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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Jun 30. 2022

여름 비


한동안 지독한 가뭄이 들었다

도로 옆 저수지 허리춤 아래로는

벗은 살갗이 훤히 드러났다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마른 띠에는 

풀 한 포기 없었고

흙벽만이 간간히 암석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때서야

수면과 맞닿은 세상부터가 수풀이었음을

그 아래로는 푸르름 따위가 없다는 걸 았다


애써 외면하지 않았어도

당연히 모두가 그러하기에

다수의 공범으로 존재하다가

죄책감을 드러내경계선이

의식이 가라앉자 이내 나타나 마는 것처럼


저수지의 경사진 출구 아래로

간간히 흘러나오는 물길

그것의지하는 부채처럼 펼쳐진 논밭

겨우 발치에만 차는 논물은

서로의 물꼬를 단단히 틀어쥐게 만들었다


가뭄의 끝은 비가 아닌 장마였다


땅이 갈라져 흙먼지가 날리면

그 티끌이 한탄으로 높이 날아오르면

이슬이 엉겨 구름이 뭉치고

짙은 먹색으로 서로 부딪혀

번개가 쏟아지고 천둥이 울리

가지 끝 시든 이파리들이 몸을 떨면서도 반겼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잠깐 쉬어  뿐이었다

먼지 내음을 머금던 첫 비 이후로는

더 이상 짠맛을 상상할 수 있는 눈물 같은 비가 아니었다


전선은 지방을 가리지 않고 오르내렸다

뙤약볕과 폭우를 번갈아 맞이하며

땅은 수축과 팽창을 거듭했고

그때마다 모든 숲은 키를 더해갔다

막힌 논둑은 이곳저곳이 터졌고

개미들은 무너진 집을 보수하느라 분주했다


해갈의 높이를 만회하느라

털썩 쉽게 쏟아붓곤 하는 장대

낮은 천정과 벽돌담과 지하 계단으로

물비린내 풍기며 젖어드는 소나기


여름 비는

선뜻 바라는 것이 아닌

그저 오는 대로 맞이하는 것이어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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