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이 마른날들이
계절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었다
그때는 푸른 새벽조차
투명한 이슬을
채 영글어내지 못했다
긴 겨울 내내 퍼지던
고라니의 비명소리
그 울림이 끝나지 않은
4월의 늦은 밤
또 이내 그치고야 말겠지라며
생기 잃은 목소리를
적셔내는 긴 비가 내렸다
아차산 아래 심검당에 숨어
녹슨 칼을 메만지는 한 사내는
깊은 밤 후드덕이는 빗소리에
한참을 일어나 앉았다
숫돌에 날을 벼릴 때도
맑은 물을 수시로 끼얹는데
모난 마음 다듬는 세월 동안에
왜 수없이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겠는가
조용히 묵은 먼지 씻어내는
늦봄의 밤비
날이 새면
풀잎들은 파릇한 빛으로
한껏 기지개를 켜겠다
마른 날에도 땅 속 습기 끌어모아 윤기 지어내는, 그렇게 살아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