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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ul 03. 2022

여름날의 칼국수


한여름이면 대청마루에 큰 포장천이 깔렸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밀가루 반죽덩어리가 천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소년 키 만한 갈색 홍두깨도 그 옆에 놓였다

양 소매를 단 접어 올린 어머니는 둥근 나무 막대기로 반죽을 천천히 밀어냈다

촉촉한 밀덩어리는 자주 막대에 들러붙곤 했다

그래서 긴 홍두깨는 뽀얗게 밀가루 화장을 하고 연신 반죽 위를 굴러 다녔다

봉긋 솟았던 반죽은 막대가 다녀간 만큼 낮아졌다

반죽은 큰 쟁반만해졌다가 다시 여인네 치마처럼 넓게 펼쳐졌다

보는 이도 없건만 어머니의 두 손은 밤하늘의 달처럼 크고 둥근 모양으로 곱게 형태를 잡아갔다

적당한 두께로 시름을 내려놓는 시간

생각으로 지어낸 모든 것들이 가라앉고 찰진 앙금으로만 남는 순간이기도 했다


담금질이 끝나면 한쪽에서부터 손가락 세 마디 넓이로 얇아진 반죽을 겹겹이 접어 올렸다

그다음엔 가지런해진 반죽을 나무도마 위에 올려 부엌 칼로 채 썰었다

한 줄씩 떨어져 나온 반죽은 채반 위에서 훌훌 몸을 털었고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바닥에 겹쳐 누웠다

썰어낸 반죽은 시간이 지나고나면 슬픔처럼 경계도 없이 서로 달라붙었다

그러 전에 다시 한번 마른 밀가루를 흩뿌려야 했

가루 가락들은 각기 흩어져 더는 함께 뭉쳐 수가 없었다


무쇠솥에 뜨거운 물이 검게 끓어오르면 반죽 가락들이 춤추듯 입수하고 돌담장에 매달렸던 동그란 애호박도 채 썰어져 덩달아 뜨거운 수증기 속으로 사라졌다

마당 한가운데로 들마루를 옮겨놓고 맑은 듯 걸쭉 칼국수를 큰 냄비로 나르는 오후

한낮의 열기와 뜨거운 국수가닥이 서로 견주는 무더운 여름날의 밥상이 차려졌다

고명으론 잘게  시큼한 김치가 제격이었고 흔히는 파다진 마늘 든 간장 양념만으로도 족했다


여기저기서 미친 듯 울어 젖히는 매미들과 육수 위로 머리를 내밀고 동그랗게 쳐다보는 멸치눈

종종 그것들을 견뎌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만 이들도 빨갛게 땀띠 돋던 무더운 여름이 품은 풍경의 일부였다




* 폭우가 지나가면 드러나는 땅속 유적처럼

어느 특정한 때가 되면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다.

열대야를 맞은 이 여름밤 마찬가지다.

때로는 각색되기도 하지만 제각기 떠오르는 풍경이 있어 지난 시간들이 삭막하지 않은 것이리라.

(소재에 어울리는 마땅한 사진을 찾지 못했다.

혹시라도 비가 내리면 뜨끈한 칼국수나 수제비가 생각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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