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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형 Mar 05. 2024

바람


바람이 불어오더니

기어이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할무이 왜 추워?

마른 등가죽을 덮어대는 노인네가

이상해서 쳐다보았다


그 이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가벼워져서 바람에 실려가려는 것이여


아무리 틀어막아도

수시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낡고 오래된 방

녹슨 화로만이 화톳불을 지켜내고 있었다


모진 겨울


어린 생명들 의지해

얼음강을 건너면

흰 버짐 가득한 얼굴로

햇살 한 움큼 쥐고 일어서야 했다


그리고 백 년

묵은 바람이 다시 찾아왔다

소리 없이 눈으로 짓는 말

그 표정에

부질없이 거부하는 몸짓일랑 내려놓고

헤진 신발을 고쳐 신어야 했다


고통스럽고도 아름답던 날들을

마냥 고맙게 기억하며

두 손에 묻은 먼지마저 털어내야 하는데

추억까지도 지워내야만 하는데

매듭은 단단히 엉켜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참으로 몹쓸 생을 살아냈


모든 것을 실어내는 바람


그의 손에 다 맡기고

쓸쓸했던 날들의 노래조차 삼키

풀잎 되어 떠나는 것을

회오리바람에 날아 오르며

한없이 가벼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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