는 거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엄마가 있다.



   그 외의 나머지는 모두 가짜다. TV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나와 같은 아이들, 엄마와 같은 어른들, 엄마보다 더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경찰, 소방관, 군인들… 하지만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가짜 사람들이다. TV 속에 나오는 개, 고양이, 토끼, 사자, 비둘기들도 모두 가상의 존재일 뿐이다. TV 속의 마당, 나무, 꽃, 바다, 하늘, 세상, 이 모든 것들은 TV 속에만 존재하는 가짜다. 물론 예외는 있다. 높은 천장 위로 네모난 창이 있고 그 위로 네모난 파란 하늘이 있다. 천창(天窓)은 밤하늘의 별도 보여 주고 비가 흩뿌려 놓은 물망울도 보여주며 겨울엔 눈이라는 하얀 가루도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예외는 정말 놀라운 것인데, 가끔 바깥 우주에서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법사 닉의 존재다. 닉은... 잘 모르겠다, 반은 진짜고 반은 가짜인 듯한데, 아마도 그는 마법사일 것이다. 그는 마법을 부려 엄마와 내가 살아 가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가져다준다. 그는 매일 자신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을 통해 들어와서는 계란, 빵, 옷 등을 배급이란 이름으로 던져 준다. 그가 올 시간이면 엄마는 날 안아서 옷장 안에 눕히고는 자장가를 불러 준다. 내가 눈을 감으면 닉이 들어와서 엄마가 누운 침대로 간다. 나는 눈을 감은 채 하나, 둘, 숫자를 세고 그러다 잠이 들면 닉은 사라지고 나는 엄마 옆에서 눈을 뜬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램프, 안녕 옷장, 안녕 싱크대, 안녕 욕조, 안녕 식물, 안녕 계란 껍질 뱀, 안녕 의자 1, 안녕 의자 2... 나의 세계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들과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이 존재들과 함께 나는 엄마와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씻고 같이 놀았다. 엄마도 나도 이 세계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내가 존재하기 전까진 엄마는 계속 울기만 했고 하루 종일 TV만 보다 좀비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선물처럼 하늘로부터 천창을 통해서 내가 내려왔고 엄마 배를 찼고 이불을 걷고 불쑥 얼굴을 내밀고는 눈을 떴단다. 엄마는 손수 탯줄을 자르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녕, 잭?” 나는 나의 세계에 아무런 불만도 없었고 마냥 즐거웠다. 항상 곁에 있는 엄마와 나를 둘러싼, 언제나 나와 함께 있는 나의 존재들. 나는 그들과 함께 영원할 것이고 그들을 떠날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방이 세계 자체인 것만큼 사실이다.



   어느 겨울날,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나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법사 닉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야심한 밤 옷장의 갤러리 문짝 틈을 통해서 그를 훔쳐보았다. 하루는 닉과 엄마가 다퉜고 나는 놀라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닉은 사탕 하나를 흔들며 옷장으로 다가왔고 엄마는 필사적으로 그를 저지했다. 모두가 잠들었고 나는 사탕이 생각나서 옷장에서 나왔다. 그의 잠바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고 문득 그의 얼굴이 궁금했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엄마 옆에 누운 그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그가 눈을 떴고 내게 말을 거는 순간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날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너무 놀라서 난 재빨리 옷장 안으로 숨었다. 엄마는 닉에게 달려들었고 닉은 엄마 위에 올라타서 목을 조르며 욕을 했다. 한바탕 난리를 친 후 닉은 자신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으로 나가버렸고 난 옷장에서 나와 엄마 품에 안겼다.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엄마 목에 생긴 시퍼런 멍을 만졌다. 그리고 난... 용이 되었다. 천창은 흰 눈을 머금고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내 입에선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램프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 말로는 닉이 전기란 것을 끊었다고 했다.


