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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Jul 04. 2018

미성숙, 그 유치찬란함에 대하여

곰브로비치: 페르디두르케(Ferdydurke)

페르디두르케(비톨트 곰브로비치, 윤진 옮김, 민음사)



  페르디두르케…… 무슨 뜻일까? 사실 아무런 뜻도 없다. 곰브로비치가 어떠한 의미 부여도 없이 임의로 정한 소설의 제목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앨리스가 모험을 펼쳤던 곳이 원더랜드라면, 아이 상태로 영원히 머물 피터팬의 나라가 네버랜드라면, 이 소설의 주인공 유조가 꿈처럼 납치되어 의도치 않게 헤매게 되는 불합리한 이 세계를 페르디두르케라 불러도 크게 상관없을 듯하다. 왜 꿈처럼 인가? 유조가 납치된 곳은 바로 자신의 어린 시절이기 때문이다. 왜 불합리한 세계일까? 그 세계는 미성숙이 충만하게 넘쳐흐르는, 문명화되고 성숙한 어른들이 볼 때는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조악하고 유치하며 불온한 세계인 동시에 날 것 그대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곰브로비치가 쓴 이 소설은 바로 “미성숙”이 주제가 되며 이것은 곰브로비치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사실 <페르디두르케>란 작품이 처음에는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 대한 저자의 직접적인 언급을 먼저 확인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페르디두르케>에 대한 곰브로비치의 언급은 이 작품보다 20년 뒤에 출간하게 되는 소설, 하지만 역시 미성숙이란 키워드를 축으로 하는 <포르노그라피아, 임미경 옮김, 민음사>라는 소설에 부록으로 실린 “작가의 말”에 담겨 있다. <페르디두르케>라는 소설에 대한 저자의 언급을 통해서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미성숙”의 의미를 먼저 파악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페르디두르케』는 아마도 내 소설 세계의 토대라고 해야 할 작품으로, 나와 내 작품들을 처음 알고자 할 때 가장 좋은 길잡이다. 『페르디두르케』로부터 이십 년이 지나서 쓰인 『포르노그라피아』도 이 작품에서 뻗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페르디두르케』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페르디두르케』는 남들로부터 아이 취급을 당하는 바람에 아이가 되고 마는 어느 신사의 괴상한 이야기다. 이 소설은 인간의 미성숙을 폭로하고자 한다. 여기 그려진 인물은 불분명하고 중성적인 존재로서 어떤 행동들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해야 하며, 그 결과 겉으로 – 타인에게 – 보여주는 모습이 자신의 내면보다 훨씬 명확하고 선명해진다. 바로 이 상황에서, 그의 감춰진 미성숙과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그가 쓴 가면 사이의 비극적인 불균형이 생겨난다. 마치 겉으로 보여주는 자신이 실제 자기 자신인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는데, 즉, 『페르디두르케』의 인간은 타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것, 인간들은 서로에게 어떤 형식들, 혹은 우리가 ‘존재 방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과함으로써, 서로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페르디두르케』가 출간된 해는 1937년으로서, 사르트르의 ‘타인의 시선’ 이론이 나오기 전이다. 그러나 내 작품이 지닌 이런 면모가 보다 잘 이해되고 공감을 얻은 것은 사르트르가 제시한 개념들이 인기를 얻은 덕분이다.

   하지만 『페르디두르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좀 더 낯선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형식’이라는 단어와 ‘미성숙’이라는 단어를 연결시킨 것이다. 이 소설이 그려내는 인물은 형식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이다. 이 말은 그가 겉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의미로서, 다시 말해 진정하지 않다는, 왜곡되었다는 뜻이다. 그가 한 인간이라는 말은 그가 결코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그도 역시 형식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벌이 꽃가루를 가지고 꿀을 만들듯이 지칠 줄 모르고 형식을 빚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의 형식과 맞서 싸운다. 『페르디두르케』는 인간이 그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과 벌이는 싸움, 형식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위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미성숙이란 원래부터 타고나거나 타인들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지만 늘 그렇기만 한 건 아니다. 그 외에도 또 다른 미성숙이 있는데, 이것은 문화에 의해 조장된 것이다. 문화가 우리를 삼키고 짓누를 때, 즉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높은 차원에 이르는 데 실패할 때, 문화는 이 미성숙 쪽으로 우리를 내몬다. 우리는 온갖 ‘우월한’ 형식에 의해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쓴 가면에 의해 고통받다가 마침내 스스로를 위해, 그 자신만을 위한 용도로, 은밀히, 일종의 하위문화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문화라는 우월한 세계의 부스러기들로 구축된 어떤 세계, 즉 싸구려 잡동사니들과 조무래기 어린애들의 신화들,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열정들로 구성된 영역, 말하자면 보완적이고 보상적인 영역이다. 그리고 이 부수적인 세계에서 어떤 남부끄러운 시, 어떤 유해한 아름다움이 태어난다.



   소설 페르디두르케는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열네 개의 장을 다음과 같이 그룹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각 그룹의 주요 내용을 아래에 정리해 보았다.


