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파리타Lee Aug 14. 2020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1편, 식욕의 근원을 찾아서

후루룩, 짭짭. 음식 들어가는 소리가 사운드를 가득 채운다. 한참을 히죽 거리며 모니터를 응시하던 내게 멕시칸 남편 띤군은 대체 무슨 방송이 쩝쩝 거리는 소리 반, 달그락 거리는 (식기 부딪히는) 소리 반이냐며 오만상을 쓴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 '그런 프로를 도대체 왜 봐?'  


그의 '그런 프로'는 바로 삼시세끼였다. 별거 없어 보이는 평범한 메뉴를 재료 공수 부터 식탁에 올려 음미하기까지의 과정을 나PD 특유의 슬로우 테이크로 보여주는 이 프로는, 보고있자면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도 모르게 히죽거리게 된다.


아마 3-4년 전부터였을거다, 이름하여 '먹방'이 인기몰이를 하며 우리나라 예능을 점령하기 시작한게. 맛집 찾아다니는 스토리는 기본이고, 막무가내로 집에 찾아가 밥 한끼를 달라고 하지를 않나, 유명인의 냉장고를 통째로 들고와 거기에 있는 재료로 셰프들이 즉석 요리대전을 펼치지를 않나, 레파토리도 다양하다. 예능 프로를 능가하는 이름하여 '찐 먹방'도 있으니, 바로 ASMR 먹방이다. 스토리와 유머라도 겸비한 예능 프로와는 달리 ASMR 먹방은 그야말로 오로지 먹방, 온리 음식이다. 청각과 시각을 극적으로 자극하는 이 먹방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식욕이 쑤욱! ASMR 먹방에서 음식은 '영롱'하고 성스럽기까지 해보인다. 


개인도 여기에 가세하기 시작했으니, 맛집 탐방을 하고 SNS에 음식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 것. 아마 그 즈음일 거다.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소!'를 세상에 외치는 용도로 쓰이던 SNS가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음식사진으로 넘쳐나면서 '나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소!'로 그 스토리가 확장된 것이 말이다. 


남이 먹는걸 보면 안 먹고 싶다가도 먹고 싶어지는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하니, 먹방이 식욕 부스터로 작용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 먹방을 보고 야채곱창이 급 땡긴다. 배달을 시켜 배부르게 한 탕 먹고나니 기분이 좋다. 우리 몸이 갈망하는걸 만족시키는데서 오는 쾌감! 그리고 우리는 그 쾌감을 선사할 또 다른 메뉴를 찾아서, 새로운 영감靈感을 찾아서 또 먹방을 튼다. 


멕시코와 독일을 왔다갔다 한지 6년. 내 행동패턴을 관찰하다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나는 외국에 나와있을때만 먹방을 본다는 것! 한국에 있을때는 누가 먹방을 틀어놔도 관심 제로, 아예 다른 프로로 획 돌려버린다. 물론 해외에 있으면서 한국 음식이 그리워 먹방을 더 찾게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한국에 있을 땐 그냥 입맛 자체가 없다. 해외에서 방문한 나를 위해 상차림 메뉴를 묻는 가족에게 내 대답은 주로 '아무거나'다. 외국에 있을땐 먹고싶은거 투성인데 한국에만 들어가면 신기하게도 식욕이 쏙! 들어간다.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다. 사람한테는 식욕, 성욕, 수면욕 이렇게 세가지 기본 욕구가 있는데, 그 중에 덜 채워지는 욕구가 있으면 그게 다른 욕구로 터져나온다고. 정말 그런가는 차치하더라도 이것과 비슷한 패턴은 일상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빡세게 일하고 난 다음 소비 욕구가 터진다거나 일주일 열심히 헬스하고 주말에 하루 먹고싶은거 다 먹는 '칫데이(cheat-day)'의 유행이나. 


해외에 있을때만 왕성해지는 내 식욕은 이민자로 살며 감내해야 하는 외로움과 불안의 쌍둥이형제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이 내가 내 식탐의 패턴을 유심히 들여다본 결론이다. 한 작가의 말마따나 밥을 먹는건 몸과 마음에 정기를 충전하는 행위라는데, 외로움과 불안으로 정기가 자꾸 세니 먹는게 계속 땡길 수 밖에. 아니, 먹는거로라도 채울 수 밖에! 


한국의 먹방 열풍을 지켜보며 또 어디선가 주워들은 '피로'라는 영단어 'fatigue'의 어원에 대해 생각해본다. fatigue의 라틴어 어원은 fatīgō(파티고). 이는 fatis(파티스)와 agō(아고)로 분리되는데, fatis의 원형인 fātum(파툼)은 운명, 숙명을 뜻하고 agō는 하다, 행동하다를 의미한다. 즉 '운명을 행하는 것'이 '피로'라는 것!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는 집에서 사명과 책임을 다하느라 몸도 마음도 피로해진 한국사람들이 보상심리 격으로 잠깐의 환기를 꾀하는 영역, 그것이 바로 먹는 영역이자 먹방 열풍의 근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이런독일어]숫자는 자고로 뒤부터 읽어야 제대로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