   다음 날, 전기는 다시 들어왔지만 엄마는 갑자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TV에 나오는 모든 것들, 만화만 빼고 모든 것들, 길, 나무, 바다, 거북이, 토끼, 사자, 개들이 가짜가 아니라고 했다. 심지어 TV 속의 그 평평한 사람들, 사람들, 모든 사람들도…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TV 속이 아니라 벽 반대편에, 이 세계 바깥에 있단다. 이 세계 바깥이라고?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우주다. 아니야, 이 곳은 그저 우리가 갇혀 있는 헛간일 뿐이야! 바깥은 훨씬 더 넓은, TV에서 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세계라고 했고 나의 세계는 그저 바깥 세계의 일부분이란다. 엄마는 나의 세계를 단호하게 부정해 버렸다.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외쳤다. 거짓말! 거짓말!


   엄마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낱말들을 뱉어냈다. 납치, 감금, 실종... 닉은 마법사가 아니라 나쁜 사람이란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 엄마의 엄마와 아빠, 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존재와 함께 커다란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거기에는 내가 상상으로 키우는 럭키와 같은 개도 있었고 해먹이란 것이 있어서 그곳에 누워 아이스크림도 먹었다고 했다.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언제? 지금. 어떻게? 엄마는 끓인 물에 적신 뜨거운 물수건으로 내 얼굴을 울긋불긋하게 만들었다. 닉이 전기란 것을 끊어 버렸기 때문에 추위에 나는 독감에 걸리기로 했다. 닉이 들어왔고 내 이마에 손을 대고는 뜨거운 열에 흠칫 놀랐다. 엄마는 병원엘 데려가야 한다고 했다. 닉은 하루 동안 생각해 보겠다며 그냥 나가 버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너무 무서웠다. 닉도 무서웠지만 지금은 사라져 버린 나의 세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더 무서웠다.


   엄마는 단호했다. 다음 날은 내가 죽는 날로 결정 났다. 엄마는 엄마의 이름과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담은 쪽지를 내 손에 꼭 쥐어주며 바깥 세계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아무 사람에게나 건네주라고 했다. 나는 죽었고 내 몸은 바닥의 허름한 양탄자에 돌돌 말렸다. 그리고 혼자서 말린 양탄자를 풀고 나오는 연습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이 말도 함께 반복되었다. 트럭, 빠져나와, 뛰어, 달려! 트럭, 빠져나와, 뛰어, 달려! 트럭이 멈추면 뛰어 내려서 달려야 해, 그리고 처음 만나는 아무에게나 외치는 거야, 우리 엄마는 조이 뉴썸이에요!!! 나는 여전히 무서웠다. 나의 세계를 떠나기 싫었다. 이 세계 바깥은 여전히 가짜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믿어야 한다. 대신 나를 안심시키는 것은 엄마가 내게 준 엄마의 충치다. 엄마의 이빨을 입 안 깊숙이 숨겨 두었다. 나는 죽었고 양탄자는 나를 번데기처럼 말았다. 그 속에서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마침내 가짜 마법사 닉이 왔다. 죽은 나를 품고 있는 양탄자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세상 바깥으로, 우주로 들쳐 매고 나갔다.



