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형 Dec 31. 2020

아킬레스건, 그 좌절과 희망

아킬레우스의 뒤꿈치

예전 한때는 배드민턴 가방을 들고 동네 학교 체육관을 자주 들렸습니다. 퇴근 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운동하러 나가곤 했지요. 운동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초보 단계를 지나 적응하기 시작하면 급당김 현상이 일어납니다. 겉보기에 지루함의 대명사격인 마라톤이나 피트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드민턴의 경우 보통 짝을 이뤄 복식경기를 하기에 파트너와의 호흡이 중요하지요. 케미가 맞는 파트너를 만나게 되면 경기에 더욱 몰두하게 됩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서서히 행복한(?) 운동 중독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한 번은 경기중 상대편과 접전을 펼치며 3세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분위기가 과열된 탓에 4명 모두 힘겹게 뛰고 있었죠. 그리고 나의 파트너가 스매시한 콕을 받으러 코트 코너로 이동하던 상대편 선수가 갑자기 악소리를 내며 쓰러졌습니다. 순간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구급차가 오기까지 그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다리 인대가 파열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 사람 몸속 인대가 파열되면서 내는 탕 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 후 병원에 가보니 불행 중 다행으로 파열된 인대 봉합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6개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의기소침해져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사고는 준비운동이 충분하지 않았거나 평소보다 과하게 운동하는 경우에 발생하지요.

실 어느 종목이라도 선수가 아킬레스건에 부상을 입으면 재활한다 해도 선수 생명을 더 이상 이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는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사고인 것입니다.




아킬레스건 [Achilles腱]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발뒤꿈치 뼈에 붙어 있는 힘줄

아킬레스건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대 그리스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원래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입니다. 아름다웠던 그녀를 신들의 왕,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서로 탐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언에 그녀는 결국 인간인 펠레우스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아들인 아킬레우스를 낳게 됩니다.


테디스는 반신반인간인 아킬레우스를 신과 같은 불멸의 존재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신비한 힘이 있는 저승과 이승 사이에 흐르는 강물 스틱스에 아들을 거꾸로 들어 담그게 됩니다.

그때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잡았기에 그곳은 강물이 닿지 않아 유일하게 약한 부분이 되고 맙니다.


이후에 아킬레우스는 늠름하게 장성하여 그리스 군을 이끌고 트로이와의 전쟁에 임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영웅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트로이 군은 강철 같은 몸을 가진 그를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아킬레우스의 약점을 알아냅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아폴로 신전에서 몰래 독화살을 쏘아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명중시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의 영웅은 예언대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마도 태양의 신인 아폴로가 아킬레우스를 질투한 듯합니다.

(참고로 이 전쟁은 두 나라 왕족 간의 불륜으로 인해 촉발되었습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그리스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와 함께 도망갔기 때문이죠)


영화 <트로이>, 불멸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죽음 장면




불완전한 인간은 누구나 수많은 약점을 안고 살아갑니다. 일전에 tv에서 감상한 영화 <완벽한 타인>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을 본 사람들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참으로 다양한 약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학생 때 가졌던 신중함은 유연함이라는 포장 아래 충동감과 즉흥성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또 공정함에 대한 인식은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주관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상황논리가 횡행하는 세상에 분노하던 감정은 어느새 상황논리를 가치관의 균형자로 기꺼이 받아들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약점은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진 후 가지게 된 두려움입니다.

내가 인간으로서 가진 모든 조건이 어느 한순간에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 느낌은 퇴원 후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불현듯 떠오르지요. 생각해보면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대구 지하철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성수대교 사고, 세월호 사고에 관련된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마치 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졌지만 현재에도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존재함을 너무나 선명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무의식에까지 깊이 내려가 까맣게 덩어리 진 절망감과 공포심은 쉽게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더군요.

사고 후 일정 시간 안에 정신적 치료과정을 받지 못하면 그 후유증은 평생 간다고.


작년에 제주도를 갔을 땐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접하곤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한 제주 토박이 어른으로부터 이러저러해서 우리는 육지인들을 믿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듣었습니다. 그제야 그간 좀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조금은 알게 되었지요.

무고히 학살당함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아직도 집단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듯했습니다. 그러나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그조차도 무서우니까요.




<모든 진리는 공적하여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오직 인연에 따라 나는 것이니...>

지장경의 일부입니다.

나에게 이 구절은 마음의 불안과 공포를 가라앉히는 주문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 그러한 실체는 없다. 그것이 우주의 본모습이니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 말을 탐구하고 인식하는 것만도 참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억지나 강요가 아닌 나 자신만의 자연스러운 알아감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니다.


 질병, 실직, 파산, 결별, 사고, 죽음 등 오늘도 우리 주변을 날아다니는 공포의 화살은 많습니다. 단지 내가, 내 가족이 그 화살에 맞았을 때만 그 두려움과 절망감이 현실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안부 끝에는 항상 평안을 기원하곤 합니다.


어느덧 올해 마지막 날입니다.

돌아보면 의례적인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의 수위를 한참 넘어선 1년이었습니다. 장기간 안갯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소리도 없이 싸워온 입니다. 지금도 신종 코로나 19로 인한 현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말 감사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내년은 우리 모두가 터널의 끝을 보는 희망의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나의 고통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웃는 상대방도 숨겨진 상처가 있기 마련입니다.

비교할 순 없지만 결코 내 아픔만 큰 것은 아닙니다.

알고 보면 증오스러운 그가

나보다 더 약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니

오히려 타인을 위로수도 있습니다.

마치 이열치열처럼

고통으로 고통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의 용기가 필요할 뿐입니다.

나를 위하여,

상대방을 위하여

부끄럽지만 손을 내밀어 보아야 합니다.


치명적인 약점,

아킬레스건이 없으면

결코 일어설 수 없는 것이 우리라는 존재입니다.



* 표지그림 : 유화 <아기 아킬레우스를 스틱스 강에 담그는 테디스>, 피터 폴 루벤스 작.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증권 브로커의 파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