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장 신작로엔 양쪽으로 키 큰 가로수들이 쭉 서 있었다.
느티나무는 옆으로 넓게 가지를 뻗어 시원한 그늘막을 만들지만 미루나무는 가지를 위로만 뻗어 올렸다.
신작로를 걸어 학교에 오던 친구들은 여름이면 미루나무에 붙어있던 단단한 곤충들을 잡아 왔다.
(주로 참나무의 썩은 부위가 유충과 성충들의 보금자리다)
그 녀석들은 제법 컸으며 겉은 흑단처럼 검고 윤기가 흘렀다. 또한 나무에 매달리기 좋은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커다란 한쌍의 집게를 달고 있었다.
녀석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미끄러운 듯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별달리 깨무는 입도 보이질 않아 비교적 안심하고 만져보곤 했다. 그 벌레들은 집게로 무는 힘이 좋아서 연필이나 고무지우개도 번쩍 들어 올렸다.
친구들은 녀석들의 배를 긁거나 머리 위의 뿔을 툭툭 쳐서 자극을 가했다. 그리고 서로의 벌레로 싸움을 붙이곤 했는데 힘세거나 기술 좋은 녀석이 상대방을 뒤집어버렸다. 한 번 뒤집어진 녀석은 한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허공에 다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꼬마들은 쉬는 시간에 정신없이 경기를 구경하다가 수업종이 울리면 각기 흩어졌고 집게벌레들은 책상 아래 필통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나 가끔씩 힘센 녀석은 얇은 플라스틱 필통 뚜껑을 밀어젖히고 나와선 교실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면 선생님의 눈을 피해 재빨리 그 녀석을 회수해야 했다.
가끔은 장난기 많은 친구가 앞좌석 친구의 옆구리살에 단단한 집게를 슬쩍 접촉시키곤 했다.
두 뿔이 오그라드는 즉시 비명이 터져나왔고 곤충 주인은 칠판 앞으로 불려나와 벌을 받았다.
그때는 집게벌레가 나무에 매달려 기어 다니기만 하는 곤충인 줄 알았다. 훗날 그 단단하고 빛나는 등 껍질 속에 접었다 펼 수 있는 부드러운 날개가 숨어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그 날갯짓을 거의 보진 못했다. 무거운 몸무게 탓에 비행거리가 매우 짧았다라는 기억이 어렴풋이 날 뿐이다.
어린 소년들끼리 이름 붙인 집게벌레는 사실 다름 아닌 사슴벌레였다. 사실 집게보다는 늠름한 수사슴의 뿔이 연상되기에 사슴벌레가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암컷 사슴벌레도 머리에 뿔이 있지만 숫컷에 비해서는 퍽 짧은 편이다.
집게벌레는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작고 긴 형태를 지닌 다른 곤충의 정식 명칭이다.
요즘 곤충을 보기 힘든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슴벌레 성체나 애벌레를 주문하기도 한다. 그리고 먹이와 집도 구매할 수 있는데 먹이는 일명 젤리라고 하는 유동식이 작은 컵에 담겨 있다. 거실의 한쪽에 놓인 작은 플라스틱 통이지만 그 속에서 큰 뿔로 바닥의 흙을 들썩이는 모습은 어른들에게도 흥미롭다.
높은 습도로 무덥게만 느껴지는 한여름의 오후.
그 많던 곤충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가까운 공원을 배회하며 그 단단한 갑옷을 입었던 녀석들을 찾아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느덧 보호막조차 사라진듯한 생의 한 지점.
사슴벌레의 더딘 그러나 육중한 몸짓과 힘찬 전진이 몹시 그리운 것이다.
* 환경이 달라지면서 세대 간 살아온 정서는 자연히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미 그 현장을 재현할 수 없는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별 의미 없게도 보인다.
그러나 그나마 그 기록이라도 없으면 정말 사라진 세대가 될 수도 있겠다.
이는 나만의 우려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친구들의 도시락 반찬으로 가끔씩 등장하던 고소한 메뚜기볶음.
시절 따라 토속 음식으로, 엽기 식품으로, 다시 무공해 고단백 식품으로 그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 표지 사진 : 다음백과 - 사슴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