   내 몸이 둥둥 떠다니더니 TV 속에서만 존재하던 트럭이라는 것의 뒤편에 안착했다. 옆에 삽이란 것도 보였다. 놀랍게도 그 가상의 존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신신당부했던 말들을 되새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힘껏 몸을 돌려 양탄자를 풀었다. 힘겹게 양탄자를 걷었을 때… 나의 세계에서 보았던 네모난 작은 하늘이 순식간에 무한대로 펼쳐졌다. 그 하늘 아래로 TV 속에서만 존재했던 나무가, 집들이, 거리가 흔들리며 지나갔다. 나의 세계 바깥은 TV 속의 모든 것을 다 담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숨을 쉴 수 있을까? 숨을 쉴 수 있을까? 트럭 옆 칸을 잡고 겨우 일어났다. 트럭이 멈췄다, 뛰어내려야 한다. 닉이 소리를 지르며 차에서 내렸다. 나도 뛰어내렸다, 넘어졌다, 어지럽다, 일어섰다, 힘껏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나는 다시 고꾸라졌다. 손과 발이 따로 놀았다. 마법사 닉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가야 한다, 가야 한다. 마법사 닉은 더 가까워졌다. 일어섰다.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내가 본 첫 번째 사람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닉이 나를 잡아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저기요, 죄송합니다, 따님이 다친 데는 없나요? 괜찮아요, 통제불능인 애라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전화해 드릴까요?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냥 가세요! 나는 쪽지를 쥔 손을 내밀고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도와주세요…… 닉은 내 손에서 쪽지를 낚아챘다. 무슨 일이니, 아가? 그쪽이 상관할 바 아니요, 그냥 가! 지금 경찰을 부를 거예요! 이런, 씨발! 닉은 나를 던져 버리곤 재빨리 트럭을 몰고 떠나 버렸다.


   내가 본 최초의 사람이 경찰을 불렀고 TV 속에서만 봤던 경찰들은 나를 차에 태웠다. 친절한 경찰 아줌마가 내 이름을 물었고 엄마 이름을 물었다. 엄마 이름을 난 기억 하지 못했다. 나이를 물었다. 다섯 살. 사는 곳을 물었다.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는 어디 계시니? 방. 무슨 방? 방금 트럭에 함께 있던 사람은 네 아빠야? 엄마 친구야? 그 사람을 아니? 난 대답 대신에 입안 깊숙이 숨겨 두었던 엄마의 이빨을 꺼냈다. 이게 뭐야? 엄마 거예요. 잘했어, 잭, 네 방 말이야, 방 바깥에는 뭐가 있니? 우주, 아니 세계요. 잘 들어, 잭, 네가 문을 걸어 나갔을 때... 우린 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요. 방에 햇볕은 들어오니? 난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은 몇 개니? 없어요. 햇볕이 들어온다면서? 천창을 통해서요. 천창? 그래, 천창이 있는 집이니? 집이 아니에요. 집이 아니면? 헛간이에요. 그래, 잘했어, 잭. 누가 널 트럭에서 뛰어내리게 했니? 내 머리속에서 엄마가... 엄마가 뭐라고 했니? 속도가 줄어들면 뛰어, 근데 내가 못했어요, 넘어졌어요, 멈췄어요, 근데 내가 뛰어 내...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것으로 충분한 듯했다. 무전기로 긴급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인공위성, 빨간 트럭, 남자, 헛간이 있는 집... 이런 말들이 오갔다. 경찰들은 나를 처음 보는 집 앞으로 데려갔다. 이미 경찰차가 여러 대 와 있었고 하늘에는 헬기가 떠 있었다. 뒷마당이야! 누군가 외쳤고 친절한 경찰 아줌마는 나를 차에 두고 그곳으로 뛰어갔다. 나는 차창에 두 손을 얹은 채 엄마,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차창 너머 저 멀리서 경찰과 함께 엄마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엄마가 울면서,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고 있었다. 차창을 세게 두드렸고 차 문을 열었다. 엄마는 나를 꼭 껴안았다.



