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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an 14. 2022

박정희 화백 전시회 - 인사동, 2022.01

<행복한 동행>과 <축복>


지난 주말에는 인사동 문화의 거리를 배회했다. 이삼백 미터에 이르는 거리 양쪽으로는 전통 찻집, 갤러리 전시관, 기념품점, 액세서리샵, 한식당들이 작은 골목골목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얼굴의 서양인 음악가가 길모퉁이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다른 이는 기르는 개를 데리고 나와 전자첼로를 켠다. 그들은 귀에 익은 클래식 소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가곡이나 대중가요도 가끔씩 연주한다.

옹기종기 모여 서서 음악을 감상하는 젊은 연인들로 화사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정작 악기 케이스에 지폐를 넣고 가는 이들은 가족 나들이 나온 꼬마이거나 나이 든 어른들이다.


예전에 한 젊은이가 그 거리에서 종종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는데 언젠가부터 보이질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그와 약 30분간 대화를 나누다가 거리의 예술가가 가진 고민을 알게 되었다.

한 방송사의 경연 섭외까지 받았지만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언제까지 노래를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가 애잔하게 불렀던 김광석의 노래들.

얼마 전 국민가수 1위에 오른 이도 무명의 포크송 가수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생활고를 견뎌왔다고 했다.

그 청년도 힘들겠지만 어디에선가 꿈을 계속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


문화의 거리 중간쯤 쌈지길 복합건물 반대쪽으로 골목길이 하나 놓여 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보면 작은 갤러리들과 오래된 한의원과 전통 종이집과 붉은 벽돌의 피자집과 제칠일안식일 교회를 만나게 된다. 골목을 빠져나가면 큰길 너머에 조계종의 본산인 조계사와 불교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그곳에 위치한 갤러리들 중 한 곳의 쇼윈도에 따뜻한 정감이 드는 작품이 두 점 걸려 있었다.

갤러리 아리수.

아리수는 한강의 멋진 옛 이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과가 놓여 있는 테이블에 작은 중절모를 쓴 우아한 중년의 여인이 앉아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한 눈에도 작가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조용히 관람하며 사진을 찍고 나니 그녀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연륜이 느껴지는 깊은 눈매는 적지 않은 시간을 작업해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작가는 수년 동안 <행복한 동행><축복>을 주제로 작품들을 전국 여러 곳에서 전시해왔다고 했다.

그녀의 작품은 따뜻한 느낌으로 마음의 생채기를 보듬어주는 듯했다.


행복한 동행. 캔버스에 유화.

붉은 태양, 구름, 우주에 가득한 별.

그리고 마을과 사람과 숲과 호수와 수레.

행복을 위한 모든 요소가 꿈처럼 가득한 그림.

이만하면 한국의 샤갈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모네의 수련보다도 아름답다.

그리고 강렬하다.

그런데 한없이 평화롭다.

동행하는 오리  쌍숨은 듯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갤러리 외부 쇼윈도우에 걸린 작품이다.

아래 별모양의 꽃은 도라지꽃이 아닐까?

마음의 고향으로 향하는.

그 곳에서 유유자적하는 물새떼.

누가 박화백만큼 동행의 의미를 건져낼 수 있을까?


바다, 강, 호수.

그 물결 위로 번지는 빛의 향연.

그리고 그림자처럼 동화되어 마주보는 물새들.

물은 모든 생명의 고향이고 빛은 생명 자체이다.



아래는 <축복> 연작이다.

축복. 캔버스에 유화.


<행복한 동행><축복> 연작들은 따로 부제가 붙어있지 않다. 그래서 구체적인 스토리를 연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주제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감싸안는 느낌이 다.


- 작가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지금의 연배까지 살아오셨으면 여러 가지 일을 겪으셨을 텐데요. 이별, 실패, 질병 등의 인생의 힘든 일들도 경험하셨다면 어떻게 이런 행복과 축복으로 가득한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되었나요?

- 좋은 일만 많아서 행복한 것만이 아닌 행복하려는 의지와 노력의 결과로 생각하시면 되겠어요.


작품속의 깊고 가득한 색의 반짝임은 긴 시간에 걸쳐 길어 올린 치유의 성수와도 같다. 

혹은 오욕을 벗어난 티없는 동심의 세계와도 같다.

문득 외투속 주머니에 들어있던 우울함을 그림 앞에 내려놓고 싶어진다.


일상의 행복조차 의심하는 메마른 가슴의 한 남자.

마침내 그여류 화백의 따뜻한 붓질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갤러리를 빠져나왔다.


작품 앞에 선 박정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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