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형 Nov 28. 2022

작은 세상 아름다운 이야기

접사모 사진전


인사동에 가면 종종 들리곤 하는 화랑이 있다. 인사동 문화의 거리 중간쯤에 위치한 인사아트센터가 로 그곳이다. 이 건물은 지하 1층부터 6층까지 통째로 전시공간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이 한 곳에서만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큰 이동거리 없이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틈날 때마다 각종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작가들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생겨난다. 큰 틀로 보자면 많이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치열하게 작품 활동에 몰두하작가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대부분 힘든 환경 속에서 작업하는 그들 대해 일종의 경외심을 가지게 다.

정성을 다한 작품을 여럿 걸어놓아도 이미 주인이 있음을 알리는 빨간딱지가 붙는 경우는 드물다.

가끔씩이라도 누군가가 구매했다는 표시가 되어 있으면 한번 더 그 작품을 살펴보게 된다.

흠... 역시 완성도가 높아 보이긴 하군.

그런데 전시가 끝나면 나머지 작품들어디로 갈까? 작업실? 사는 집? 아님 월세로 빌린 허름한 창고?

가까운 친척 중에도 전문 작가가 있다 보니 남들이 하지 않을 걱정을 해본다.


갤러리 여러 층의 전시실에서는 주로 회화전이 열리지만 오늘은 2층에서 사진 동호회의 작품 전시가 있다. 다른 층의 그림들을 감상하고 사진 전시실로 입장하니 건강해 보이는 젊은 남성과 점잖은 인상의 중년 남성 둘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접사모, 작은 세상 아름다운 이야기.

2005년부터 이어온 전시가 올해로 19회를 맞이한 것이다.

사람의 시야보다 더 가까이에서 바라본 공간에는 빛과 바람과 꽃과 곤충들이 신비로운 모습으로 살아 있다. 생명으로 가득한 순간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화랑 벽을 따라 출렁이며 이어졌다.

번뇌를 깨끗이 털어버리고 자신만의 호흡에 충실한 생명들.



그 한순간을 빛으로 건져 올리는 작가들의 노고!

그 뒤에 숨은 이야기와 여정에 대해 비망록을 작성하며 운을 떼 보았다.

데스크의 두 분 모두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가인데 연장자인 곽성근 작가님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설명해다.


보리수. 곽성근

<보리수>. 부처님이 그 아래서 성도했던 보리수나무 열매를 작품화했단다. 그런데 잘 익은 보리수 열매가 반쯤 투명하게 찍히면서 작은 씨앗들까지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두 번 사진을 찍어 위아래 대칭으로 겹쳐지도록 디지털로 현상을 했다. 작가는 다소 난이도가 있는 작업이라고 첨언했다.

아마도 작가가 바라는 세상은  사진처럼 위아래가 따로 없이 평등한 곳이 아닐까.


으름덩굴. 곽성근

그가 출품한 또 다른 작품<으름덩굴>.

실사인지 수채화인지 분간이 어렵도록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 같은 저 작은 꽃에서 달콤하고도 긴 으름이라는 열매가 달린다.

아직 열매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그 꽃이라니.

(작은 오이만큼 까지 자라고 다 익으면 반으로 갈라져 흰 속살 속에 검은 씨를 드러낸다고. 또한 바나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당도가 높다고 먹어본 적이 있는 친구가 경험담을 전해주었다.)

토종 으름이 해양을 건너가 품종 개량 과정을 통해 키위라는 과일로 재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슬방울. 보라제(김인숙)

이파리의 양끝 돌기마다 수정구슬을 달아올렸다. 영롱하기 그지없는 구슬마다 오롯이 한 세계를 담고 있다.

새벽 이슬...이 아니란다. 실핏줄보다 가는 줄을 따라 이파리가 토해놓은 체액이다. 이 진액들은 해가 뜨면 바로 사라지기에 사진으로 남기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접사보다 물체에 더 가까이 바짝 붙어서 찍은 초접사 작품이다.

어둠을 길어 올려 투명한 크리스털로 빚어낸 숲의 경이로움. 작가는 그 장면에 크게 경도되었음이 틀림없다. 그의 영혼이 진심으로 공명하였기에 그 순간이 마침내 사진으로 드러났다.


가는다리장구채. 사영(박경애)

장구를 치는 채처럼 생겼음을 이름에서 알겠다. 그 꽃의 향을 따라 한 마리 벌이 날아든다. 꽃의 화분을 옮겨주는 존재. 그로 인해 꽃이 피는 이유가 설명된다. 때로 꽃과 바람만으로는 외로운 까닭이 이 때문일까.

또한 이미 거사를 치르고 날아가는 것이 아닌 황홀한 만남을 위해 날아오는 곤충. 작은 폭탄과 같은 역동적 비행을 담아내기 위해 작가는 꽃 앞에서 수없이 기다리고 망설였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유사한 작품들을 미묘한 차이로 아쉬워하며 삭제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화인처럼 가슴에 새긴 풍경 하나가 기다림으로, 그리움으로 드러났다.


자주족도리풀. 숲(윤재혁)

자주색 족두리를 연상케 하는 숲의 요정. 이 작품에서는 왼쪽의 거대한 나무 밑동으로 인해 작은 피사체가 대조되는 효과가 배가되었다. 또한 흐릿한 숲의 배경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준다. 홀로 피었어도 외롭지 않은 까닭이겠다.

산야초가 이렇게 비탈이 아닌 평지에 피어있는 은 드물다. 그 드문 장면을 살리려면 알맞은 빛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른 각도에서도 터져주는 또 다른 플래시가 필요하다.

회화에서도 빛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창조의 길에 서 있작가들은 체험으로 이 진리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고 그 빛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3~4)


산솜다리. 사경(박경애)

산솜다리는 에델바이스의 순우리말이다. 설악산 인근에 자생한다고 알려진 생각보다 소박한 꽃. 알프스나 설악산처럼 깊고 높은 계곡에서만 뿌리내리는 존재.

산솜다리 가족이 해맑은 얼굴로 저희를 보러 오셨나요?라고 맞이하는 것만 같다.

그 솜털 가득한 희고 고운 얼굴을 만나기 위해 무거운 장비를 메고 험한 길을 걷고 또 걸었을 한 사람.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곽작가님과 전시회 가족들

곽 작가님이 온화한 미소로 배웅을 했다. 알고 보니 차기 회장님이시란다. 인사와 함께 접사모의 번창을 기원했다. 그가 넌지시 같이 작업해볼 것을 권했다. 아름다운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막 가나와의 월드컵 경기 중계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2:1 승리로 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날의 칼국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