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형 May 10. 2022

친구의 안부


종종 저녁 늦은 시간에 전화로 안부를 전하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 사실 대화 내용의 8할은 그 자신의 안부가 아니라 나의 일상과 건강에 대한 염려이다. 그의 가족이 여러 명이라 얼마든지 대화거리가 많지만 늘 이야기의 초점은 나에 관한 것이다. 그만큼 그에게는 내 생활이 걱정스럽고 못 미더운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내면은 무사태평보다는 불안과 초조함이 차지한 자리가 더 크다.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불안을 공유하지만 나의 감각은 이를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가끔 일상의 걱정을 내려놓고 사는 듯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신기한 느낌이 든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긴장이 완화되고 심리적 안도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지적 성취나 사회적 성공과는 별개로 그와는 정서적 절친이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에너지의 상호 보완 작용이 존재한다. 이를 남녀 사이에서는 궁합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나는 친구 차에 동승하여 이천의 소문난 쌀밥집을 향했다. 분명 그가 감탄한 식탁일 것이었다. 맛있는 음식으로 영양을 챙겨주려 여러 번 전화를 걸어온 그였다. 어릴 적 먹었던 기름진 가마솥밥일까? 일일이 음식 재료에 정성스레 손이 가던 시대는 지났으니 그런 맛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기분으로 가슴 따뜻하게 밥상을 맞아야 했다. 그것이 나란 사람을 배려하는 그의 마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안내한 식당은 빈자리가 드물었다. 휴일이라서인지 가족 단위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유독 가족 테이블의 연로한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아쉬움이 들었다.

식탁에는 샐러드, 나물, 김치, 보쌈수육, 생선 튀김, 간장게장, 고추장게장, 해파리냉채, 잡채, 된장찌개, 돌솥밥 등이 올라왔다. 아마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은 모두 등장한 듯했다. 이천쌀밥 정식이었는데 서울의 식당이라면 아마 두 세 배 가격이었을 것이다. 먹다 보니 둘 다 대식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절반 정도나 남았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생겼다.  


친구가 게장 두 접시를 내 앞으로 쓱 밀어놓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

- 난 말이야, 이런 비린 것은 안 먹어~.

- 응? 게장이 얼마나 별미인데...

사실 나도 먹긴 하지만 즐기진 않는다. 누가 생선회를 사겠다고 해도 별로 반갑지 않다. 횟집에서는 각종 반찬에 젓가락이 더 많이 간다. 이런 모습은 동료들의 타박 대상이 되곤 한다.

- 그럼, 각시는?

- 우린 둘 다  안 먹어.

- 그래? 아하하. 이런, 참.

 

친구는 친화력이 있고 꽤 사교적이어서 먹는 일에도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음식을 가리는 편이었다. 그도 회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했다. 식사 끝 무렵에 보니 나물 반찬과 된장찌개가 가장 많이 줄어 있었다. 사실 우린 둘 다 나물과 청국장과 동태찌개를 좋아하는 내륙 출신이다. 평소 회식도 메뉴를 미리 체크하고 참석 여부를 고민하는데 그 친구는 음식 가림이 나보다 심했다. 어쨌든 그것도 못 먹냐고 놀릴 거리가 생겼다.


고향의 정서에는 음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다. 앞에 놓인 평범한 음식이 함께 나눈 추억을 소환하고 세상 걱정 모르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또한 문득문득 작고하신 부모를 기리게 되는 것도 어릴 적 먹었던 음식으로 기인할 때가 많다. 일상 속에서 체험하는 먹거리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강력해서 때로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옛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그러자 그는 또 보여줄 곳이 있다고 어서 일어서라고 재촉하였다. 그의 표정과 말투는 어린 동생을 돌보듯 세심하고 따뜻했다. 그의 환대에 마음의 빗장이 풀어지고 나자 어떤 얘기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오늘 다시 친구의 초대를 받아 근사한 시간을 보냈다. 직접 로스팅한 근 6키로에 가까운 최상급 원두를 안겨주었고 청목에서 굴비 정식을 사 주었다. 미안해하는 나에게 나중에 책내서 인세 나오면 밥을 사라고 했다. 그 요원한 일을...

고마운 마음을 기록하려다보니 예전에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던 글이 떠올랐다.

먼저 그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것이 순서일것 같다.


늦은 밤의 알람으로 그는 숙면을 방해받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다.

- 고맙네 그려, 푹 주무시게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