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형 Jan 04. 2021

진상이 필요한 이유

뜻밖의 조력자

예전에 게 낚시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기 어려우나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게 낚시는 8월이 적격으로 서해안의 꽃게잡이가 대표적이다. 한 번은 이 성수기에 꽃게잡이를 나갔던  어부가 게를 잔뜩 잡아 돌아오고 있었다. 선창 밑에는 잡은 게들이 쌓여 있었지만 어부는 걱정이 컸다. 좁은 선창 밑에 다닥다닥 서로 붙어 있는 게들은 급격한 스트레스로 서로를 잡아 뜯고 마침내는 스스로 죽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죽은 게와 산 게의 가격차는 매우 컸다. 그런데 육지에 도착하고 보니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의 게들이 살아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배 밑창의 게들이 한쪽으로 몰려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웬 문어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같은 그물에 걸려 올라온 문어를 버리기 아까워서 게와 같이 싣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실은 게와 문어는 천적 관계이다. 문어와 낙지 등은 딱딱한 조개나 게를 잡아먹고 산다. 유연한 다리와 빨판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어쨌든 어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문어 두어 마리가 게를 잡아먹어야 얼마나 먹겠나 하고 함께 넣어버린 것이었다. 배부른 문어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게 집단 전체의 생존 시스템이 최대한으로 가동된 것이었다.

그 후로 어부들은 게를 산 채로 싣고 오는 비결로 문어를 사용했다고 다.




한때는 해마다 배낭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우리나라에 배낭여행 붐이 일기 직전이었다. 그때 금수강산인 우리나라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멋진 곳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낭여행인 만큼 이색적인 도심지 거리도 걷고 시골마을 길도 걷고 이름난 트래킹 코스도 걸었다.

걷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너무 큰 짐은 여행 자체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빈 몸으로 걷는 것은 너무 가벼워서 걷는 자세가 자주 바뀌곤 했다. 나중에 꼭 필요한 물품 몇 개만을 넣은 작은 등가방 정도가 걷기에 가장 알맞음을 알게 되었다. 적당한 무게의 등짐은 걷는 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주었다. 그리고 들뜬 마음까지 잡아주었다.

그 경험으로 생활 속의 벗어나기 힘든 자질구레한 일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흔히 스트레스 하면 부정적인 것으로, 그리고 스트레스 호르몬은 신체의 질병과 노화를 유발한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연구도 많이 보고된다. 한마디로 적당한 스트레스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문어에게 잡혀먹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하고 숨을 유지하여 살아남은 게의 경우는 적당한 스트레스라는 범주에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 중에 알게 된 내게 알맞은 짐의 무게는 이에 알맞은 사례 수 있다.

하지만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일로 인한 엄청난 스트레스도 때로는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주변의 수많은 스트레스 중에는 소위 진상이라는 존재로 인한 것들이 적지 않다. 그 존재는 상사일 수도, 동료일 수도, 후배일 수도 있다. 심지어 취미활동 그룹에도, 봉사 단체에도, 종교 모임에도, 가족 중에도 있다. 이는 공동체 생활에 속한 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진상의 존재는 그렇다 쳐도 진짜 문제는 이 진상을 대하는 방식에 있다. 종종 대응 방식에 따라 진상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 대상이 바뀌기도 한다.




실제로 한 근무지에서 생겼던 일이다. 뜻밖에도 그곳의 식당 메뉴를 책임진 영양사가 진상의 지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당시 사내 식당의 형편없는 식사로 인해 대부분의 직원들은 점심시간을 괴로워했다. 묵묵히 식사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많은 직원들은 같은 재료로 형편없는 식단을 짜는 영양사의 재주를 신기해했다. 혹은 영양사가 원인이 아니라 조리장의 문제일 거라고 수군거리기 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개인적인 이유로 두 달간 휴직에 들어갔다. 임시직으로 들어온 새내기 영양사에 특별한 기대를 건 이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근무 첫날에 반전이 일어났다. 메뉴가 싹 바뀐 것이다. 그리고 예전과 같은 메뉴라도 음식의 질이 달라졌다. 모두가 감탄했다. 그때 한 끼 식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했다. 사실

아침식사를 거르기 쉬운 직장인에겐 점심은 평상시 식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후 두 달간의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예전 영양사가 복귀할 즈음 직원들은 다시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한 끼 식사로 인해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영양사도 늘 침울해 보였다. 본인이 가진 능력 이상의 것이 요구되는 직장 분위기에 그녀의 자세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다.


한 번은 우연히 식당을 관장하는 부서에 들렸다가 책임자로부터 질책에 가까운 훈계를 받는 영양사를 목격했다. 그녀의 몇 마디 답변은 자신감 없는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결국 그녀는 고집스럽고 개념이 없는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직장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러나 교류가 없던 대부분의 직원들에겐 그녀는 여전히 자기 메뉴를 고집하는 진상이었다.




알고 보면 진상이란 존재는 좁은 공간에

갇혀있는 나를 힘껏 잡아당겨 우주 밖으로 확장시키는 에너지 역할을 하기다.

내가 안주하는 이 세계는 한낱 고동껍질만도 못할 때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종종 알 수 없는 스트레스가 바이러스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그러면 그 작은 공간은 모조리 오염되고 만다. 그렇다고 대책도 없이 스스로 껍질을 깨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때쯤 갑자기 미친 듯 진상짓하는 인물은 주변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 분노, 다툼, 상처, 증오 따위 유발한다. 그러면 관계의 신경막 정서적 충격을 받아 균열을 일으키고 보호 기능은 급격히 떨어진다. 그렇게 내가 지닌 질서를 헤집고 균형을 무너뜨리는 존재를 인식할 때 비로소 새로운 에너지장의 시스템이 가동된다. 신체의 면역체계처럼 말이다. 그때가 바로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일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순조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수순이지만 기회임은 틀림없다. 태풍이 바닷물을 뒤집어엎으면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듯이 말이다. 

새로운 관계이든, 부서이든, 새 직장이든 일종의 변화가 촉발되는 것이다.




미디어아트로 만나는 이중섭. 황소

진상이 도발할 때는 분노뿐만 아니라 각성도 동시에 일어난다.

그때 증오가 아닌 각성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는 뜻밖의 관계를 새로이 맺어주기도 한다.

또한 본의 아니게 나 역시 타인에게 진상 이미지를 심어주지는 않았는지 반문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누구도 원하진 않지만 살아보면 때로는 적당한 진상도 필요하다.  

얼마 전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지내던 한 중년 여인이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쓰러져가던 회사를 살려냈다는 기사를 보았다.

생에 있어 진상은 꼭 사람만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 진상류들을 잘 법제하면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는 귀중한 약이 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