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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Apr 02. 2022

봄의 표정


어제와 오늘 중곡동 아차산과 삼성동 봉은사 주변을 돌아보니 봄빛이 완연합니다. 천천히 걸으니 무거운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정치인들의 아집과 비상식으로 빚어지는 웃지 못할 일들이 뉴스로 전파를 탑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운이 감돌고 이미 전화를 입어 신음에 고통받는 이들도 많습니다.


숲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새삼 인간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갖가지 혼란이 벌어지는 현실 속에서도 계절은 겨울 코트를 벗고 화사한 봄옷을 입었습니다.

따뜻한 햇살은 마음의 작은 생채기들을 어루만져 줍니다. 마치 어머니의 손길처럼요.


상처는 여러 곳에서 생겨납니다.

스스로의 언행으로 빚어진 후회와 낙담.

타인의 멸시나 비난으로 생긴 두려움과 트라우마.

공동체의 건전한 의사 결정이 결여되거나 합리적인 시스템이 부재하여 일어나는 재난과 참극.


덕지덕지 몸에 새겨진 상흔들을 걸음마다 떨궈내며 오늘 또 나직한 숲 언덕에 빚지고 말았습니다.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이름의 생명으로 가득한 숲.

그래도 숲은 아무 탓하지 않고 작은 오솔길을 기꺼이 내어줍니다.


발걸음마다 스쳐 지나가는 민들레, 냉이, 애기똥풀, 제비꽃, 구절초, 조릿대, 수많은 새싹들.


멀리 연초록 작은 잎으로 장식한 능수버들이, 군락으로 피어나는 샛노란 개나리꽃이,

소나무 숲 속에 부끄러이 피어난 진달래가,

작은 꽃에 꿀을 쟁겨놓고 벌을 부르는 산수유가,

시간을 단단히 뭉쳐낸 가지 끝에서 매화가,

동산에 우뚝 선 귀부인 같은 백목련이,

힘든 서울살이 끝에 빨간 볼 내민 동백꽃이,

허리춤에 한 자락 솟아나는 새 솔이,

골짜기 끝에서 들리는 딱따구리의 부릿소리가,

봉우리 위로 나는 산까마귀의 울음이,

말간 얼굴로 햇살을 튕겨내는 계곡물이

호젓한 산길을 동행하는 친구들입니다.


봄은 나들이 나온 엄마와 아이의 손을 잡아 이끕니다. 사람도 꽃을 닮았습니다.

봄은 이렇듯 온화하게 모든 이들을 대합니다.


(어둑할 즈음 친구와 함께 산책하다 찍은 사진의 매화가 남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고려말 문인 이조년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의 느낌도 이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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