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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Dec 14. 2021

읽지 않고 시 쓰기


"넌 도통 읽지도 않고 시랍시고 뭘 쓰냐?"

어이없다는 투로 친구가 시비를 건다.

"아니 살아온 날들이 시 아냐?"

이렇게 대답해도 현저히 낮은 독서량을 생각하면 궁색해진다.

"그게 바로 단조로운 표현을 반복하는 비결이야"

라고 말도 안 되는 조크를 던진다.


가끔씩 그는 서정적 느낌이 쫙 흐르는 시인들의 글귀를 보내온다. 그때마다 많이 듣고 보는 일의  실감한다.


별마당 도서관에는 도서로 벽면이 가득하다. 시집 코너를 찾아가니 위에서 아래로 또 좌우로 14칸이나 된다. 거의 모두 기증된 도서들이기에 무료로 앉아서 열람할 수 있다.


쓱 훑어보고는 창비시선 중 네 권을 뽑아 들었다.

한 손에 딱 잡히는 범위 내의 시집이니 무작위인 셈이다.

그중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를 펴 들었다.


한 시인의 대표 시 모음집이 아닌 이상 대개는 하나의 시집에서 두루 원만하고 감동적이며 오래 회자될만한 시는 한두 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들은 시기별로 시를 묶어내는데 역시 주제와 소재와 이야기 톤이 작품마다 비슷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엮어가던 중 그 모든 것이 집약된 하나의 시가 탄생하면 그 시집의 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만의 눈으로 본 최고의 시를 만나보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야만 한다.

이때 평론가들의 평은 참고할 정도로만 생각하면 된다. 때로 그들의 시평은 정작 시보다도 현란하고 복잡해서 도통 감상에는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위 시는 비교적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메시지가 선명히 드러난다.

겨울과 눈 내리는 밤과 소주와 혼자 그리고   외딴 집.

구구절절했던 다른 시들보다도 시인 자신이 오롯이 투영된 느낌의 시이다.

그러나 나만의 외딴 집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수 있다. 그렇게 시인이란 꿈속을 사는 이들이다.

사실 외딴 집이란 공간은 시인 이전에 모든 숨 쉬는 존재들이 필요로 하는 곳이리라.

제목에서 다소 상투적인 느낌이 들지만 그 상투함을 새롭게 각성시키는 테크닉이 시인의 무기인 것이다.



한차례 시뻘건 홍수가 지나간 뒤 나무에 걸린 비닐 천의 펄럭임.

그리고 격류의 흐름대로 비스듬히 누운 잡목들.

그들이 한사코 손을 가리킴은 이미 거처를 달리 한 많은 동료들을 향한 것이리라.

그리하여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제목이 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목의 무게가 지나치게 큰 느낌이다.

비닐천은 장례식의 만장, 혹은 이별의 손수건 내지는 살풀이 천으로도 풀어낼 수 있겠다.



시집의 표지를 장식하는 시가 반드시 대표적인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대략은 그러한 경우가 많다.


너와 나, 그 사이의 강.

그러나 시인은 강을 이별과 갈라섬의 이미지로 사용하지 않고 연결을 위한 가교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 강은 결국 울음의 소산이다.

너에게 닿으려 하는 화자에게

물소리와 흰 새떼와 눈발이 가세하여

눈물로 길을 내게 만든다.

그 울음 강은 결국 너에게로 흐를 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되지 못할 것이다.

문득 고구려 유리왕한시 황조가가 생각난다.



여러 시 중 이 세 편이 간략하면서도 이미지가 분명하다. 그리고 서정적인 가락이 살아 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이니 읽는 분들의 다른 견해도 있겠다.



* 이 한 권(이 시집은 2004년도에 초판되어 2020년까지 21쇄를 발행했다)을 읽고 감상을 올리다 보니 기진맥진해진다.

코로나 2차 접종에 독감 예방접종까지 한 탓인지 기력이 딸리는 느낌이다.

아쉽게도 나머지 다른 시인들의 시집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서가로 원위치시키고 말았다.


이제 나만의 외딴 집으로 향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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