 납치: 미성숙 속으로

   1장 납치


 판에 박힌 학교: 미성숙과 순수, 낯짝

   2장 감금, 그리고 작아지기 계속

   3장 움켜쥐기, 그리고 반죽하기 계속


 현대적 가정: 미성숙과 현대성, 장딴지

   6장 매혹, 그리고 젊음을 향해 끌려가기 계속

   7장 사랑

   8장 스튜 요리

   9장 정탐, 그리고 현대성 속으로 빠져 들기 계속

   10장 날뛰는 다리들, 그리고 또다시 움켜쥐기


 봉건적 시골 저택: 미성숙과 계급의식, 궁뎅이

   13장 머슴, 혹은 다시 붙잡히기

   14장 날뛰는 낯짝들, 그리고 또다시 움켜쥐기



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 필리베르 

   4장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 서문: 부분과 전체의 대립

   5장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

   11장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베르” 서문: 형식의 고통

   12장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베르”



   1장 납치에서 시작하여 이 소설의 주인공 유조는 학교, 현대적 가정, 시골 저택이라는 공간을 차례로 거치게 된다. 각 공간마다 미성숙이 다양한 양태로 표출되는데 2, 3장에서는 미성숙이 넘쳐나는 아이들의 학교를 다루고 있고 6장부터 10장까지는 현대적인 가정과 여고생을 통해서 현대성과 미성숙을, 그리고 13, 14장에서는 봉건적 시골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계급의식과 미성숙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4, 5장과 11, 12장은 곰브로비치가 생뚱맞게 끼워 넣은, 이 소설의 줄거리와는 전혀 무관한 황당한 두 가지 이야기이지만 사실 4장과 11장의 각 서문은 미성숙에 대한 곰브로비치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담고 있다. 따라서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와 필리베르는 별도로 다룰 필요가 있기에 이 글 후반부에서 간략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기로 하고 이제부터 이 소설의 줄거리를 구성하고 있는, 학교와 현대적 가정, 그리고 시골 저택에서의 주인공의 모험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1. 납치: 미성숙 속으로

   이제 문단에 발을 갓 들여놓은, 서른 살의 유조 코발스키는 주위로부터 성숙하지 못하다, 유치하다 또는 순진하다는 소리를 듣는, 늘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주인공이다. 그도 스스로 알고 있다, 모든 신체적, 정신적 발달은 완성되었고 따라서 자신 안의 과거 풋내기 소년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유치하고 저급하며 열등한, 익지 않은 미완성의 세계, 즉 미성숙에 끌리는 자신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렇다. 유조는 어른으로서 사회가 요구하는 성숙과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미성숙 사이의 부조화 속에서 헤매는 주인공이다. 그런 자신을 스스로 정리하기 위해 쓴 그의 등단 소설 『미성숙한 시절의 회고록』 역시 이런 미성숙에 경도되는 자신을 정리하기 위해 쓴 것이지만 고상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평가에 대하여 그는 “정신의 세계는 분명 항구적인 폭력이 존재하며 우리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고 그저 타인에 대한 함수일 뿐이며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는 모습 그대로인 것”이라고 한다. 즉, 자신에 대한 평가는 타인의 시선이 제공하는 형식이며 자신은 그 속에 갇혀 있음을, 그 형식에 맞추기 위하여 가면을 써야 함을 알지만 자신의 미성숙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외부에서 가해진 형식과 내부의 미성숙의 대립을 전제하고 있으며 유조는 미성숙의 드러남을 가두고자 하는 타인의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유조 스스로 자신은 두 가지 형태의 감금 상태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즉, 미성숙이 자신을 가두고 있는 동시에 타인의 시선이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벽에 문득 깨어났을 때 어두운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누군가를 보게 된다. 그가 누구인지 조금씩 드러났을 때 그 의문의 인물이 어린 시절의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그 아이를 후려쳤을 때 이미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날이 밝자마자 뜬금없이 문학박사, 교수, 교육자인 동시에 교양 있는 문법학자인 T. 핌코가 나타난다. 거창한 직책과 지위를 가졌지만 사실 그는 구닥다리, 꼰대, 진부하고 현학적인 늙은이일 뿐이다. 그의 출현과 더불어 유조는 자신의 목소리가 변성기에 막 들어선 하이톤의 쉿소리를 내고 있으며 자신의 몸도 작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유조는 어린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 버렸다. 한참을 고상한 전통, 교양, 조국의 혼 등을 설교하던 핌코는 이제 아이가 되어버린 그의 손을 잡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의 궁뎅이를 토닥거리며 학교로 그를 끌고 간다. 그런 황당한 상황을 그는 거부하고자 했지만 몸은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그는 이미 어린 시절의 자신, 미성숙의 세계로 납치당한 후였다.



