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형 Apr 29. 2023

밤비

늦봄의 생기


힘없이 마른날들이

계절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었다

그때는 푸른 새벽조차

투명한 이슬을

채 영글어내지 못했다


긴 겨울 내내 퍼지

고라니의 비명소리

그 울림이 끝나지 않은

4월의 늦은 밤


이내 그치고야 말겠지라며

생기 잃은 목소리를

적셔내는 긴 비가 내렸다


아차산 아래 심검당에 숨어

녹슨 칼을 메만지는 한 사내는

깊은 밤 후드덕이는 빗소리에

한참을 일어나 앉았


숫돌에 날을 벼릴 때도

맑은 물을 수시로 끼얹는데

모난 마음 다듬는 세월 동안에

왜 수없이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겠는가


조용히 묵은 먼지 씻어내는

늦봄의 밤비


날이 새면

풀잎들은 파릇한 빛으로 

한껏 기지개를 켜겠다




마른 날에도 땅 속 습기 끌어모아 윤기 지어내는, 그렇게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귀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