   영화 <룸>은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실제로 발생한 요제프 프리츨 사건이 그 배경이다. 요제프 프리츨은 24년이란 기간 동안 자신의 딸을 방공호의 작은 방에 감금하고 지속적으로 성폭행했다고 한다. 그 결과 딸은 7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중 한 아이가 병원에 가게 되면서 이 비극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영화 <룸>은 이 실화를 모티브로 한 동명의 소설(룸, 엠마 도노휴, 2010)을 영화화했다. 영화에서는 엄마 조이(브리 라슨 분)가 17살 때 닉이라는 남자에게 납치당하여 7년간 네 평 남짓한 그의 집 헛간에 감금된 채로 성폭행을 당했고 잭(제이콥 트렘블레이 분)이라는 아이를 낳게 된다. 닉은 헛간에 전자식 자물쇠를 만들어 자신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으며 잭은 그 좁은 방에서 태어나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못한 채 5살을 맞이하게 된다. 조이는 아이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잭은 그렇게 엄마와 있는 그 좁은 방을 세계 그 자체로 인식하고 그 공간 내의 사물들을 실제로 간주하고 그 외의 인간이나 동, 식물, 사물들은 가상이라고 믿게 된다. 조이는 잭의 아버지 닉이 아이를 보는 것도, 접근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고 밤마다 자신의 몸을 탐하러 오는 닉을 피해 잭을 옷장에서 재운다. 그리고 닉이 돌아가면 잭을 옷장에서 꺼내 침대에 눕힌다. 잭이 태어나기 전에 탈출도 시도해봤지만 실패로 끝난다. 무엇보다도 방문 비밀번호를 닉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감히 닉을 죽일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다 닉이 잭에게 접근하려 했던 그날 밤 그와 싸웠고 화가 난 닉은 추운 겨울에 전기를 끊어 버린다. 이 기회를 노려 아이가 독감에 걸린 척했고 다음 날 죽은 것으로 위장한 잭을 닉이 직접 바깥으로 데려나가도록 하는 기지를 발휘해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탈출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지 않는다. 탈출의 과정은 극적이지만 감금과 탈출까지의 스토리는 러닝 타임의 대충 절반을 차지한다. 감독은 나머지 러닝 타임을 탈출 후의 조이와 잭이 맞이하게 되는 또 다른 세계와의 충돌에 할당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이 두 사람의 심리적, 정서적 치유 과정을 더 비중 있게 다룬다.



   바깥세상으로 나온 두 사람에게 방은 어떤 이미지로 남을까? 엄마 조이에게 있어서 그 방은 좁고 더럽고 구역질 나는, 잭을 제외한 그곳의 모든 것이 부정되어야 할 지옥과 같은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잭에게 있어서 방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이자 모든 것을 이미 담고 있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다. 너무나 친숙하고 친밀한 공간으로서의 그 세계는 모든 존재가 직접 연결되어 있고 직접 만질 수 있고 직접 대면이 가능한 충만한 세계다. 존재와 표상이 분리되기 전의 세계이자 기표와 기의의 미끄러짐이 없는 순수 긍정의 세계다. 그렇다면 바깥 세계는? 잭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세계인 동시에 존재와 표상이 분리되어야 하고 기표는 언제나 기의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세계, 관계의 직접성이 깨져야만 하는 공간이다. 반면에 조이에게는 너무나 친숙했던 공간이며 가히 이런 게 세계다라고 불릴 만한 진짜 세상이다. 그곳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며 다시 행복해질 것이다.


   하지만 친숙했던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 조이는 정작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그 세계는 더 이상 조이가 7년 전에 알고 있던 그런 친숙한 세계가 아니었다. 극적으로 구조된 둘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조이의 엄마 낸시(조안 알렌 분)와 아빠 로버트(윌리암 H. 머시 분)도 달려왔다. 바깥세상은 당연히 그들을 떠들썩하게 반겼다. 신문, 방송에 조이와 잭의 이야기가 대서특필되었다. 조이의 요구로 병원을 나와서 해먹과 아이스크림이 있던 집으로 돌아왔지만 딸의 실종으로 인해 엄마와 아빠는 이미 헤어진 상태였고 아빠 대신 엄마의 새 남편 레오(톰 맥카머스 분)가 둘을 반겨 준다. 집 바깥에서는 언제나 방송국과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하며 빼곡히 진을 치고 있었기에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바깥과의 모든 관계는 변호사를 통해서 계산되고 기획된다. 거기다 가족 사이의 관계도 달라진다. 극도로 조심하는 가족들. 트라우마, 심리적 안정 등에 관한 주의를 들은 가족들로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었지만 조이는 그런 것이 더 참기 힘들다. 특히나 아빠 로버트는 손주의 아빠가 닉이라는 이유에서인지 잭을 한 번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조이와 트러블이 생겼고 결국 로버트는 떠나 버린다. 어쩌면 조이에게는 다른 형태의 감금이었고 해먹과 아이스크림이 있었던 집은 확장된 닉의 방이었을 것이다. 행복할 줄 믿었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과거의 익숙했던 세계는 조이에게 이제 더 이상 익숙한 세계가 아니었다.