2. 판에 박힌 학교: 미성숙과 순수, 낯짝

   핌코가 유조를 데리고 간 학교는 그곳의 유지를 위하여 아이들을 머저리 상태로 영원한 미성숙 속에 가둬두고자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선생들도 창의성이나 능동성은 전혀 없고 철저하게 관료적으로 움직이는, 하나같이 나사가 몇 개 빠지고 뭔가 모자란 선생들뿐이다. 또한 그곳의 수업 역시 순수와 순진함을 바탕으로 국가와 조국에 봉사하는 건전한 청년을 양성한다는 것을 기치로 하기 때문에 애국심을 고양하고 조국과 위인들을 무조건 찬양하는 지루하고 판에 박힌 수업의 연속일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이라고 할 때 시대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형식인 “아이다움, 순수, 순진함, 순진무구, 철부지, 천진난만함”을 학교는 강요하게 된다. 그런 학교의 학생들이라면 자연스레 크고 작은 형태의 반발을 드러낼 것이고 이런 반발이란 것이 “~아닌 척 하기”로 표출되며 그것은 바로 미성숙의 고유한 특징인 동시에 미성숙을 스스로 감추는 가면이다. 결국 이곳의 학교라는 곳은 그 자체로 미성숙이 넘쳐나는 곳이며 그곳의 학생들은 미성숙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미성숙은 학교와 부모들의 아이 규정에 반발하여 거들먹거리며 상스러운 욕을 해대는 아이들에게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30대의 정신을 가졌지만 몸은 어린아이인 유조는 그 속에서 혼란을 느낀다. 그런 아이들에 대한 확고한 교육관을 가진 핌코는 아이들이 모인 운동장에 쪽지 하나를 떨어뜨림으로써 아이들 사이에 일대 혼란을 야기시킨다. “ㅇㅇ 학교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남자 젊은 아이들은 순진하다. 아이들의 차림새, 그들이 주고받는 순진한 대화가 그것을 증명한다. 순진하고 또 귀여운 작은 궁뎅이들도 그 증거다.”라는 내용을 담은 이 쪽지에 아이들은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흥분하고 날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닌 척 하기라는 인위적인 느낌을 감출 수는 없었다. 이런 식의 반감의 표출은 점점 무리를 이루기 시작했는데 그 무리의 주동자는 미엔투스란 아이였고 그를 필두로 한 무리들은 핌코가 강요하는 순진함이라는 형식에 맞서 욕설, 음담패설, 저속하고 무례한 말들을 쏟아내는 동시에 순진함과 대립되는 모든 것을 품은 하나의 이상인 “건달”을 찬양한다. 하지만 이에 맞서 순수와 순진함을 찬양하는 무리가 시폰이라는 아이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시폰은 조국과 건전한 젊은이의 이상을 표방하는 “청년”을 앙망한다. 이런 식으로 두 그룹은 대립하게 되지만 미성숙은 “건달 vs 청년”이라는 대립 구도 속에서 활로를 찾는다. 물론 이런 상황은 핌코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예외적으로 이 대립 구도에서 한발 비껴 나서 관조적 자세로 무심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 코피드라라는 학생도 있다. 그렇게 미엔투스–건달과 시폰–청년의 대립은 점점 격화되고 마침내 그 대립은 “인상 쓰기”라는 목숨을 건 일대 일 결투로 귀결된다. 그리고 심판의 역할이 전학생 유조에게 강제로 떠맡겨진다. 핌코의 계략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조는 이런 절박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머슴을 찾아서 떠나자고 미엔투스에게 제안했다. 미엔투스 역시 그의 제안에 심하게 흔들렸지만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상 쓰기 대결을 강행한다. 


   유조를 가운데 두고 시폰 파와 미엔투스 파가 양쪽으로 갈라선 가운데 두 무리의 대표가 서로 마주 보고 섰다. 폭풍전야와 같은 고요와 긴장이 흘렀고 드디어 대결은 시작되었다. 시폰은 빛과 영광에 가득 찬, 청년의 순수한 인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반대로 미엔투스는 저급하고 불순한, 가능한 모든 더러운 인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번갈아 가며 빛나는 얼굴과 혐오스러운 낯짝들이 오고 갔다. 종국에는 시폰이 팔을 뻗어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키며 결코 무너지지 않을 숭고한 이상적인 표정을 지었고 미엔투스는 그 손가락을 끌어내리기 위하여 콧물과 침이 범벅이 된 끔찍한 낯짝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시폰의 저 의기양양한 손가락을 끌어내릴 수 없었고 결국 미엔투스는 물리력을 행사하고야 만다. 미엔투스 파는 시폰을 결박하고 듣지 않으려고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고 미친 듯이 소리치는 시폰의 귀에 미엔투스는 동정을 떼게 하는 음란한 말들을 흘려 넣는다. 미성숙이 그대로 날것으로 드러나는 그 난리 와중에 이런 결과를 기대하고 획책했던 핌코가 태연히 나타난다. 만면에 핌코는 미소를 지으며 그 사태를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하는 공놀이로 치부하고는 유조가 기숙할 집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3. 현대적 가정: 미성숙과 현대성, 장딴지

