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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May 07. 2022

산성 가는 길


처음부터 산성에 오르려 했던 것은 아니다.

아침밥을 늦게 먹은 뒤라 한두 시간 정도만 산책할 생각이었다.

증조부모님 묘소가 있는 앞산 등산로를 택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 뒤를 따라 걷던 숲길.

그동안 길의 모습과 방향이 조금씩 바뀌었다. 길 주위의 소나무들은 너무 높아져서 그 키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위로 곧게 쭉 뻗은 형태가 우리네 전통 수종과는 달랐다. 작은 푯말이 보였다. 리기타 소나무. 아마도 일본 품종인 듯했다.

산림녹화 운동이 한참이었던 멀지 않은 과거.

그때에는 우리의 고유한 붉은 소나무가 선택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휘어지고 늘어지는 운치 대신 곧은 목재로써의 실용성을 우선시했던 시절이었다.

그런저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좀 더 걸어 들어가자 특유의 소나무향이 은은하게 주변을 감돌았다. 땅 위에는 수많은 솔침들이 쌓여 쿠션처럼 부드럽게 밟혔다.


등산로 초입의 갈림길.

평탄하게 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트레킹길과 정상으로 향하는 산성길 표지판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릎 건강을 생각하면 당연히 트레킹길. 중간중간에 벤치도 놓여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날씨가 좋았다. 파란 하늘이 보였으니 말이다.

사실 멀리서나마 늘 보이는 산성이기에 굳이 오를 필요를 못 느꼈다. 그러다 보니 근 10년이 넘도록 산 정상을 오른 적이 없었다.


침엽수림 사이로 난 작은 산길.

나뭇가지 사이로 흘러든 햇살이 바닥에 무늬를 만들며 스며들었다. 바람이 불자 그 빛 그림자가 출렁거렸다. 멀리 상수리나무들은 연둣빛 이파리를 꺼내 들고 손을 자주 흔들었다.

그런데 왼골짜기의 소나무 숲에만 뿌옇게 연무가 끼어있었다.

무슨 일일까?

가만히 보니 바람이 송화가루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슬로우 모션으로 스크린 전체를 가로지르는 꽃가루의 향연.


숨 가쁘게 오르던 경사진 옛 돌길.

그 흔적 옆으로 깨끗한 방부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스틱을 짚어가며 오르다 보니 땀이 조금씩 배어났다. 중간중간 난간에 기대어 산 아래를 조망하여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산을 오르는 것.

삶을 살아가는 것.

뚜렷한 당위성을 얻기는 힘들지만 숲에서는 적어도 강박증이 희석된다.


씨앗을 흩뿌리는 바람

한적한 곳에서도 구김 없이 피어나는

요정처럼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

정오의 햇살로 혈류를 높이는 숲

그곳의 고동소리는 편안하고 안전하다.


이름조차 낭만적인 설성.

오래된 축대를 다시 쌓아 성벽이 제 모습을 갖추었다. 그 위로 산뜻하게 잔디 덮인 산책로가 새로 생겨났다.

난간도 없는 성벽가에 서면 십 수년 된 석축 아래 나무들과 키가 같아진다. 그 높은 가지 끝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그 너머로는 아스라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고 핏줄 같은 도로들은 사방으로 굽이치며 어진다.


성벽 끝의 지대가 높은 곳에는 이층 누각이 단아하게 서 있었다.

누각 아래 비탈에는 소나무들이 노란 꽃대를 잔뜩 피워올렸다. 한바탕 바람이 불자 나무들이 일제히 황금천을 들어올렸고 전경 가득 송화 가루 무리가 춤을 추며 날아올랐다. 꽃가루는 누각 난간에, 모자 위에, 핸드폰 화면에 점점이 내려 앉았다.

아, 그 누가 소나무를 꽃 없는 나무라 여겼던가...


산성 안에는 봉황의 알을 닮은 큰 바위 두 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시원하게 뻗어 올라간 수십 그루의 낙엽송 군락이 둥지처럼 바위를 품고 있다.

그 알바위에 손을 대자 의외로 따뜻했다. 햇살이 머물렀기 때문이었을까. 다른 등산객들이 그 바위 아래 조그만 돌탑을 쌓아 놓았다.

그들의 소망도 내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산 나비가 너울너울 춤추고 날벌레가 무리 짓는 하늘. 더 높게는 구름 아래로 솔개가 맴돌았다.

휴일 정오인데도 산 위는 아주 한적했다.

아주 가끔 정자 뒤 그늘 길로 등산객이 한둘 지나갔다.  이도 나도 눈길을 마주치지 않고 서로 인기척만 느낄 뿐이었다.

종종 나타난다는 고라니는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산소가에 얕은 구덩이를 몇 개 판 녀석은 멧돼지임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등산 중에 멧돼지를 만나면?

아, 어디선가 대처요령을 열심히 숙지하던 희미한  기억뿐, 그 내용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흠... 등을 보이지 말고 천천히 뒷걸음질 하기?

아마도 현실에서는 놀라서 얼어붙거나 뛰어 도망가기 십상이겠다. 그 후에는...

너무 생각이 많아지면 피곤해지는 법. 그래도 저녁에는 대처법을 검색해봐야겠다.


바람 붓이 송화가루로 금색 칠하는 오월의 산성.

이젠 그 그림 속 길을 찾아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오솔길이 여러 갈래로 이어져 있으니 혹시 다른 길로 가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염려가 슬며시 생겨났다.




*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내려오려고 했으나 결국은 다른 길로 돌아내려오고 말았다. 산길은 모두 그 길이 그 길 같았다. 덕분에 시골 오일장 중간 골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장터 한복판에 펼쳐진 천막. 즐겨 먹던 장터국밥. 이번에는 선지 해장국이었다. 잠시 발길을 멈추었으나 참기로 했다. 지난번에는 먹고 매웠던 탓인지 설사를 하고 말았다. 거리두기도 완화된 작금, 한 천막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는 이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말린 해산물을 늘어놓은 가판대 앞에 멈춰 섰다.

어머니의 쫀득한 오징어와 꼴뚜기 새끼 조림.

추억이 소환되었지만 값에 비해 양이 너무 적었다.

그저 만만한 노가리라도 건져가야 덜 허전할 것 같았다.

반 근에 육천 원을 지불했다.

물어보니 내가 산 것은 대구 새끼라고 했다.

아무렴, 비슷해 보이는 세 가지 중 제일 예쁜 놈으로 샀으니 후회는 없어야겠다.


6천원으로 건져올린 바다의 속살. 사실 어린 것들이라 애잔한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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