   조이의 세계와의 불화에는 잭이 그 중심에 있었다. 방에 대한 극도의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두 사람 사이에 공통되는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둘 사이의 너무나 타이트한 유대일 것이다. 잭에게 있어서 엄마는 자신의 세계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잭이 자신의 실존을 인정하는 것 이상의 유일한 존재인 엄마가 있다. 반면에 엄마에게 있어서 잭은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이자 목적이며 생명 유지 장치와도 같은 존재다. 둘의 관계는 혈연을 넘어서는, 아무런 매개체가 필요 없는, 있는 그대로 연결되는 끈끈한 관계다. 바깥세상으로 나온 잭에게 역시 확대된 것은 공간뿐만 아니라 사람들이다. 잭이 아는 유일한 사람 존재인 엄마 외의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떠들고 동시에 말을 한다. 집에 와서도 잭은 할머니나 다른 사람들과의 직접 대면을 피하고 언제나 자신의 끈인 엄마 곁에 찰싹 달라붙어 엄마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느린 적응의 과정일 뿐이었다. 아이 특유의 정신적 유연성으로, 그리고 아이를 대하는 레오의 특유의 친화성을 통해서 잭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할 당시 잭을 담당한 의사는 얼어붙은 잭을 엄마로부터 떨어트릴 것을 조이에게 주문했다. 바깥 세계는 모자간의 그런 타이트한 연대의 단절을 요구하는 세계다. 그래야 잭이 그 세계의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조이 측에서의 둘의 연대는 너무나 질겼다. 조이는 잭이 여타 아이들처럼 뛰어놀고 그러길 바라지만 정작 자신이 아이를 그렇게 놓아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잭을 자신과의 그 철의 연대 속에 머물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 가족들의 부자연스러움, 항상 곁에 붙어 있는 잭, 방의 상황을 재현하는 이런 숨 막힐 듯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조이는 잭 문제를 빌미로 기어이 엄마 낸시에게 모진 말을 쏟아낸다. 나 없이도 잘 살지 않았냐고, 착해지라 해서 그렇게 했건만 결국 납치만 당했을 뿐이라고... 조이는 다시 탈출을 결심하고 인터뷰를 자청한다. 방송국에선 수많은 카메라와 스태프들을 출동시켰고 이런저런 리허설도 하면서 다양한 인터뷰를 진행한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에 인터뷰어는 조이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결코 대답할 수 없는 모진 질문을 던진다. 진정 자식을 위한다면 아이가 그런 유년기를 보내지 않도록 애기 때에 잭을 바깥으로 내보냈어야 한다, 그것이 엄마로서의 의무이자 희생이라는 것이다. 그날 밤 침대에서 잭이 잠에서 깼을 때 옆에 엄마는 없었다. 엄마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고 화장실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조이를 발견했다. 할머니와 레오 아저씨가 달려왔고 조이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난생처음 엄마와 떨어지게 된 잭... 얼마 있지 않아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잭은 말했다. 빨리 돌아와, 내가 엄마와 잭을 살렸어! 그리고 전화를 끊어 버린다. 이제 잭은 당분간 엄마 없는 세계를 경험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엇이든 스펀지처럼 빨리 흡수하는 법이다. 엄마 없는 세계를, 타이트한 연결이 끊긴 세계를 세계로서 받아들이고 적응하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같이 마트도 가고 케이크도 만들었다. 약속대로 레오가 데려온 강아지 시뮤스와 함께 놀았다. 또래 친구도 생겼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비로소 잭은 아이로서의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 집으로 왔을 때 할머니는 잭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자르자고 했다. 하지만 삼손과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은 자신의 힘의 원천이라며 잭은 거부했다. 시간이 지나 이제 잭은 할머니에게 머리카락을 잘라 달라고 한다. 자신보다 엄마가 더 힘이 필요할 거다, 그래서 힘의 원천인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엄마에게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그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순간 잭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를 감겨 주고 수건으로 시원하게 머리를 닦아 주었다. 이제 잭은 아주 귀여운 남자아이가 되었다. 잭은 무심한 듯 말을 던졌다. “할머니… 사랑해요…”