   핌코가 유조를 데리고 간 곳은 현대성으로 치장된 므워드지아코프씨네 집이다. 현대성이란 그 시대의 최신 유행과 흐름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취미라든지 스타일 그리고 가치관이나 주류 사상도 모두 포함될 것이다. 이 시기는 근대로 대표되는 구시대와의 단절을 통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평등, 자유, 새로운 여성관, 프리섹스, 최신 스포츠 등등의, 진보라고 불릴 수 있는 새로운 물결이 도시를 중심으로 유입되던 시기로서 이런 흐름 전체를 현대성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므워드지아코프씨네 집은 이런 현대성에 걸맞게 꾸며진 가정이며 이곳의 구성원들 역시 현대성이라는 형식의 가면을 쓰고 있다. 므워드지아코프씨의 딸 쥬트카는 현대적 여고생이라면 갖춰야 할 모든 현대적 요소를 몸소 체현하고 있다. 안주인인 므워드지아코프 부인 역시 현대성의 절대적 신봉자로서 사회 참여를 통해서 자신의 현대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므워드지아코프씨의 경우는 현대적 측량 기사로서 현대성의 요구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그 흐름을 부여잡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가 부여한 현대성의 형식 하에서 현대성을 넘치도록 찬양하는 이 가정에 유조라는 이물질이 끼어들면서 미성숙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미성숙은 성과 관능, 관음의 요소로서 나타나며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장딴지, 종아리가 아닌, 쥬트카의 장딴지다. 이렇게 드러난 미성숙은 종국에는 현대성이라는 형식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어떻게든 페르디두르케를 탈출해서 서른의 현실로 돌아가고자 했던 유조는 현대적 여고생인 쥬트카의 시크하고도 세련된 행동, 몸의 각 부분들이 모두 현대성으로 무장된 그녀의 모습에 끌리게 된다. 쥬트카의 계산된 현대적 행동 하나하나에 유조는 조금씩 허물어졌으며 특히 신발을 신을 때 한쪽 다리를 의자 위에 올리며 드러내는 장딴지에 유조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첫 만남에서부터 핌코에 의해 구닥다리 애늙은이로 자리매김된 자신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쥬트카의 현대성에 위화감을 느낀 그는 자신도 그녀와 같은 세대의 현대적 남학생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쥬트카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그 대신 서른 살의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페르디두르케로부터의 탈출은 점차로 멀어져 간다. 한편 유조가 심어준 머슴이라는 환상에 빠져버린 미엔투스는 인상 쓰기 대결의 마지막, 최악의 낯짝 그대로 유조를 찾아 므워드지아코프씨네로 왔다. 사랑하는 현대적 여고생과의 좁혀지지 않는 간격에 유조의 낯짝 역시 엉망이 되어버렸다. 현대적인 여고생을 사랑하는 유조와 머슴을 사랑하는 미엔투스, 둘 다 그렇게 일그러진 낯짝을 하고 있다. 유조는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차도녀 쥬트카는 그를 세련되고 시크하게 거부한다. 유조는 점차 지쳐갔고 쥬트카의 현대성과 애늙은이라는 자신 사이의 줄어들지 않는 그 거리에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다. 유조의 표현대로 현실은 여전히, 얼굴 가득 여드름이 덮여 있을 때만큼이나, 다가갈 수 없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전혀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저녁 식사 시간, 므워드지아코프씨는 현대적 남학생인 코피드라가 딸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식탁의 주제로 올려놓았다. 현대성의 넘치는 찬양자인 므워드지아코프 부인은 그 사실에 감탄하며 더 나아가서 그의 사생아를 출산하라며 오히려 장려하기에 이른다. 그 찬양을 가만히 듣고 있던 유조는 쥬트카와 자신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심연에 지쳐 낙담한 채, 자포자기 심정으로 혼잣말을 하듯 “아줌마~”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무심코 내뱉은 이 한마디가 단번에 상황을 역전시켜 버린다. 아줌마라는 체념 섞인 한마디에 므워드지아코프씨는 미친 듯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 웃음으로 딸의 체면이, 딸의 현대성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것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쥬트카의 표정은 굳어져 버렸고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음식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므워드지아코프 부인은 당황했고 남편을 자제시켰지만 그럴수록 웃음소리는 더 커져갔다. 이미 부인의 현대성은 심하게 흔들려 버렸다. 이런 의도치 않았던 효과에 유조는 쥬트카의 현대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출구를 어렴풋이 발견한 것 같았고 이에 멈추지 않고 연타를 날린다. 숟가락으로 스튜를 휘휘 저어 질퍽한 반죽을 만들고는 게걸스럽게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고상하고 우아한 현대성으로 넘쳐나는 세련된 식탁에서 저속하고 천박하며 지저분한 요소를 날린 것이다. 이제 므워드지아코프 부인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하여 므워드지아코프씨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튜를 먹는 유조의 그 기괴한 모습에 또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러나 쥬트카의 현대성은 의외로 견고했다. 여전히 꿈적하지 않는 쥬트카… 이제 유조의 목표는 명확했다. 쥬트카의 현대성을 무너뜨림으로써, 즉 쥬트카의 미성숙을 드러냄으로써 그녀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을 모색했고 이번에는 훔쳐보기라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쥬트카의 현대성은 그것마저 계산에 넣고 있었다. 유조가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마침 쥬트카가 외출한 사이 초조해진 유조는 쥬트카의 방을 뒤지면서 그녀의 몰취미적 요소, 몰현대성의 요소를 찾고자 했다. 그러던 중 유조는 서랍에서 그녀의 비밀 편지들을 발견한다. 아~ 넘쳐나는 미성숙들… 그 편지들은 대부분 판사, 의사, 변호사, 검사, 약사, 상인, 도시와 시골의 명사 등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위의 성숙하고 고상한 어른들이 보낸 유치한 구애를 담고 있었다. 오그라드는 사랑의 고백, 장딴지의 마법에 홀린 롤리타 신드롬이 넘쳐나지만 마지막엔 모두 한결같이 편지의 내용을 절대로 비밀로 해달라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런 편지 더미 속에서 유조는 두 개의 중요한 편지를 발견한다. 하나는 핌코가 보낸 편지로서, 고전에 대한 쥬트카의 무지에 대한 격정적인 개탄과 함께 별도의 교육적 깨우침이 필요하기에 따로 자신의 방으로 찾아오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하나는 코피드라의 편지로서 현대성이 몸에 밴 젊은이답게 간결하고 짧은 문체로 사귀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유조는 간계를 획책한다. 핌코와 코피드라 각각에게 다음날 밤 12시에 몰래 집으로 와달라는 답신을 쥬트카 이름으로 작성해서 보기로 한다. 그리고 유조는 초조하게 결전의 날을 기다린다. 


