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선물 1

포장, 제2의 인생

by 김도형

- 고객님, 어서 오세요 ~

= 저, 리본만도 파나요?

- 네. 여기 리본 상자에 여러 가지가 있어요.

= 아... 이것들보다 큰 리본이 필요한데요.

- 그럼, 따로 만들어 드려야겠네요.

대신 가격은 좀 더 올라가게 됩니다.

= 네, 붉은색 제일 넓은 띠로 5개만 만들어주세요.

- 혹시 어디에 쓰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 성당 크리스마스 츄리에 장식할 거라서 좀 크고 풍성했으면 좋겠어요.

- 네, 알겠습니다. 혹시 다른 볼 일 있으면 20분 정도 돌아보고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백화점 지하 1층에 입점한 조카네 선물 포장 샵에 들렸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분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했더니 도와줄 겸 시간도 보낼 겸 한번 나오라고 했다.

코로나 3차 확산의 여파로 역시 손님은 뜸했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한 40대 여성이 와서 리본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선물포장용 리본보다 사이즈가 큰 것을 원했기에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미 기성 제품화된 리본도 비치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즉석에서 만든 리본으로 장식하는 것을 선호한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직접 만든 리본은 한 눈에도 정성스러운 손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장에서 척척 리본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게 되면 마치 한편의 마술을 보는 듯한 착각도 생긴다.



포장 샵에서는 주로 생일이나 입학과 졸업, 결혼식, 승진 등을 축하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카드, 선물상자, 봉투, 펜과 문구류, 액세서리, 전통 장신구 등이 진열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기본 품목은 매출가로는 가장 적을 수도 있는 카드이다. 요즘은 일반적인 카드 외에 누르면 소리가 나거나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등 다양한 카드도 판매된다. 그러나 고객들이 가장 많이 집어 드는 것은 조카의 엄마, 즉 나의 누나가 직접 붓펜으로 그린 글귀가 있는 수제 카드이다. 거기에 직접 봄부터 가을까지 모아 말린 꽃잎까지 장식하여 아주 정감이 간다. 손재주 많은 엄마를 닮아서인지 조카는 포장, 리본, 보자기 등을 다루는 솜씨가 프로급이다.


사실 조카가 강남의 잘 알려진 영어회화 학원의 매니저를 그만두고 포장 기술을 익힐 때는 반신반의했다. 이전에는 특별한 미적 감각이나 손재주에 관한 얘기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딸의 변신을 후원해준 엄마는 학창 시절 은근히 미대가 가고 싶었단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근무하다가 시집가서 낳은 첫 딸이 바로 포장 샵의 CEO이다.


그 딸이 청주에서 서울로, 그리고 뉴욕에서 머물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직장생활을 했었다. 그리곤 꽃꽂이와 리본 및 선물포장 자격증을 취득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마침 새로 오픈한 백화점의 포장 코너에 둥지를 틀었다.

귀향하게된 계기는 아마도 대도시의 번잡함을 떠나고 싶은 점 외에도 맏이로서 부모님 곁을 지키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밑의 두 동생이 직장 관계로 서울로, 유럽으로 흩어져 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큰 누나의 환자를 다루는 일도 섬세한 감각을 요하기에 어느 정도 본인의 재능이 발휘된 점도 있겠다. 돌아보면 큰 누이를 비롯하여 남매들의 취미가 그림, 서예, 문예, 노래, 댄스까지 다양한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모두가 감정이 풍부하고 때론 예민하다. 어쨌든 처음 샵을 방문했을 때 수준급의 캘리그래프 카드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젠 꽤 나이가 있는 큰 누나가 눈도 아플 텐데 그런 작업을 해내다니!

살다보면 세월과 나이라는 것이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엄청난 장벽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기에 누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 돌, 입학, 졸업, 입사, 승진, 결혼, 이사, 쾌유, 감사, 환갑 등 각 이벤트에 알맞은 표현을 자연스러운 손글씨로 그려낸 카드는 아주 인기가 많다. 물론 이 수제 카드의 매출 일부는 그리 크진 않지만 엄마 몫이다. 모녀의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진열대의 카드로 숨 쉬고 있는 셈이다. 한 번은 집에 가서 보니 작은 안경을 쓰고 그 너머로 바라보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장면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지만 자아실현중인 누나를 말없이 지켜보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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