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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un 26. 2022

아폴론의 전령사

임윤찬, 제16회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우승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음악의 신은 사냥에도 능했던 아폴론이다. 그는 사냥에서 휴식을 취할 때는 활에 줄을 매어 음악을 연주했다. 그 낭만의 끝판왕 신이 연주했던 악기가 하프의 원형이다. 지금도 신화와 관련된 회화에는 작은 하프가 단골로 등장한다.


피아노는 손으로 줄을 퉁기는 하프나 활로 줄을 마찰하는 바이올린과는 다소 다른 현악기다.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드려 해머가 줄을 때려야만 비로소 소리가 나는 타현악기인 것이다.


며칠 전에 피아니스트 임윤찬(18. 한국예술종합학교)이 제16회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했다. 임윤찬은 6명이 오른 결선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D단조를 연주하며 월등한 기량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10만 달러에 이르는 상금과 음반 제작과 미국 투어 후원을 받는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2번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덜 알려진 협주곡 3번은 스케일이 크고 특유의 서정과 화려한 테크닉이 돋보이는 특징이 있다. 임윤찬의 신들린 듯한 협주곡 3번 연주는 청중들의 엄청난 환호를 이끌어냈다)

우승자 임윤찬(가운데)과 2위 러시아의 안나 지니어스헨 (왼쪽)과 3위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리초니(오른쪽)의 수상 기념 사진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세계 3대 음악 경연대회로 꼽히는 쇼팽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버금가는 북미의 대표적인 피아노 콩쿠르다. 이 대회는 1958년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밴 클라이번을 기념하며 4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2017년에 개최된 직전 대회에서는 우리나라의 선우예권이 우승했다. 이번에 임윤찬이 우승하면서 한국 피아니스트가 대회를 연속으로 석권하는 기록을 세웠다. 동시에 임윤찬은 세계 클래식 팬 3만 명이 투표한 <청중상>과 현대곡을 가장 잘 연주한 피아니스트에게 주는 <비벌리테일러스미스 어워드>까지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https://youtu.be/DPJL488cfRw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임윤찬의 결선 실황

이 대회의 심사위원장이자 지휘자였던 마린 올숍은 연주가 끝난 뒤 눈물을 훔치는듯한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피아노를 대하는 임윤찬의 표정은 비교적 무심해 보인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면 그는 조금의 두려움도, 주저함도, 초조함도 보이지 않는다.

가녀린 두 손은 지휘자의 눈빛을 따라 처럼 건반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머리와 어깨의 동작은 무용수의 움직임보다 황홀하다.

마치 신의 사명을 받은 듯 처음부터 끝까지 선율의 날 위에서 숨가쁘게 달려간다.

피아노와 혼연일체가 된 소년은 깊은 울림과 몸짓으로 이미 대가의 길 위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라흐마니노프는 사후 한 동양인 젊은이에 의해 긴 기립박수를 받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을 예상이나 했을까?


임윤찬의 담담하고 깊이 있는 얼굴에는 응축된 에너지가 가득 담겨 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딜레마를 겪어 나가야 한다.

다가올 수많은 연주 스케줄 또한 자칫 자유로운 예술혼에 족쇄가 될 수도 있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박수받는 순간은 짧다.

무대를 위해 쏟아부은 수많은 각고의 시간들.

지금까지는 임윤찬 연주자가 한예종의 손민수 교수의 지도 아래 묵묵히 외길을 걸어왔다.

이제 그는 대중 앞에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드러나는 전문 연주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수행자의 시간과도 다를 바 없는 연주자의 삶.

그 길에서 긴 호흡으로 한 인간의 삶을 꾸밈없이 기록해주기를 소망해본다.


임윤찬의 이번 콩쿠르 우승은 국내 지도만으로도 충분히 세계적 수준의 연주자를 길러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는 우리나라 서양 클래식계의 놀라운 이정표다.

앞에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신의 전령사다운 시크한 표정으로 서 있다.


조성진의 쇼팽콩쿠르 우승 이후 10년만에 세계적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임윤찬. 현재 나이를 고려하면 그의 연주 기량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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