   다음날 자정이 다가왔을 때 유조는 바짝 긴장한 채로 훔쳐보고 있었다. 여전히 현대적인 여고생의 모습이 유조의 목을 죄어오는 순간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코피드라가 매우 현대적인 방식으로 창문을 넘어왔다. 쥬트카 역시 놀라지 않고 매우 세련되게 코피드라에게 키스를 한 후 그를 침대 위로 밀친다. 하지만 현대적인 두 남녀의 너무나 현대적인 합일이 성사되기 직전에 다행스럽게도 핌코가 등장한다. 핌코는 진작에 버렸어야 할 고등학생의 미성숙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민망할 정도로 쥬트카에게 응석을 부리다 코피드라를 발견하게 된다. 마침내 현대성과 구닥다리가 마주 보는 그 순간을 노려 유조는 힘껏 소리친다. 도둑이야! 므워드지아코프 부부가 놀라서 뛰쳐나왔고 따로따로 숨어있던 코피드라와 핌코를 발견한다. 차라리 현대적 남학생인 코피드라만 있었더라면 부부는 두 현대성의 결합을 찬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구닥다리 핌코라니…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들이 오가는 사이 화가 치민 므워드지아코프씨는 핌코의 주둥이를 날려 버렸고 이 틈을 노려 도망치려는 코피드라의 턱을 붙잡았다. 이에 수치심을 느낀 코피드라는 므워드지아코프의 무릎을 붙잡고 넘어져서는 상대의 옆구리를 깨물었다. 부인은 남편을 돕겠다고 달려들어 코피드라의 발을 잡아당겼고 이렇게 세 사람은 뒤엉켜 무너져 내렸다. 이 와중에 놀랍게도 핌코는 돌연 한 구석에 드러눕더니 손발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쥬트카는 마침내 현대성을 상실해 버렸고 애원하듯 “엄마! 아빠!”를 외치며 뒤엉켜 있는 사람들 주위를 껑충거렸다. 넋이 나간 므워드지아코프씨는 손으로 잡을 곳을 찾다 딸의 발목을 쥐는 바람에 쥬트카도 넘어져서 이젠 네 사람이 서로를 물고 당기며 뒤엉켜 버린다. 현대성은 이미 몰락해 버렸고 만개한 미성숙의 난장(亂場)이 펼쳐진다. 부분들이 날뛰는 엉망진창인 그곳을 유조는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 집에서 머슴을 핑계로 하녀와 수작을 벌이다 말고 유조를 따라 나온 미엔투스는 머슴을 찾아 떠나자고 유조에게 제안했다. 여전히 시끌벅적한 미성숙이 현대성을 집어삼키고 있는 므워드지아코프의네를 뒤로 한 채 머슴을 찾아서 둘은 걷기 시작했다. 



4. 봉건적 시골 저택: 미성숙과 계급의식, 궁뎅이

   유조와 미엔투스가 머슴을 찾아 도시 외곽까지 나와서 헤매는 동안 유조의 어린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심지어 그의 나이가 서른이란 것까지 알고 있는 이모 후를레츠카를 꿈처럼 만나게 된다. 이모의 차를 타고 시골의 저택으로 가게 된 유조와 미엔투스, 그 저택은 바로 유조가 태어나서 열 살 때까지 유년기를 보냈던 곳이다. 그곳에는 이모부 콘스탄트과 스물두 살 먹은 아들 지그문트, 그리고 유조와 비슷한 연배의 딸 조시아가 있었다. 시골과 그 저택은 진보의 물결이 스며든 도시와는 다르게 귀족과 농노라는 봉건적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는, 주인과 하층민이라는 계급의식이 DNA 레벨에서 철저한 녹아있는 곳이다. 따라서 전통이 그곳에 부과한 형식은 가족 구성원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이미 체화(體化)되어버린 귀족이라는 특권 의식이다. 이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의식 구조를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시로부터 밀려드는 역사적 진보라는 물결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농지 개혁도, 인권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거에 따른 정치적 평등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리고 자신들의 재산을 뺏겨도 좋지만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특히 육체적인 평등, 아랫것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그런 의식이었다. 그것은 태곳적부터 내려온 고귀한 혈통의 저장고인 어떤 자부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 형식의 가면을 이번에는 미엔투스의 “형…제 되기”라는 미성숙의 시도가 갈가리 찢어버린다. 


   저녁 식사 시간에 미엔투스는 음식 시중을 드는 발레크라는 하인에게서 머슴을 발견하고는 뛰는 가슴을 어찌하지 못한다. 유조는 안절부절못하는 미엔투스를 데리고 방으로 왔지만 그는 발레크와 형…제가 되겠다며 발레크를 불러달라고 졸라댔다. 발레크가 왔지만 미엔투스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명령을 내려야만 하는, 당장은 깨뜨릴 수 없는 계급적 금기에 겉돌기만 하다 주인이 얼굴을 때리기도 하는지 물어보았다. 발레크가 “물론 입죠.”라고 짧게 답하는 순간 갑자기 유조가 머슴의 뺨을 갈겨 버렸고 자신도 모르게 유발된 이 행위에 스스로도 놀란 유조는 “꺼져!”라는 명령만을 던질 뿐이다. 천민의 낯짝을 날리는 행위는 계급적 위계를 상징한다. 이 행위는 보드카를 한잔 마시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지그문트의 말처럼 그것은 주인의 손은 하인의 얼굴에, 주인의 발은 하인의 허리에 위치해야 한다는 부분의 차별과 위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발레크가 나간 뒤 미엔투스는 유조에게 배신감에 젖은 적의 가득한 눈빛을 던지고는 머슴을 찾아 나선다. 미엔투스는 주방이 딸린 방에서 주인들의 신발을 닦고 있는 발레크를 발견했다. 형제가 되기 위한 순교자를 자처한 미엔투스는 평등이란 대의 아래 발레크에게 자신의 낯짝을 때려 줄 것을 애원했다. 발레크는 펄쩍 뛰며 거절했기에 미엔투스는 명령을 했고 몇 대의 따귀가 불꽃을 튀긴 후 미엔투스의 낯짝은 죽사발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모종의 친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침 주방으로 들어온 하녀도 이런 친밀감에 합류했고 머슴과 함께 이 유별난 주인을 놀려댔다. 점차 계급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머슴과 하녀는 주인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고 심지어 그들만 알고 있는, 바깥으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주인들의 추접한 비밀들까지 떠벌리며 흉을 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하인장 프란치스체크가 그들을 발견했다. 방으로 돌아온 미엔투스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유조는 예감한다, 하인들과 미엔투스 사이의 장난 같은 이 일은 거대하게 몰아닥칠 폭풍우의 전조임을…  


