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에 앉을 때는 그늘 깊숙한 곳이 좋다
그래야 환한 바깥 풍경이 오롯이 다 보인다
정자에 앉을 때는 느티나무 곁이 좋다
그래야 손 닿을 듯 서 있는
그 큰 기둥에 기대보고 싶어진다
정자에 앉을 때는 그리운 이를 놓아야 한다
그래야 홀로 된 마음에
난간이 붉게 물들지 않는다
정자에 앉아 있으면
오늘처럼 간혹
바람에 잔 비가 촉촉히 날아들기도 한다
* 어느 날은 비가 무섭다.
불 난 끝은 타다 남은 것이라도 있단다.
그러나 물난리 난 끝은 흔적도 없다고 했다.
그 옛날 물가에 살면서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다가 한순간 폭우에 쓸려갔던 사람들.
요즘도 거대 도시의 물길을 다스리지 못하여 사람들의 주거지가 집단 무덤처럼 변하곤 한다.
정자 기와에서 떨어지는 빗줄기.
그 소리에 마음까지 소란스러워진다.
삶의 열악한 환경을 감내하다 재난을 당한 이들. 그들의 빠른 치유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