   옆집 아이와 공을 차고 있을 때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잭을 꼭 껴안았다. 미안해,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서... 잭이 답한다. 그래도 엄마잖아,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이는 병원에서 받았던 잭의 머리카락을 꺼내 보이면서 잭이 또다시 자신을 살렸다고 했다. 하지만 잭은 이미 그녀를 여러 번 살렸다. 탄생으로서 그녀를 살렸고 탈출을 통해서 살렸으며 자살의 순간에 살렸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희생함으로써 살렸다. 조이는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 스스로 부정했던 방이었지만 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자신은 여전히 그 방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잭은 방에 있었을 때 엄마의 젖꼭지를 입에 물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이번에도 잭은 엄마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이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안돼, 더 이상은 안된단다, 미안해”. 잭은 쿨하게 답한다. OK! 조이는 이제 존재와 표상을 분리시켰고 기표가 기의에 닿지 못하게 했다. 매개가 필요 없는 투명한 연대를 끊는 첫 번째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둘은 해먹에 누워 있다. 갑자기 잭이 말한다. 방으로 돌아가면 안 돼? 그냥 한번 가 보고 싶어... 잭은 엄마와 함께 자신의 세계를 다시 찾았다. 방은 많이 변했다. 이게 우리 방이야? 잭의 첫 물음이었다. 왜 이렇게 줄어들었지? 자신의 존재들이 많이 사라지고 없었다. 증거물로 가져갔다고 했다. 방을 둘러보던 책이 말한다. “여긴 더 이상 방이 아니야, 문이 열렸으니까...” 엄마는 이해를 못한다. 열린 그곳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세계가 아니며 이미 바깥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문을 닫아줄까? 아니. 잭은 이제 흔적만 남은 자신의 세계에 담담하게 작별을 고한다. 잘 지내 식물, 잘 지내 의자 1, 잘 지내 의자 2, 잘 있어 식탁, 잘 있어 옷장, 잘 있어 싱크대, 나 갈게 천창. 그리고 한 때 자신의 세계였던 그곳을 나선다. 엄마도 이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세계로 엄마 손을 잡고 함께 걸어 들어간다.



   엄마는 방을 부정했지만 잭은 방-자신의 세계를 부정한 적이 없다. 여전히 잭에게 그 방은 완전한 세계이자 유일한 긍정의 공간이다. 적응하지 못하는 엄마를 살렸고 치유했으며 스스로 바깥 세계에 적응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잭에 있어서 방–세계에 대한 긍정이다. 함께 케이크를 만들면서 할머니 낸시는 잭에게 방이 좁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잭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길이 끝나는 모든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절대로 끝나지 않아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엄마는 항상 내 곁에 있었어요.” 심지어 가끔은 그립다고까지 했다. 잭에게 그 공간은 한 때 존재했었던 자신만의 세계로서, 유일한 긍정의 세계로서 실재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렇게 추억할 것이다. 옛날에 말이야, 내가 어렸을 때, 나의 세계가 있었지. 아니면, 일상에 찌든 잭이 술 한잔 거나하게 취해서 이렇게 한탄할지도 모른다. 찾을 수 없어,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곳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혼재향의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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