   미엔투스의 형제 되기를 위한 이런 미성숙한 시도는 결국 잠자는 맹수를 깨운 셈이 되었고 길들어 있는 하인들을 풀어주는 나비효과의 초기치 역할을 담당한다. 이 저택과 시골 귀족의 비밀, 바로 하인들의 비밀들이 하나 둘 폭로되기 시작할 것이다. 유조나 미엔투스같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주인 혹은 소유자란 느낌은 별로 없다. 도시의 경우 수많은 매개를 거쳐 하층의 프롤레타리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골의 경우 그런 매개 없이 주인과 하층민은 직접적으로 맞닿게 된다. 귀족의 삶은 바로 천민이라는 바탕에 바로 뿌리를 내리고 그들의 즙을 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주인들이 하층민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의존 관계는 역전되어 있으며 하층민이 주인들을 보호하고 있는 형국이다. 주인은 군림하고 있다지만 실제로 하층민 없다면 주인은 자기 코도 풀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한 존재임이 드러난다. 주인이 그들을 핍박하고 착취하고 탄압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하층민에게 응석을 부리는 것이며 하층민은 그 응석을 받아주는 것일 뿐이다. 주인의 선함에도, 가장 엄한 명령에도 결국 주인은 하층 계급의 자식이라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제 하층민들이 그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노예인 자신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유로워야 한다는 보편적 이념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형제 되기라는 미성숙의 발현에 의해서다. 미엔투스의 사소한 시도는 쑥덕거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들은 형제 되기를 쑥덕거렸고 주인들에 대해, 주인들과 그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공유하던 비밀들을 공공연하게 쑥덕거린다. 그 쑥덕거림은 이제 넓게 넓게 퍼져나갈 것이다. 


