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브런치에 입문한 지 만 6개월이 되었다.
누구나처럼 혼자서 글 쓰던 초기 두세 달 동안은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일단 주로 핸드폰으로 쓰다 보니 눈이 아팠다.
그리고 표현하기 어려운 적막감이 크게 느껴졌다.
주변을 대충 살펴보니 젊은 작가들이 많았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이곳에서는 그리 큰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글을 써서 올려보라고 성화를 대던 친구를 살짝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잠시 쓰기를 멈췄다. 가끔씩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기만 했다.
친구도 잠시 쉬어가라고 했다. 글이 일정량 쌓이면 자비로 출간을 돕겠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은 먼 후일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든 내가 펜을 놓지 않기를 바랐다.
읽다 보니 두 세 작가의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나랑 얘기가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글을 대하는 긴장감도 다소 줄어들었다. 다시 글 발행을 시작했다. 마음에 와닿는 다른 작가의 글에 인상적인 느낌을 댓글로 표현했다. 이전의 댓글란은 주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식의 인사로 채워져 있었다. 구체적인 감상과 인상적인 구절에 대한 언급은 실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몇 분이 다시 성심껏 대댓글로 피드백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대화를 이어가며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갔다.
글쓰기 숙련도가 낮고 완성하는 속도도 느리다 보니 쉽게 피곤해졌다. 타인의 작품을 마음껏 읽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연결된 작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감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로 글 서핑하는 시간을 늘려가려 애썼다. 댓글로 인사를 튼 작가들로 인해 한결 브런치 생활이 수월해졌다.
작품 만드는 시간보다 마음을 담은 댓글을 쓰는 시간이 더 즐거웠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먼저 라이킷을 눌러준 작가의 방을 방문해보니 댓글이 넘쳐났다. 그는 인기 작가였는데 대댓글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다른 글을 보니 간단한 인사말로 대댓글을 대신하고 있었다. 깊은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아니었다. 라이킷으로 그저 관심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작가는 이런 상황을 관리하기 어려웠던지 아예 댓글창을 닫아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글을 남기는 이들과는 달리 나는 댓글을 작성하고픈 의욕이 들지 않았다.
한 작가는 댓글창에 달린 글이 몇 안되는데도 아무 멘트도 없었다. 다소 무심해 보였다.
한 번은 이런 경우도 보았다. 여러 명을 한데 묶어서 한 줄의 인사로 대신한 것이다. 어찌 보면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긴 하겠지만 무언가 형식적인 느낌이 들었다.
젊은 작가나 입문한 지 얼마 안 되는 작가의 글에는 좀 더 신경 써서 댓글을 달곤 한다. 그들에겐 누군가의 손짓이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댓글 교류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반응이 없거나 아주 기본적인 반응에 그친다. 그러면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댓글을 삼가게 된다. 그럼에도 꾸준히 방문하는 이가 있어서 마침내는 서로 말을 튼 경우도 있다. 알고 보면 이러한 교류가 익숙하지 않아서 대화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서로 글을 나누며 교류하였기에 긴장이 풀려서일까? 어느 순간 장문의 댓글을 달고 말았다. 그 작가는 감사합니다라는 답변을 끝으로 다시는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과유불급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교류를 망치는 길은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자랑하듯 떠드는 것이리라. 뭐가 대단하다고.
순간적인 감흥을 억제 못하는 병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댓글의 길이로 흥분 정도를 측정하게 될 줄이야.
품성이 너무 좋은 작가들이 이런 댓글들을 너그러이 받아주어서 지금은 대체로 원만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일종의 채팅방이 생길 정도이다. 우리끼리는 수다 다락방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그저 칭찬과 감사의 표시였던 댓글은 어느덧 각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발전하고 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데 깊은 이해는 영혼까지 일으켜 세운다. 너무 큰 감격을 주고받다 보니 글쓰기만큼이나 행복한 때가 아주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댓글을 정리하다 보니 여러 편이 만들어졌다. 댓글 가운데는 주옥같은 표현이 적지 않았다. 본문보다 임팩트가 강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무대 뒤에서 가식 없이 만나는 경험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리고 결과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심지어는 자주 교류하는 작가의 댓글 멘트에서 영감을 받아 새 글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댓글의 새로운 발견과 활용을 알게 되자 또 다른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깊이 있는 교류를 위해서는 구독자가 더 늘어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전례 없는 부탁 글을 올렸다. 더 이상의 구독 신청을 삼가 달라고 했다. 그냥 가끔씩 편하게 방문해서 읽고 흔적을 남겨주면 답방으로 인사를 드리겠다고 공지했다. 상당히 오해할 수도 있는 언급이다. 그럼에도 한두 분씩 구독 신청을 해온다. 아직 그 공지를 읽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저기요, 더 이상 구독을 받지 않습니다> 편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주로 시와 에세이를 써서 올린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글과 어울리게끔 매칭 시켜보기도 한다. 때로는 사진이 좀 더 감성 전달에 효과적이기도 하다. 글쓰기로 인해 사진 찍는 기술까지 느는 듯하다. 긍정적인 간접효과이다.
입문 초기와는 달리 글의 완성도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욕심을 내려놓은 덕이다.
그래서 미완성본을 다듬느라 여러 날을 보내는 대신 대충 엮어서 일단 올리고 있다. 그리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며 수정을 한다. 그러므로 글을 처음 읽는 분은 어색한 구석이 여기저기 산재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지막 손님이 대하는 글이야말로 최종본인 셈이다. 브런치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러한 끝없는 수정 기능이다.
그동안 중간중간에 브런치 공모전과 이벤트도 있었다. 그러나 잠시 가졌던 의욕을 가라앉히니 마음 편하게 글을 쓰게 되었다. 특별히 장르나 주제를 한정하지 않으니 큰 스트레스가 없다. 대신에 일정한 카테고리로 글들이 모아지지 않으니 출판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하지만 어떠랴. 힘주지 않아야 오래가는 법이 아닌가. 보다 여유롭게 긴 행복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댓글 등으로 교류하는 고마운 작가분들이 많지만 늘 변함없는 류완 작가님께 감사를 보낸다. 그는 이곳에서 전우애를 느끼게 해 주는 분이다. 더불어 함께 해줌으로써 영감을 극대화시켜주는 창작자이다.
또한 용기를 북돋아주는 고마운 친구 광이와 세세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작은 누님과 웅이, 선희 부부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나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