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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May 14. 2021

술의 몸짓 1


한잔 술이 몸짓하네


소주잔에 차가운 술이 담기면

공중을 흐르던 물살들 미세한 이슬로 엉기고

이슬은   물방울을 불러내어 단단 잔을 에워싸 유리 밖으로 깊은 반불투명막을 빙둘러쳐서

분주한 손길의 낙인을 지워내곤 하는 습기로

 너머의 얼굴과 풍경을 일그러뜨리


더운 계절을 거스리는 차가운 표정으로 

떠오르는 모든 기억과 상상을 뒤섞어 뭉개버리는


테이블 위의 날 땅콩과 비틀린 오징어와 칼질당한 과일과 토막토막 끊어진 하루 일과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 의미 없는 말들과 기약할 수 없는 가벼운 약속들이 검은 비닐봉지처럼 둥둥 떠다니는


가스불 위에서 먹태 타는 냄새로 매캐한 선술집의 낯선 인물들의 가뿐 숨으로 물속에서처럼 가슴이 내리 눌리는


또 하루의 배반을 견디느라 발아래 술병을 쌓고 거울을 보며 한숨짓다 벽에 걸린 출처 모를 한 줄 글귀로 뼈 속의 허기를 달래 보는 


생각의 칼날들로 온갖 살점과 영혼이 낱낱이 흩어져 부모와 자식이 따로 없는 바닷가에서 순식간에 산 정상에 이르러 다시 골짜기 아래로 몸을 던지 


아비가 아들 되고 할미가 손녀 되는 그 생경한 기록보다 아주 멀리 흘러가서 후회가 아닌 다행의 기억으로 내생의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또 더 큰 욕망으로 끝없이 시스템의 파괴를 시도하며 그 순리를 역행하다가 마침내 그 모든 것이 우주에 파도치는 형상으로 그렇게 물결치며 해변을 씻고 마을을 씻고 산머리를 씻고 높은 구름을 씻고 부서져내리는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을 씻어내고 꿈속의 신령들과 짐승들이 되살아나 화조화를 짓영모도의 풍경으로 피어나는 


저녁의 석양과 아침의 해돋이가 교차하며 색채 로운 구름으로 가여운 사람들의 얼굴과 얼굴을 비추어 기어이 드러내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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