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선물 2

포장, 마음을 어루만지는 기술

by 김도형

(이 글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권고로 이전의 글을 1, 2편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내용이 약간 첨가되었지만 전체적으로 큰 변화가 없으므로 시간이 없으신 독자께서는 스킵하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지켜보면 다른 매장의 손님들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표정은 밝은 편이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하는 일이라 즐거움과 기대감으로 들뜬 기색이 엿보인다. 그리고 포장 선물을 찾아가면서 진심 어린 인사를 잊지 않는다. 이런 면은 다른 직업에서는 얻기 어려운 보너스와 같은 즐거움이다.


샵을 방문하는 고객은 다양하다. 엄마 손을 잡고 머리핀을 가리키는 어린이부터 손주 용돈 넣어줄 현금봉투를 찾는 노부부까지 들른다. 젊은 부부는 아기 옷 포장이나 부모님 드릴 현금봉투와 카드, 중년 여성은 입학이나 졸업용 선물 포장 그리고 감사카드 등을 원한다. 그중에서도 청춘 남녀의 방문은 풋풋한 사랑의 향기를 남기기에 여운이 오래 머문다.


가끔은 결혼식 폐백용 상자와 장식용 카드도 판매되는데 이는 비교적 고가에 속하기도 하거니와 아주 중요한 행사에 사용되기에 포장에 여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또 손님들이 들고 오는 물건도 제각기 다르다. 반지 같은 작은 물건부터 유리로 된 술병, 때로는 둥근 도자기까지 다양하다. 얼마 전까지는 입학 졸업 선물로 고가의 무선 이어폰이 인기가 있었다. 간단하게 선물 봉투에 담아 가는 이들도 있지만 부피가 있는 물건의 포장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포장을 할 때는 크기별로 다른 규격의 박스를 사용하는데 아주 가끔 최대 규격의 박스보다 더 큰 물건 포장을 손님이 의뢰할 때가 있다. 그때는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따로 박스를 제작해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그래서 고객의 만족도를 맞추기 어려울 경우라면 처음부터 완곡히 거절해야 한다.


때로는 원하는 대로 예쁘게 포장한 후 리본까지 장식하여 완성했을 때 산정된 비용에 살짝 당황해하는 손님도 있다. 그래서 반드시 작업 전에 예상 비용을 고지하는 단계를 거친다.


한 번은 초조한 기색의 손님을 맞이한 적이 있다. 그는 이것저것 비용을 물어보고는 망설이다가 발길을 돌렸다. 남들처럼 정성스럽게 물건을 단장해서 전하고 싶지만 포장 비용이 부담스러울 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드물지만 다소 저렴한 포장지만 권하기도 한다. 포장에 대한 미련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에 가서 직접 포장해보면 매장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포장물이 엉성해져서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안타까운 마음에 포장지를 권하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내용이 중요하지 겉치레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 번에 뜯어버리고 말 포장에 돈을 쓰는 일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포장하는 과정과 포장한 물건을 들고 들뜬 모습으로 돌아서는 이들을 보고는 간단히 생각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화장품과 성형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많은 남성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같은 소비 활동에 동참하는 남성들이 늘어났다. 인식의 경계선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이 현명하셨다. 이미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알려주시지 않았던가.


이 샵에서는 시절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품목의 변천사를 알아낼 수 있다. 때로는 물건을 통해 사람들의 애환까지도 읽게 된다. 고객들이 들고 오는 모든 물건에는 당연히 얽힌 사연들이 있기 마련이다.

... 누구에게 주는 걸까?

... 무슨 일로 보내는 걸까?

그러나 손님이 먼저 즐거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궁금하다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대개는 물건을 만져보고 의뢰인의 표정을 헤아리며 사연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저 모두가 좋은 결말로 이어질 것이라 믿으며 작업에 임할 뿐이다.

한 번은 한 중년 여인이 스스럼없이 가져온 물건에 관련된 손주 얘기를 꺼냈다. 이야기 속에 의뢰자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져서 자연스레 받는 이가 정말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이 생겼다. 당연히 포장작업에도 정성이 더해졌다.


이런 관계는 협업에 가깝다. 기본적인 정보를 노출함으로써 일방적인 주문 관계를 넘어선 생산적인 피드백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하면 좀 더 구체적이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이야기에 지나치게 신경 쓰다가 작업 중 실수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틀 후는 성탄절이다. 지난주에 눈이 꽤 내렸으니 연이어 이번 주에도 눈이 오기는 어렵겠다.

빨간색 대신 와인색 띠를 선택한 그 손님의 다섯 리본은 은빛 구슬을 가슴에 달고 성당의 츄리를 장식했을 것이다. 그 츄리의 꼭대기에는 다윗의 별도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별은 깊은 밤에도 안식하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오랫동안 빛을 발할 것이다.

지상에는 고독한 성당의 별처럼 밤늦은 시간에도 웅크린 채 가슴속 글귀를 매만지는 이들이 있다. 비록 경배하는 이가 없을지라도 말이다.


이것이 홀로 반짝이는 별의 아름다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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