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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Apr 04. 2022

휴관일 전경


오늘따라 사람들이 매표소 옆 정자 난간에 빼곡히 앉아 있다.

정원 한쪽의 긴 나무 의자에도 희끗한 머리카락의 중년들과 일회용 커피잔을 손에 든 젊은이들이 섞여 앉는다.

지하 주차장 입구 그늘에도 서너 명의 사내가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간혹 창구가 가려진 매표소 안을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는 이도 있고 능 입구 닫힌 철문을 확인하는 이도 있다.

야외라서일까?

몇 사람은 마스크를 벗은 얼굴이.


철책이라 해도 창살 너머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숲.

소나무와 잡목들 뒤로 만개한 백목련이 인사하듯 가지를 흔든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역광으로 빛나는 솔침들.

오래된 상념처럼 가지마다 지난해의 방울들이 검게 변색되어 매달려 있.


근처가 직장인듯한 한 무리의 청년들이 서성이다 돌아가자 한 남녀 커플이 공원 입구에 들어선다.

벤치에 앉은 어떤 이는 정면으로 햇볕을 받아내고

또 다른 이는 뒤돌아앉아 겨우내 서늘했을 등을 한동안 데워낸다.


사람 키 높이의 철 담장.

새들은 가벼이 그 위로 넘나들고

바람은 창살 사이로 유유히 물결친.

찔레꽃도 담장 너머로 파란 잎 돋은 긴 가지를 뻗어 올렸다.


업무 과중을 호소하는 목소리.

투자금의 손실을 걱정하는 이야기.

이직을 고민하는 나직한 전화 통화.

사람들의 사연들은 정자 안을 이리저리 떠돌다 바람결에 흩어져간.


점심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비어 가는 자리.

어느덧 그늘 속에 앉은 두 무릎에 조금씩 기가 스며든다.

슬며시 밝은 자리로 옮겨 두 다리에 따끈따끈한 햇볕을 쬐여 본다.

그러고 보니 벤치 끝에는 한 여인이 양말을 벗고 햇살에 족욕을 한다.


휴관일의 숲은

담장 아래의 야생화와

서로를 쫓아 나는 새들과

봄의 열기를 퍼뜨리는 햇살과

나무 등걸을 쓰다듬고 지나는 바람으로

마냥 여유롭다.




* 선정릉 공원의 월요일 정오는 휴관인 줄 알고 찾는 시니어들과 모처럼 산책으로 찾아왔다가 난감해하는 젊은이들로 잠시 붐빈다.

공원 입구 앞의 정자는 비록 작지만 앞뒤로 앉을 자리가 꽤 넓다. 여러 사람들이 섞여 앉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서로의 이야기도 엿듣게 된다.

역시 나만의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몇 줄 메모를 마치고 일어날 즈음, 걸음마를 막 뗀 아이와 엄마가 나타났다.

그냥 가면 손해 아닌가.

아가야, 안녕?

잠시 쳐다보던 아기가 웃으며 뒤뚱 걸음을 다.

이를 내려다보던 버드나무가 반갑게  팔을 흔들었 하늘의 흰구름도 환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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