   다음날, 예상대로 이모부는 유조를 불렀다. 하지만 이모부는 귀족 특유의 가식을 띠며 미엔투스와 발레크 사이를 은밀한 동성애의 관점으로 몰아가고자 했다. 그런 가식에 역겨움을 느낀 유조는 사실 그대로를 털어놓았다. 믿지 않으려는 이모부에게 풋내기의 달콤한 순진함을 드러내며 형…제가 된대요, 그냥 형제!라고 못을 박아버렸다. 형제나 친구 되기, 평등, 주인과 하인 사이에! 이모부는 있을 수도 없는 청천벽력 앞에서 형용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할 뿐이었다. 마침 거실로 들어온 발레크를 보고는 낯짝을 갈기려고 손을 들었지만 그러지 못한다. 발레크를 때린다면 문제의 그 사건을 밖으로 드러내는 꼴이 될 것이다. 이때 하인장 프란체스카가 와서는 기름을 부어 버린다. 유조 도련님 친구분 덕분에 밑에서 모두 쑥덕거린다는 것이다. 이모부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문제의 진원지를 찾아서 자초지종을 따져봐야 한다. 대신, “형제 되기”라는 그 사건 자체가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된다. 이제부터 이모부와 이모, 지그문트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산책하듯이 천천히 사방으로 미엔투스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들이 들르는 곳 여기저기서 이미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을 헤맨 뒤에 그들은 숲 속에서 발레크와 함께 나오는 미엔투스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마치 친구라도 되는 양, 형제처럼 다정하게! 해 지는 석양을 뒤로하고 머슴이 미엔투스의 뺨을 때린다. 기겁을 한 지그문트가 발레크를 부르며 소리쳤다. 놀란 머슴은 숲으로 도망쳤고 부부와 아들은 미엔투스를 만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외딴곳으로 그를 데려왔다. 이모부가 형제 되기를 따져 물었을 때 미엔투스는 순순히 인정한다. 이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한 이모부는 발레크를 희생양으로 삼아 쫓아 내기로 한다. 여기에 격분한 미엔투스는 적개심을 드러내며 하인들에게 들었던 이모부와 지그문트의 추잡한 비밀을 비꼬듯 내뱉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유조는 그를 따라갔다. 마침내 유조가 미엔투스를 붙잡았을 때 그는 이제 말투까지 머슴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그와의 공통된 언어는 사라지고 없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분위기는 제법 살벌했다. 도처에서 아랫것들의 수군거림이 들리는 듯했고 이모부의 신경은 곤두서 있었다. 창 밖으로 불빛이 어른거리며 재잘대는 소리가 들렸고 이모부는 마당으로 나가 허공에 대고 연신 총을 쏘아댔다. 유조는 하루빨리 그 집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되어버린 미엔투스는 발레크를 두고 떠나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떼를 쓰고 있다. 별 수 없이 유조는 발레크와 함께 떠나자고 미엔투스를 달랬다. 자신의 제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야심한 밤에 유조는 발레크를 찾아 나섰다. 컴컴한 거실에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면서 그는, 지금 자신이 벌이고 있는 이 탈출극이 과연 합리적인 행동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합리적’이란 의미는 결국 성숙함, 어른스러움을 의미했고 자신의 행위가 어른스러운 일탈이기를 원한다면 발레크보다 차라리 조시아를 납치하는 편이 더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조시아를 납치하고픈 그런 회피성 유혹을 억누르며 유조는 겨우 발레크를 찾았고 함께 떠나자고 했다. 발레크는 내가 왜 떠난대요? 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유조는 설득 대신 머슴의 낯짝을 갈기면서 명령을 내렸다. 발레크와 함께 조심조심 거실을 지나는 순간, 이모부가 나왔다. 누구요? 서로 쥐 죽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고 이모부도 어둠 속의 대답 없는 어떤 실체를 느끼고는 두려움에 움직이지 못한다. 그때 지그문트도 나왔지만 그 역시 어둠 속의 그 무엇이 던지는 공포로 몸이 얼어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간격을 두고 서로가 유발하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인해 굳어버린 네 사람. 영원할 것 같은 긴장의 적막을 깬 쪽은 이번에도 하인장 프란치스체크였다. 거실에서 나는 소리에 나와서 램프를 비췄고 이 순간 유조는 재빨리 커튼 뒤로 숨었다. 우스꽝스럽게 서 있는 이모부와 지그문트, 그리고 발레크. 이 어색한 상황을 하인장은 발레크가 아침에 쫓겨나기 전에 은접시를 훔쳐 달아나고자 했다는 혐의를 씌움으로써 간단하게 해결한다.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찾은 이모부와 지그문트는 아랫것에 대한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발레크를 무자비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로지 낯짝만 때린다. 그것은 바로 주인의 손과 하인의 낯짝이라는 부분의 법칙이 허용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피 튀기는 그런 광기의 상황을 그 특유의 선함으로 정리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이모는 멀리서 조용히 바라만 보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 난리에 바깥에는 어느덧 농부들과 하인들, 일꾼들, 아낙들이 모여들었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모부는 발레크의 낯짝을 죽사발로 만듦으로써 무너뜨릴 수 없는 계급의 위계를 여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미엔투스가 이 난리통에 뛰어들었고 내 꺼야! 라고 울며불며 발레크를 껴안았다. 이런 애송이 같으니라고, 엉덩이를 맞아야 해! 이모부와 지그문트는 발레크와 농부들이 보는 앞에서 미엔투스의 낯짝이 아닌 궁뎅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낯짝을 때려서는 안 된다. 궁뎅이를 때림으로써 이모부는 미엔투스를 성숙한 귀족 나리가 아닌 한낱 코흘리개 애송이로 만들고, 따라서 미엔투스의 형제 되기를 철없는 어린아이가 벌인 치기 어린 행동의 수준으로 낮춤으로써 형제 되기의 의미, 육체적 평등의 의미를 제거하고자 했다. 미엔투스는 아야, 아야 하며 징징거리다 머슴 뒤로 숨었고 미엔투스의 형제 되기에 용기를 얻은 발레크는 한순간 폭발하여 이모부의 낯짝을 갈겨 버린다. 마침내 마법의 빗장이 풀려버렸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지만 아랫것들은 꿈틀하면 안 된다. 하지만 꿈틀하고 말았고 어이없는 일격에 이모부는 바닥에 완전히 등을 깔고 쓰러졌다. 이제 미성숙이 도처로 퍼져 나간다. 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하인들도 형제 되기에 동참한다. 누군가 던진 돌들이 창문과 램프를 깨버렸다. 다시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지만 어둠 속에서는 이미 농부들의 몸의 부분들로 가득하다. 지그문트와 이모부의 삐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농부들은 미성숙한 방식으로 그들을 나눠 가진다. 유조는 침대용 소파에 앉아서 존재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이모를 억지로 끌어다 미성숙이 날뛰는 현장으로 밀어 넣고는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는 구름 사이로 노란 궁뎅이가 휘영청 빛나고 있었다. 마침 마당의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조시아를 발견했다. 무슨 일이야? 농부들이 부모님을 공격한 거야? 유조는 말했다. 도망가자! 둘은 달리기 시작했다.


