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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Oct 09. 2022

가을비


촉촉이 내리는 비에

조금씩 신발 앞이 젖어든다

정강이 아래로도 빗물이 스며들더니

가끔씩 우산 안으로도 날아들어

재킷 물방울이 맺힌


노랗게 잎이 시든 콩밭을 지나고

거뭇거뭇 색이 변한 깨밭을 지나고

황금빛을 반납하고 허옇게 말라가는 논을 지나

물살이 거칠어진 합수머리에 이르자

흰 물새 한 마리가 젖은 깃을 고른


그 많던 사람들로 각인된 시간은

어디로 모두 흘러갔을까

지나간 기억들은

마치 전생의 일처럼 흐릿하기만 하


비 내리는 뚝방길을 걸으며

고인 물을 제쳐 딛다 보면

어느새 가슴까지 소리 없이 젖어든다


맑은 날들에 짐짓 속았을

차가운 빗방울이 뺨에 달라붙을 때마다

바람과 비는 그친 적이 없음을

새삼 되뇌어보 늦은 오후이다



동그랗게 빗물을 말아올려 장식한 물풀잎. 보는 순간 근심이 희석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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