   둘은 한참을 달려 들판으로 나왔다. 이미 하늘에는 작열하는 백색의 궁뎅이가 지상 곳곳으로 미성숙의 햇살을 쏟아붓고 있다. 얼떨결에 조시아를 데리고 도망쳤지만 유조는 그 이유를 조시아에게도,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다. 저택에 만개한 미성숙의 난장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차라리 애초에 느꼈던 회피성 유혹을 그 이유로 삼기로 했다. 조시아를 납치한 것으로 하자. 젊은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납치해서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그것이 더 어른스럽고 합리적이다. 유조는 조시아에게 그렇게 설명해야 했다. 첫눈에 반했으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납치하듯 데리고 왔노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조시아와 함께 우선 시골을 벗어나 기차를 타고 바르샤바로 간다면 서른 살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지 않았던 또 다른 미성숙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번엔 조시아가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조시아는 자라오면서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귀족으로서 그녀에게 부고되는 삶, 조신함, 여성스러움, 적당한 지적 능력, 일정의 형식적 봉사, 사교 모임 같은 반복되는 루틴을 생각 없이 소화해 왔다. 이런 지루한 삶 속에서 그녀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고 백마를 탄 왕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타나서 자신을 소유해 주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유조가 자신을 납치함으로써 비로소 그녀는 존재하기 시작했고 주체적으로 행동한다. 유조에게 애교를 부리고 적극적인 스킨십을 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유조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이런 그녀의 돌변한 태도에 유조도 응당한 반응을 보여야 했고 그만큼의 사랑을 표현해야만 했다. 납치의 목적은 단순했다. 페르디두르케로부터의 탈출이었다. 그저 외양을 유지하고 핑계를 대기 위해서, 상대적 성숙함을 갖추고 바르샤바로 도망가서 서른의 자신으로 혼자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이렇게 또 반전되고 말았다. 조시아를 떼어내고 다시 삶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에게 엉겨 붙어 끊임없는 애정을 남발하는 이 미성숙을 떨쳐낼 수 없었다. 여전히 궁뎅이 – 미성숙의 태양은 하늘 저 꼭대기에 올라서서 세상 모든 곳을 밝게 비추고 있다. 도처 어디에도 이 미성숙의 세계, 페르디두르케를 빠져나가기 위한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궁뎅이를 피할 안식처는 없다는 걸 유조는 깨달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내뱉는다.

   “이제 끝이다. 트랄랄라.  이 책을 읽을 사람한테 한마디하자. 제기랄!”



   이상 <페르디두르케>의 줄거리를 필자의 해석과 곁들어 요약했다. 주인공 유조가 어린 시절로 납치되어 학교, 가정, 시골 저택이라는 세 장소를 방문하면서 겪게 되는 모험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 모험은 유조가 원하지도 않았던, 결코 유쾌하지도 않고 악몽 같은 모험이다. 또한 각 모험은 갇혀 있던 미숙성의 폭발이 파국으로 치달아 기존의 형식을 깨부수게 된다. 미성숙이 있는 그대로 발현되는 학교는 아이들의 미성숙을 억누르는 동시에 조장을 하면서 건달과 청년의 대립과 인상 쓰기라는 낯짝의 대결이라는 미성숙의 만개로 파국을 맞는다. 현대성이라는 형식의 가면으로 미성숙을 가두고 있는 현대적 가정은 장딴지가 유발한 미성숙으로 인해 현대성은 파국을 맞게 된다. 또한 봉건적 계급의식이란 형식으로 고착화된 시골 저택은 미엔투스의 형제 되기라는 미성숙의 시도로 인해 파국을 맞는다. 이런 일련의 파국적 모험을 끝내고자 하지만, 그렇게 해서 미성숙의 세계로부터 유조는 탈출하고자 하지만 결코 탈출할 수 없음을, 궁뎅이를 피할 안식처는 없음을 주인공은 깨닫게 된다. 탈출을 기대하고 조시아와 함께 도망치는 마지막 부분은 소설의 구조 상, 1장의 “납치”와 대칭을 이루도록 별도의 장으로 분리해도 될 법 하지만 마지막 14장에 그대로 포함되어 있다. 이는 납치된 미성숙의 세계로부터 결코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의도적 배치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각 장소마다의 미성숙의 발현은 형식이라는 종합을 깨뜨리는 신체의 부분으로 특정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낯짝”이, 현대적 가정에서는 “장딴지”가, 시골 저택에서는 “궁뎅이”가 미성숙을 대표하는 “부분”으로 등장하여 미성숙이 발현하는 계기로서 작동한다. 또한 학교, 현대적 가정, 시골 저택에서 각각 등장하는 저급한 특정 계층을 대표하는 집단, 즉 철부지 남학생들이 앙망하는 건달, 롤리타적 환상을 심어 주는 여학생, 비천한 머슴은 곰브로비치가 저자의 말에서 언급했던 대안으로서의 저급한 문화를 상징하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미성숙의 “도장 깨기” 중간에 뜬금없이 삽입된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와 필리베르 이야기 및 서문은 곰브로비치 자신이 그리고 있는 미성숙에 대한 설명의 성격이 강하다. 또한 이렇게 소설의 전개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불쑥 끼워 넣은 것은 “이 서문이 그저 종이를 더럽히고 내 앞에 놓여 있는 백지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였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역시 오산이다.“라고 곰브로비치 스스로 소설에서 밝힌 것처럼, 미성숙한 글쓰기의 양식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장과 6장, 즉 학교와 현대적 가정 사이에 삽입된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의 서문에서는 전체와 부분의 극단적 대립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전체라는 완성된 형식으로서 존재하는 성숙과 완성되지 않은 날 것 그 자체로서, 각각의 부분들로서 존재하는 미성숙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전체는 배제를 근거로 이루어지며 형식, 스타일, 존재 양식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부과된 어떤 것이라고 한다. 서문에 이어지는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도르”라는 황당한 이야기는 종합주의의 제왕 필리도르 박사와 분해의 대가 안티-필리도르 박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체와 부분의 목숨을 건 사투를 매우 익살스럽고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10장과 13장, 즉 현대적 가정에서 시골 저택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삽입된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베르” 서문은 형식이 주는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 이 형식이 주는 고통은 타인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한계에서 오는 고통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어른이며 아이인 필리베르” 이야기는 앞서 필리도르 이야기보다 더 황당하며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내용 역시 외부에서 부과된 시선이나 형식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필리도르의 경우를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서문과 이야기는 소설의 전개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곰브로비치의 미성숙론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일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행간의 의미를 떠받치는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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